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 잘 주차해 놓은 밤사이 누군가 긁고 지나갔다면? 아니면 누군가 고의로 내 차에 손상을 입혔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이었다면 내 블랙박스와 주변에 주차된 블랙박스 영상을 모조리 수집해서 범인 찾기에 나설 텐데, 독일은 데이터 보호 규정 제6조 및 연방 데이터 보호법 제 4조(Art. 6 Datenschutz-Grundverordnung und § 4 Bundesdatenschutzgesetz)에 의해 이유 없이 정차된 상태에서의 녹화는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어 범인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딱히 명확한 해결책이 없다.
독일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 내 차를 살짝 긁고 지나갔을 때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거나, 스스로 경찰을 불러 상황을 정리하거나, 전화번호를 앞 유리에 살짝 끼워놓고 가는 친절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단언컨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범인을 특정지을 수 있는 수단도 매우 제한적이라서 대부분의 가해자는 잡히지 않습니다. 이렇게 특정되지 않은 크고 작은 뺑소니 사건이 독일에서 매년 500,000 건이 접수된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가 피해당한 금액을 스스로 부담해야 하거나 자가로 보험처리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안타깝지만 독일에서 부재중 발생한 사고의 경우 명확한 해결책이 없는 것이 독일의 현실입니다.
2. 예방 차원으로 찍어두는 사진 한 장의 힘
내 차를 긁고 도망간 범인을 찾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시도해 볼 만한 것들은 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경찰에 신고하는 것입니다. 이때 사고가 발생했던 시간과 장소, 주변과 함께 찍은 현장 사진들을 잘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법적 효력을 갖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고 발생 후에 자료를 남기는 것만으로 가해자를 찾기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런 사고는 보통 차량이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공용 주차장에서 자주 발생합니다.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곳에 주차한다면 주차 후에 내 차와 양옆의 차를 번호판이 보이도록 사진을 찍고 용무를 다녀오는 것은 좋은 팁이 될 수 있습니다. 용무를 보고 차량으로 돌아왔을 때 내 차량에 문콕 같은 작은 상처가 났고, 옆 차가 이미 떠나고 없다면 높은 확률로 자리를 뜬 차주가 범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미리 찍은 사진에는 차량의 번호판 뿐만 아니라 사진이 찍힌 시간도 함께 기록되므로, 경찰이 왔을 때 사고가 발생한 시간까지도 특정지을 수도 있습니다.
3. 가해자를 찾는 또 다른 방법, 목격자를 찾아라
사고를 내고 도망간 가해자를 찾는 또 다른 방법은 목격자를 찾는 것입니다. 수고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정차 중 블랙박스 사용이 불가한 독일에서는 이 방법 뿐입니다. 당시 주차장에 있었던 사람들이나 주변 보눙의 테라스 같은 곳에서 사고 장면을 누군가 목격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에 신고 후, 목격자의 증언이 함께 기록된다면 그나마 조금 더 사건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블랙박스를 사용하는 한국인에게 직접 목격자를 찾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독일의 은퇴하신 어르신들은 생각보다 자주 테라스에 나와 바깥을 내다보시곤 합니다. “다른 나라에는 CCTV가 있지만, 독일에는 할머니가 있다”라는 농담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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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수로 내가 다른 차량에 상처를 냈다면?
독일에서 뺑소니는 사고 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작은 사고라고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되며, 사고 후 차주가 오지 않은 상황에서 연락처를 앞유리에 끼워놓고 자리를 뜨는 것 조차도 뺑소니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다른 차량에 피해를 준 작은 사고가 나로 인해 발생하였다면 사건 현장을 떠나지 말고 차주가 나타날 때까지 최소 30분 정도 기다려서 서로 합의하거나 경찰을 불러 상황을 설명해야 합니다.
만약 사고 후 아무리 기다려도 차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스스로 경찰에 신고해서 사고 접수처리를 해야합니다. 피해 차주와 합의 시, 당사자 스스로 피해가 크지 않다며 따로 피해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구두합의로 끝내기 보다, 서면으로 확실히 피해보상 여부를 명시하여 마무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바뀐 피해자가 사고접수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 작성: 도이치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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