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생각하고 대선을 생각하고, 집을 잃고 나라를 잃고 이 먼 독일까지 오는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을 생각한다. 몸도 마음도 무겁다. 하루를 누웠다가 기운을 차린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주말에 레겐스부르크를 다녀왔다. 토요일 점심때 아이와 내가 기차로 먼저 출발했다. 바쁜 남편은 저녁에 왔다. 우리가 탄 기차는 알렉스 Alex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졌다. 뮌헨을 출발, 레겐스부르크를 거쳐 프라하까지 간다. 그런 시절이 언제였던가 싶다. 4년 전 플릭스 버스 Flixbus로 프라하를 다녀온 적이 있다. 플릭스 버스는 저렴한 가격으로 독일 국내와 유럽 각 도시를 잇는 최적의 교통편이다. 언젠가 알렉스 기차를 타고 다시 프라하를 가야지 했는데. 올 가을 뮌헨에는 옥토버 페스트도 다시 열릴 거라는데. 그런데 전쟁이라니! 독일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어택 Attack. 침공. 무자비했던 두 번의 세계대전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그런다고 전쟁이 전쟁 아닌 다른 무엇이 되는 건 아닐 텐데.
레겐스부르크의 어머니 댁에 있는 이틀 동안 화제는 단연 우크라이나였다.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가족을 집에 머물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이셨다. (우리가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시고!) 호텔 등 기존 인프라를 이용해서 숙소를 제공하고, 사회단체나 자원봉사를 통해 식사를 해결하도록 돕고, 다른 문제는 천천히 해결해가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견이셨다. 개별 가정에서 우크라이나 가족을 받아들이는 건 신중하게 생각할 문제라 보셨다.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을 경우 결코 쉽지 않다고.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 가족을 받는 걸 고려 중이라 말씀드렸다면 크게 걱정하셨을 듯했다. 나도 투병 중인데 말이 되냐고. 남편도 경제적인 부분과 내 건강을 고려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보자며 한 발 물러섰다. 아이도 고집을 부리지 않고 따라주었다.
일요일 저녁 뮌헨으로 돌아와 한나 엄마 카타리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카타리나, 클레멘스와 우크라이나 가족 문제 상의해 봤는데, 우린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 여러모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네. 카타리나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해해. 절대 쉬운 문제 아니야. 천천히 잘 생각해 보길 바라. 난 지금은 너의 건강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진심이 묻어나는 충고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날 저녁 자기 집에는 우크라이나 엄마와 아이가 올 거라고. 자기가 먼저 시작해보고 그 경험을 우리와 나누겠다고. 곧 차나 한 잔 하자고. 본 적이 너무 오래됐다고.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말했다. 우크라이나 가족은 새벽 3시에 도착했고, 한나는 아침 일찍 학교에 오느라 아직 그들을 못 봤단다. 그날 한나 집에는 우크라이나 엄마와 4세 남자아이가 왔다.
한나 아빠는 독일 사람으로 뮌헨시 공무원이다. 한나 엄마 카타리나는 슬로바키아 사람으로 주 4일 일하는 엄마다.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다. 아이는 둘, 한나와 남동생 파울. 그리고 고양이 릴리와 애완 도마뱀들을 키운다. 물론 도마뱀들은 돌아다니지 않고 수족관처럼 생긴 집에서 얌전하게 산다. 우리 아이는 점점 한나의 고양이 릴리와 친해지는 중이다. 옛날에는 서로 자기 쥐가 귀엽다, 아니다 자기 고양이가 더 귀엽다며 우기고 토라지고 삐지고 그랬는데. 요즘은 우리 아이가 한나 고양이에게 푹 빠져서 둘 사이의 갈등은 해결된 눈치다. 김나지움에 가자마자 우리 아이가 반했다는 한나의 해처럼 눈부신 미소는 엄마 카타리나를 닮았다. 한나를 볼 때마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란 바로 저런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가장 부러운 대목.
