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마지막 날 오후에도, 새해 첫날에도 뮌헨에는 해가 나왔다. 사람들은 이자르 강가로 달려나와 산책을 하고 우리는 자전거를 탔다. 새해도 열심히 달려볼 생각이다. 어떤 일이 닥쳐도 용기를 잃지 말자. 그런 각오도 함께.
2021년의 마지막 날은 아이의 절친 율리아나네와 보냈다. 해마다 12월 31일 저녁이면 나와 율리아나 엄마가 음식을 해서 율리아나 집에 모여 저녁을 먹었다. 율리아나 아빠는 태국 사람이다. 율리아나와 그녀의 남동생은 일하는 엄마 대신 아빠 손에 자랐다. 그 세월이 10년. 그사이 율리아나 아빠 지미는 독일어도 배우고, 운전도 배우고, 트람 운전사가 되기 위해 직업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지금은 뮌헨의 태국 대사관에서 운전기사로 일한다. 율리아나 엄마 이사벨라 말에 의하면 대만족이라고. 매일 태국말을 하고 태국 사람들과 일하며 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기에. 그전에는 향수병이 심해 태국에 있는 가족들을 많이 그리워했다고.
12월이라 하기엔 포근하고 푸근한 밤이었다. 저녁은 일찌감치 먹었다. 채식주의자인 지미를 위해 야채 김밥을, 아이들을 위해서는 불고기 김밥과 특히 전을 좋아하는 율리아나를 위해 김치전을 준비했다. 한국에 다녀온 조카가 가져다준 김치도 들고 갔다. 조카의 엄마는 나와 같은 고향에서 자란 육촌 언니인데, 부지런한 데다 음식 솜씨도 대단하다. 그날 저녁 한국의 육촌 언니가 보내준 금 같은 김치는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음식과 한국말과 한국 노래도 좋아하고, 휴대폰마저 삼성을 쓰는 지미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남은 김밥은 다음날 계란을 묻혀 부쳐먹으라 했더니 훌륭한 한 끼가 되었다고. 이사벨라는 가정식 태국 음식을 준비했다. 고수 뿌리까지 들어간 담백한 모둠 야채 볶음과 태국 밥이 다였지만 충만한 저녁이었다. 그녀도 나도 심플한 밥상을 좋아해서 서로가 더 편했다.
저녁을 먹고도 시간이 남아 아이들은 게임을 하며 집에서 놀고 어른들만 밤 산책을 나갔다. 코로나 이전에는 불꽃놀이로 새벽 내내 소음이 심했다. 이자르 강변 공원 앞에 사는 율리아나네 창밖으로는 새벽까지 연기가 자욱했다고. 그러나 작년과 올해는 여럿이 모여하는 불꽃놀이가 금지되었다. 공기마저 부드러운 밤이었다. 남편은 이사벨라와 나는 지미와 걸었다. 지미가 물었다. ‘유정, 넌 나이 들면 어떡할 거야? 여기서 살 거야 아님 한국에 돌아갈 거야?’ ‘지미, 당연히 난 돌아가고 싶지. 하지만 클레멘스와 알리시아가 여기 있는 한 완전히 갈 수는 없고. 한국과 독일을 왔다 갔다 하며 사는 게 꿈이야. 넌?’ ‘난 은퇴하면 태국으로 돌아갈 거야.’ 이사벨라도 같이 갈 것이다. 아이들은 휴가 때 부모들을 만나러 태국으로 갈 것이고. 그때는 우리 모두 태국과 한국에서 만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번 연말 모임은 이사벨라가 제안했다. 작년에는 코로나도 있었지만, 내가 암수술을 받고 병원에 있어서 못 만났다. 암 선고를 받고도 많이 울지 않았는데 남 앞에서 유일하게 눈물을 보인 게 이사벨라 앞이었다. 왜 그랬을까. 두 아이가 3년 가까이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연대감. 한쪽 부모가 아시아 사람이라는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이번 모임은 항암을 무사히 끝낸 나와 대사관에 잘 다니고 있는 지미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거기다 새해부터 6주간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는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였다. (항암 후 왼쪽 어깨가 붓고 목 앞 림프 결절에 암세포가 보인다고.) 그걸 이사벨라가 말로 다 한 건 아니다. 지나고 보니 그랬구나 느꼈다. 그래서 고맙다. 말도 중요하지만 마음도 소중하다. 다시 율리아나 집으로 돌아와서 차를 마셨다.(이사벨라와 지미는 술을 못 한다.) 밤 11시쯤 돌아오려다 남편과 이사벨라의 대화가 길어지는 바람에 12시까지 머물렀다. (지미는 내게 삼성폰의 카메라 기능을 알려주느라 바빴음.)
