독일은 보험의 나라답게 많은 보험상품이 있다. 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여러가지 사유로, 그리고 여러가지 보험을 가지고 오는 환자들을 만난다.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보험제도는 독일 법정 재해보험조합(Deutsche Gesetzliche Unfallversicherung, DGUV)에서 지원받아 오는 환자들이다. 보상과 치료비, 치료 내용적인 면에서 가장 좋은 지원을 받기때문이다.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출퇴근 길에 일어나는 사고를 포함하여 심지어는 임신한 직원이 유산한 경우까지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 진료, 수술, 재활까지 모두 DGUV에서 지원한다. 사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뛰어놀다 다쳤을때 병원에 가서 학교 이름만 말해도 바로 치료해주는 것도 학교에서 가입해 둔DGUV를 통해 지원 받는 것이다. 이처럼 DGUV는 독일 연금보험(Renteversicherung)보다도 재정이 많고 규모가 크다.
나의 환자사례로 보면, 교회에서 자원봉사로 높은 천장에 있는 전구를 갈아끼우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리가 골절된 경우였다. 직원은 아니였지만 시에 등록된 교회 내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정되어 교회에서 가입한 재해보험으로부터 모든 치료를 지원 받으신 분이 있다. 이처럼 교회나 그 외 공공기관 내에서 발생한 사고 또한 DGUV에서 지원 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직업군인, 경찰과 같은 공무원, 간호사로 일하시다 병원 계단에서 넘어지신 분, 운송업을 하시다 교통사고를 당하신 분 등 다양한 사고사례를 가진 환자들이 있다. 그리고 산업재해를 당하신지 20년이 지난 후 후유증때문에 다시 병원을 찾은 환자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지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빨리 환자를 회복시켜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도록 돕고 다시 일을 하여 사회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는 기업차원에서도 이익이 되며, 개인적으로도 경력에 단절없이 빨리 업무에 복귀할 수 있으며 정부차원에서도 세금,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선순화적인 이익이다.
독일은 이러한 지원과 산재관리를 통해 산재사망자수가 꾸준히 감소하였다. 2019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10만명 당 산재 사망자는 0.78명으로 유럽연합 평균 1.63명의 절반 수준이다. 참고로 같은 해 한국은 4.6명이였으니 그 차이가 엄청나다.
나는 1차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난 이후 직장으로 복귀할 때까지 재활병원에서 제공하는 재활치료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체육을 전공하고 관련된 재활 및 치료교육을 이수하여야 하며 최소 2년 이상 재활치료사로 일한 경험과 같은 DGUV에서 정한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만이 산업재해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허리디스크 환자의 경우 가정주치의나 정형외과 의사의 진단을 받고 6회의 20분 물리치료 처방을 받는다. 그럼에도 증상의 차도가 보이지 않을 경우 다른 운동치료나 도수치료, 약물치료와 수술을 받기까지 단계별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독일의 병원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직접 예약과 진료를 반복하며 만족스러운 치료를 받기까지 아주 오랜 기간이 걸리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다. 또한 치료 시기를 놓쳐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환자들은 아주 빠르고 간단한 절차를 통해 쉽게 지원 받을 수 있다. 지원에는 피해보상, 치료를 위한 통원 교통비를 포함한 비용지원부터 일반 환자와는 다른 특별한 재활치료프로그램을 통해 아주 집중적인 치료를 받을 수가 있다. 병원 진단서나 비용청구서 또한 바로 DGUV로 전달되기 때문에 근로자가 직접 기업이나 보험을 상대로 싸울 필요가 없으며 동료직원들을 눈치를 볼 필요없이 아주 편리하다.
먼저 사고를 당하게 되면 한국의 산재지정병원격인 독일 전역 12개의BG-Unfallklinik(Berufsgenossenschaftliche Unfallklinik: 직업노동재해병원)에서 빠른 진료와 수술을 받을 수 있고 이후 거주지 근처 2차 기관인 재활병원, 대형 물리치료 재활센터에서 집중적인 입원 혹은 통원치료를 받게 된다.
이러한 환자들은 쉽게 말하면 엘리트 스포츠 선수의 재활과정과 유사한 재활치료를 받는다. DGUV에서는 어떻게 하면 빨리 환자들을 회복을 시킬 수 있을지 논의한 결과, 빨리 경기에 참여하여야 하는 부상선수들의 재활과정을 눈여겨보고 선수재활프로그램을 그대로 산업재해 환자들에게 접목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치료는 일반 물리치료와 운동치료, 마사지로 그 내용은 비슷하지만 짧은 시간이 아닌 하루 2시간, 주 4~5회, 약 3주 동안 재활치료를 받게되고 이후 연장도 가능하다. 2시간 동안 처음 30분은 1대1 물리치료를 받고 1시간동안 기구를 이용한 집중 운동치료를 하며, 마지막 30분은 마사지를 받는다. 이렇게 주5일 집중해서 치료받고 나면 수술 후 걷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걷고, 팔을 올리지 못하던 환자들이 팔을 들어 올리게 된다.
만약 출근길 교통사고 혹은 직장 내에서 예상치 못한 모든 사고로 인해 부상을 당했거나 직업병으로 심각한 질병을 가지게 되신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우리 한국 교민들 중에 아프신 분들이 있다면 빠르고 집중적인 좋은 치료를 받으셔서 빨리 일상으로 복귀 하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의 직업이 독일사람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다.
저자: 저는 현재 아름다운 모젤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재활병원에서 유일한 한국인 체육전공자/운동치료사로 5년차 일을 하고 있으며, 아내와 딸, 아들 그리고 뱃속의 아기와 함께 천천히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