한나 집에 우크라이나 가족이 온 지 나흘째. 마트에서 진분홍 장미 화분을 두 개 샀다. 한나 엄마에게 봄꽃을 선물하려고. 저녁에는 그 집의 두 가족을 위해 피자를 주문했다. 마침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한나와 같이 우리 집에 와서 숙제도 하고 놀았다. 한나 엄마에게 저녁 식사 시간을 물어보고 시간에 맞춰 피자를 주문해서 두 아이에게 들려 보냈다. 장미꽃 화분과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노랑과 파랑 풍선과 함께. 하루 정도는 한나 엄마를 위해 저녁 식사를 해결해주고 싶었다. 일까지 하는 엄마라서. 주말쯤 할까 생각하다가 서두르기로 했다. 한나 집에 온 우크라이나 가족이 뮌헨에 사는 우크라이나 이민자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나 네와 우크라이나 가족은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모양이다. 독일어도 영어도 슬로바키아어도 우크라이나어도 공통어가 없어서. 한나 네는 곧 다른 우크라이나 가족을 맞이할 예정이다.
내가 만약 우크라이나 가족 입장이라면 어떨까. 만약 내가 아이와 단둘이 전쟁 중인 내 나라를 떠나 남편도 없고 집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외국으로 피난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 가족들과 산다면 심정이 어떨까. 고마우면서도 불편하고 외로울 거 같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불편한 건 불편한 거고, 외로운 건 외로운 거니까. 차라리 불편해도 같은 피난민들끼리 호텔이든 어디든 공동 숙소에 머무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거기에는 같은 처지에 말이 통하고 의지도 되는 같은 나라 사람들이 있고, 아이들도 말이 통하는 또래들이 있을 테니까. 안정된 집에 사는 화목하고 단란한 외국인 가족을 보면서 더더욱 자신의 처지가 궁색하고 옹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불행은 언제나 비교에서 시작되니까. 예민한 성격의 나라면 그럴 것 같다는 말이다. 언제까지 일면식도 없는 남의 집에서 신세를 져야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무겁고, 어른도 아이도 눈치 아닌 눈치를 보거나 주눅이 들지도 모른다. 거기다 말까지 통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불안과 미래에 대한 공포로 편안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함께 사는 외국인 가족이 얼마나 친절하고 따뜻한가는 별개로 말이다.
생각할수록 어려운 문제다. 그런 점에서 한나 가족은 환경이 조금 나은 편이다. 한나 네는 좁고 긴 3층 집에 산다. 두 층은 방이고 한 층은 부엌과 거실, 야외 발코니로 되어 있다. 두 가족이 한 공간에 머물러야 하는 일반 아파트에 비해 게스트룸과 가족들 방이 다른 층에 있다. 4인 가족인데 식탁이 무려 8인용. 그렇다고 해서 그런 집들이 다 한나 네처럼 선뜻 우크라이나 가족을 받아들이는 건 아닐 것이다. 가족들이 선량하고 따뜻하니 되는 일이다. 당장 그럴 수 없는 우리는 측면 도움을 주는 것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주기적으로 한나 네에 피자를 보내고, 한나 집에 머무는 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게 뭔지 함께 고민하려 한다. 우크라이나를 보며 전쟁이 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전쟁 후 총을 드는 것도 차선이 될 수 있다. 도망가는 것보다야 백 번 낫지. 그런데 너무 늦다. 한번 시작한 전쟁은 멈추기가 어렵고 너무 많은 피를 흘린다. 가진 것 없고 힘없고 선량한 사람들이 최대의 피해자라는 게 문제다. 한국의 대선을 보고 할 말을 잃는다. 내 앞에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때 같다..
- 작가: 뮌헨의 마리
뮌헨에 살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북 <프롬 뮤니히><디어 뮤니히><뮌헨의 편지> 등이 있습니다.
- 본 글은 뮌헨의 마리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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