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의 투병 생활에 대한 뉴스가 오르내립니다. 지난해부터 목과 허리를 지탱하기가 너무 어렵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배 당김과 통증을 호소했다는 내용, 이봉주 선수의 사진을 보니 진단하는 과정이 지난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마도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내과를 주로 다니기 시작했을 것이고 동네 의원부터 종합병원까지 많은 검사, 진료와 자문을 받으며 확진을 받기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했겠지요.
진단부터 치료까지 뭐 하나 쉽지 않은 ‘근육 긴장 이상증’
최종적으로 신경과에서 ‘근육 긴장 이상증’을 진단받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왜 중년의 어른에게 느닷없이 이 질환이 생겼는지 밝혀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원인을 밝혀내기도 어렵고 설사 확진이 내려져도 그때부터 치료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손쉬운 과정이 하나도 없고 신경과 의사에게도 까다로운 질환입니다.
매체에서는 ‘난치병’ 꼬리를 달았지만, 사실 이 질환은 그렇게 희귀한 질환도 아니고 치료 방법도 꽤 다양합니다. 다만 완치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지요. 수전증으로 알고 있는 본태성 떨림, 파킨슨 병 외 세 번째로 흔한 ‘이상 운동 질환’으로, 신경과 클리닉에서는 자주 보는 질환입니다. 그리고 치료 약물의 종류가 다양하며, 최근에는 뇌심부자극술로 효과가 입증된 질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움직임과 자세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어 환자들이 심적 고통을 많이 겪습니다.
근육 긴장 이상증(dystonia, 디스토니아)이란 무엇인가
근육은 수축을 해서 움직이고 긴장도(tone)를 유지하여 자세를 잡는 것인데, 이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과도하게 긴장하여 의지와 상관없이 이상자세가 생기고, 불수의적으로 근육이 수축하고 통증도 유발할 수 있는 ‘이상 운동 질환’입니다. 작용근(agonist muscle)이 수축할 때 반대편의 대항근(antagonist muscle)이 이완을 해줘야 하는데 모두 함께 수축해버리는 것을 근전도에서 확인할 수 있지요. 증상이 매우 다양하고 모호하여 진단을 받기까지 꽤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증상이 나타나는 부위도 매우 다양합니다. 질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근육이 있는 모든 부위에서 산발적으로, 국소적 혹은 전신적으로 나타납니다. 얼굴 근육, 목 근육, 사지, 허리 등 가리지 않습니다. 목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돌아가면 ‘사경(Torticollis)’이라 하고 머리 떨림과 통증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눈이 자꾸 감기거나 깜박거리면 ‘안검연축(Blepharospasm)’이라고 합니다. 성대와 후두 주변에 와서 발성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얼굴, 입 주변, 턱 근육과 혀까지 침범하면 ‘메이지 증후군(Meige’s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처음 진단 시 가장 초점을 두는 것은 증상 시작 연령, 유전성 여부, 증상이 나타나는 부위입니다. 왜냐하면 질환의 예후나 치료 방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지요. 시작 나이와 이환 부위도 서로 관련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는 다리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나이가 많을수록 손, 얼굴, 목 근육에 증상이 나타납니다.
근육 긴장 이상증은 뇌질환이다
이 병을 신경과에서 보는 이유는 지금까지 원인의 핵심을 ‘뇌’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뇌(기저핵)에서 근육으로 전달되는 신경 전달 체계에서 GABA(억제성 신호) 신경 네트워크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저핵 외에도 시상, 소뇌, 뇌간과의 네트워크(circuit)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아직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증상은 명확한데 뇌 MRI상 아무런 관련 이상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일부 유전적 원인은 밝혀져 있어 유전자 검사(DYT1, DYT6 등)를 필수로 합니다. 진단의 핵심은 증상이고, 근전도 검사(EMG)와 뇌 영상검사, 유전자 검사를 합니다. 상하지와 허리에 증상이 있을 땐 척추 영상검사도 하는데, 탈수초(전선 피복이 벗겨지는 것 같은 신경 병변) 변화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직업과 관련이 있는가 (Task-specific)
근육 긴장 이상증이 글을 많이 쓰는 사람(writer’s cramp)과 음악가(musician’s dystonia)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 있습니다. 특정 근육을 많이 사용하면서 직업상 나타나는 것인데 본인에겐 형벌로 여겨질 수밖에 없죠.