새해 첫날인 다음날도 만났다. 예정에는 없던 일이었다. 날이 너무 좋아 혼자 자전거를 타러 가기 아까웠다. 아이와 남편에게도 같이 가자고 한 후 율리아나 생각이 났다. 아이에게 말했다. ‘율리아나도 같이 가자고 해 봐!’ 아이 왈, ‘율리아나 가족도 자전거 타러 가려고 한대. 다 같이 가자네.’ 이렇게 마음이 통하다니. 그날 이자르 강변 산책로와 자전거길은 북새통이었다. 제일 느린 내가 앞에서 달리고 우리 아이와 율리아나가 앞뒤로 호위했다. 이사벨라와 지미는 열의 맨 뒤에서 율리아나의 어린 남동생과 달리고. 동물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 이자르 강변에 자전거를 대고 물놀이도 했다. 새해 첫날 물가에서 물놀이라니. 날씨가 봄날 같았다. 아이들과 돌 쌓기 대회도 하고, 율리아나 남동생이 얕은 물가에 다리를 놓자 두 가족이 열심히 돌을 날라 다리 쌓기도 완성했다. 다리 위에 서서 완공 기념 기념사진도 찍고 돌아오는 길에는 우리 집 앞 이태리 레스토랑 소피아에서 차와 티라미수를 먹었다.
나도 티라미수를 좋아한다. 항암 이후 설탕을 조심하느라 못 먹지만. 그러자 남편이 옆에서 거들었다. 자기도 좋아한다고. 아니, 언제부터? 금시초문이다. 원래 쿠헨 종류는 안 즐기시는 걸로 아는데. 하긴 나도 전에는 단 걸 안 좋아했다. 아쉬워하는 내게 이사벨라가 말했다. 이틀 뒤 율리아나 생일날 오후에 차 마시러 오라고. 나를 위해 특별히 설탕을 덜 넣은 티라미수를 생일 케이크로 준비하겠다고. 그래서 갔다. 남편도 바빠서 못 올 지도 모르겠다더니 30분 늦게 사무실에서 달려왔다. 저 정도 열정이면 티라미수 덕후 인정! 나는 작은 걸로 한 조각을 먹은 후 남편이 왔을 때 작은 조각을 한번 더 먹었다. 덜 달면서 남편이 좋아하는 산딸기가 들어있어 보기도 좋고 풍미와 식감도 좋았다. 알코올은 넣지 않았다. 그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라니! 율리아나 생일날에 율리아나 가족과 저녁 외식을 하고 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율리아나 가족이 우리 가족 같아! 율리아나 동생 제이슨은 내 남동생 같고.’ 가족이 하나 더 생긴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언젠가 유럽의 도시들도 같이 돌아보자고 내가 말했다. 처음이었다. 언제나 이사벨라가 하는 제안을 따라가기만 했는데. 파리며 런던이며 로마를 함께 여행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기쁘게 그날을 기다리는 마음. 2022년 새해가 준 선물이다.
- 작가: 뮌헨의 마리
뮌헨에 살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북 <프롬 뮤니히><디어 뮤니히><뮌헨의 편지> 등이 있습니다.
- 본 글은 마리 오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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