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느낀 건데 중요한 건 살면서 어떤 일이 생기든 일희일비하지 말 것. 희망을 버리지 말 것. 나도 몰랐으니까. 독일에 세 분의 선샤인 의사샘들이 대기하고 계실 줄은.
세 번째 항암은 시작도 전에 내게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면 안 되지. 하루 전날 피검사를 할 때 의사샘께 물었다. 샘, 세 번째는 많이 센가요? 저 조금 긴장돼요. 나의 선샤인 악커만 샘 Dr. Ackermann이 웃으며 답하시길, 아니란다.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나중에 언니도 말했다. 두 번째 항암을 하고 내가 더 힘들어 보였다고. 항암 시간도 평소보다 1시간 짧았다. 약을 하나만 쓰니까 그런지 2시간 반 만에 끝났다. 항암을 하는 동안 피로감은 전보다 심했다. 책을 펼칠 때마다 한 페이지도 못 넘기고 계속 졸았으니까. 화장실도 두 번이나 다녀오고. 마음의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산부인과 로비이자 휴게실에서 기다리던 언니가 생각보다는 내 상태가 낫다며 좋아했다.
항암을 받는 날에는 병원 옆 자연요법센터로 이동. 열치료 Hypertermie를 받는다. 첫 30분은 약한 열로 시작. 이후 30분은 차츰 열을 높인다. 15분 단위로 묻는다. 괜찮은지 아닌지. 내가 받는 건 전신 열치료가 아니고 부분 열치료다. 전이가 된 가슴뼈를 중심으로 공략. 컬링 스톤을 닮은 둥근 원반을 가슴 위에 고정한다. 뜨끈한 것에 익숙한 우리에겐 전혀 힘들지 않다. 따끈해서 기분 좋게 잠이 들기도 한다. 독일 사람에겐 이 정도도 힘든가 보다. 환기창을 열어줄까 꼭 물어본다. 갑갑하거나 더울까 봐. 오른쪽 어깨 앞부분의 항암 포터 때문에 조심스럽게 위치를 정한다. 금속이라 열이 닿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기분 탓인지 열치료 덕분인지 아님 진통제 덕분인지 최근에 가슴 통증이 확 줄었다.
자연요법센터에서 미슬토 요법도 시작했다. 독일은 어떤 요법도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는다. 담당 의사는 할아버지 샘이시다. 우리 주치의에게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에서 미슬토 액과 주사 바늘 등을 주문해서 들고 오라 했다. 미슬토 액은 7회분이 100유로 정도. 우리 주치의가 보험 적용 안 되는 품목이라고 핑크 처방전 대신 푸른 처방전을 써주었다. 그래서 우리가 비용을 지불했다고 하니까 할아버지 화내심. 다음엔 꼭 핑크 처방전 받으라고. 안 되기는 뭘 안 돼 하시며. 이럴 때 독일이 좋아진다. 미슬토 액은 1mg으로 시작한다. 의사샘이 반드시 남편과 같이 오라고 하셔서 같이 가니 직접 시연을 보여주셨다. 미슬토 요법은 주 3회. 첫 번째 주는 1mg. 두 번째 주는 5mg. 세 번째 주부터는 10mg을 남편이 아랫배에 직접 놓아주기로 함. 주의 사항도 있다. 주사 맞은 부위로 3cm 이상 붉은 반점이 있을 때는 반드시 용량을 줄일 것. 나는 두 번 맞았는데 다 괜찮았다.
항암 이후 부작용은 없다. 낮에도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만 빼고. 물을 많이 마셔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밤에 화장실 가려고 한번 깨는데 그 후 잠을 못 이루는 횟수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족욕을 안 했을 때 주로 그랬다. 항암 부작용으로 보이던 목과 어깨 통증은 사라졌다. 진통제 두 알을 먹은 이후로. 밥맛은? 여전히 좋다. 언니가 온 지 한 달째. 언니의 음식 솜씨가 나아지는 것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복부 가스도 줄었다. 아침에 먹던 요구르트와 빵에 발라먹던 크림치즈를 완전히 끊은 후로. 요즘은 검은 빵에 사과와 바나나를 올려먹는다. 대안으로 나쁘지 않다. 언니가 유기농 가게에서 산 독일산 밀가루로 부침개를 자주 해주는데 먹어도 속이 편안하다. 오늘 점심은 야심 찬 수제비. 내 요청으로 흰 아스파라거스도 대거 투하한. 맛은? 최고였다! 파스타도 가끔 먹는다. 속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세 번째 항암을 하고 돌아오던 날은 주치의 병원을 방문했다. 곧 병원을 떠나시는 에츠샘께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 항암 센터의 악카만 샘도 에츠 샘도 두 분 다 여자 샘들이시다. 두 분 다 선샤인. 에츠샘은 1년 정도 만났다. 주치의 병원에는 세 분의 의사샘이 있는데 그중 한 분이 에츠샘이었다. 우리 병원에는 짧게 계시다가 온 가족이 베를린으로 떠나시게 되었다. 그분과 함께 한 1년은 행복했다. 어떤 말이든 잘 들어주는 사람 있잖나. 다정한 눈빛과 표정과 목소리로. 에츠샘에게는 한국에서 사 온 부채 두 개를 선물했다. 남편분 것과 함께. 헤어질 땐 나를 한번 안아주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묻고 싶던 말이었다. 다음 날 에츠샘의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시며 베를린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남편도 부채 선물 고마워한다며. 나의 선샤인 선생님, 이름까지도 예쁜 폴라 에츠 선생님 Dr. Pola Etz.
치과도 들렀다. 항암센터에서 치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치과는 멀다. 시내 위쪽인 슈바빙까지 가야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시내를 중심으로 아래쪽. 예전에 시누이 바바라가 살던 곳이다. 뮌헨대학과 뮤지엄이 밀집한 곳. 서울로 치면 종로와 대학로를 합한 분위기쯤 되겠다. 지금 내가 쓰는 항암약은 자궁암 쪽이다. 가슴뼈로 전이된 암에는 다음주부터 뼈주사를 맞기로 했다. 그전에 치아의 상태와 뿌리 뼈 등의 상태를 엑스레이를 찍어 점검해야 한다고. 치과에는 퇴직을 앞두신 할아버지 샘과 그 뒤를 이을 새파랗게 젊은 아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 아들 되시는 분이 별로였다는 것.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번에는 또다른 남자샘이 있었다. 젊은 훔멜 선생님 Dr. Hummel. 그야말로 밝고 친절한 선샤인급! 치과를 옮겨야 하나 고민은 단번에 사라지고 아이의 스케일링까지 예약하고 왔다. 이번에 느낀 건데 중요한 건 살면서 어떤 일이 생기든 일희일비하지 말 것. 희망을 버리지 말 것. 나도 몰랐으니까. 에츠샘이 개인 휴대폰을 알려주시고, 항암센터에도 치과에도 새로운 선샤인 샘들이 대기하고 계실 줄은.
- 작가: 뮌헨의 마리
뮌헨에 살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북 <프롬 뮤니히><디어 뮤니히><뮌헨의 편지> 등이 있습니다.
- 본 글은 마리 오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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