과도하게 특정 근육을 사용하면 쉽게 지치면서 회복이 안된 상태가 반복되고, 그 이후의 근육 사용이 근육 자체에 부담으로 축적되어 온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병력과 의무기록을 모르니 잘 알 수 없지만, 이봉주 선수의 경우도 오래 달리면서 장기간 축적된 근육 자극과 손상이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정말 난치병인가
치료할 수 있는 약물 종류도 꽤 다양하고, 시술적, 수술적 치료 방법 모두 있습니다. ‘완치’를 목표로 치료할 수는 없으나, 평생 조절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방법을 찾아가는 거지요. 전신성에는 약물 치료, 국소성에는 보톡스 치료를 중점적으로 하며 최근에는 뇌심부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 치료를 적극적으로 고려합니다. 수술의 적응증과 대상은 한정적이나 그 효용성에 대한 긍정적인 보고가 늘고 있습니다.
질환이 모두 증증인 것은 아닙니다. 매우 국소적이고 미세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수 있습니다. 증상의 경과와 예후는 다양합니다. 평생 안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짧은 기간에만 이환되기도 합니다. 신경과에서 진단받기 전까지 스트레스성 질환, 척추질환, 뇌졸중, 뇌성마비 등으로 오진받았다가, 확진 후 치료 계획이 수립되면 차분하게 따라오면서 잘 조절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근육 긴장 이상증으로 항상 피곤하고 지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피로와 스트레스가 증상을 더 심하게 넓은 부위로 퍼지게 할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나 정신적인 강박 등의 심리적 상태도 병을 악화시킵니다. 가수 장재인도 투병 이후에 스트레스 조절이 중요한 것 같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인지 행동 치료나 심리 치료를 병행하기도 합니다.
근육 긴장 이상증의 핵심 병소는 흔히 알려진 파킨슨 병의 핵심 병소와 동일하여 두 질환의 연구는 상호보완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파킨슨 병에서 많이 고려하는 뇌심부자극술을 근육 긴장 이상증에 적용하여 그 적응증과 효용성을 넓혀보는 중입니다. 하지만 수술 대상, 테크닉, 술 후 예후나 관리 등에 있어서 아직 통일된 일관성 있는 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전신선 일차성 근긴장이상증’같이 적응증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근간대성 근육 긴장 이상증(이름이 참 복잡하죠)’처럼 좋은 데이터를 쌓아가며 보는 경우도 있죠.
참 어렵습니다. 신경학적 증상이 명확하고 영상학적 검사에서 이상이 확인되었지만 이 둘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추정할 수밖에 없고, 국소적인 원인 병변을 제거하더라도 이미 신경 손상(예를 들어 탈수초성 변화 혹은 세포 부종)이 진행되어 이전처럼 되돌아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또한 특정한 뇌 부위의 이상보다 부위와 부위를 잇는 네트워크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진단적 방법도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고, 약물과 수술적 방법이 있어도 아직 모범 답안 같은 적응증이 없습니다. 현재 갖고 있는 툴로 충실히 대비하고 예후와 부작용에 관해 같이 지켜보는 게 최선이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 환자분들에게 충분히 설명드리고 공감을 얻는 것이 필요합니다.
- 작가: 익명의 브레인 닥터 / 의사
말보다 글로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13년 차 신경과 의사입니다. 우연히 코로나 시대의 독일을 겪는 중입니다.
- 본 글은 익명의 브레인 닥터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 응원의 메세지나 문의를 아래 댓글창에 남겨주세요. 댓글을 남겨주시면 작가님께 메세지가 직접 전달이 됩니다.
ⓒ 구텐탁코리아(http://www.gutentag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