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어느 날
2학년에 1학기 종료를 앞둔 지난 2월 초,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미술 전시회 관련 메일이 날아들었다. 한 해 먼저 2학년 생활을 경험한 친구 아이가 있어 2학년 1학기 말에 아트 작품 전시를 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었다.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게, 그저 어디 공간에 아이들 그림 좀 붙여놓고 ‘부모님들 보세요’ 하는 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전시 당일 아침 나는 별 기대감 없이 행사 장소에 들어섰다. 큰 행사라고 생각했으면 평소처럼 남편을 대동했을 터인데, 가서 쭉 둘러보고 ‘잘했어요’ 칭찬 좀 해주고 오리라, 딱 그 정도만 생각했던 터라 당연 혼자였다.
2학년 3개 반 아이들의 작품이 동시에 전시돼 있는 카페테리아 공간에는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넘쳐났다. 작품 콘셉트별로 그룹을 나눠, 섹션별 전시가 돼 있었는데 각 작품 앞에는 작품을 그린 아이가 서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입구 쪽 문 바로 옆에 서 있었는데 아이 뒤로는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스타일의 추상 스케치 한 점이 걸려있었다. 타이틀을 보니 ‘인피니티’. 점과 점 선과 선을 연결한 단순하고도 복잡해 보이는 그림은 과연 무한의 세계를 표현한 듯보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리는 구체화와 달리 아이의 그림은 스타일이 다른 데다 뭔가 굉장히 ‘있어 보이는’ 제목 탓이었는지 아이에게 작품 관련 질문을 하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학부모들의 관람 차례가 끝나고 아이들의 관람이 이어질 때도 아이 작품 앞에는 많은 친구들이 모여 줄을 서는 풍경까지 벌어졌다. 그 순간 나는 아이의 표정을 보았다. 싱글벙글,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면서도 희열에 찬 표정이라니. 한국에서 겪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광경에 나도 아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나는 한국에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는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아이였다. 유치원을 다닐 때는 심지어 여름 풍경에 가을 과일을 그려 넣고, 바닷속 그리기에 펭귄을 그려 넣어 ‘지적’을 받는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주눅이 드는 아이에게 나는 오히려 아이의 상상력을 칭찬해주었지만, 아이의 머릿속에는 이미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쯤으로 각인이 돼 있었다. 그러던 아이는 이곳에 와서 그림이든 만들기든 무언가 자신의 생각이나 영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어졌다.
추측컨대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많은 명작을 보고 느낄 기회가 많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이곳이 지향하는 통합 미술 교육의 힘이다.
한국 나이로 올해 열 살 된 남자아이. 한국에선 유명하다는 특별전에 거액 써가며 ‘교육적’ 목표를 띠고 가능하면 다 데리고 다녔었지만, 솔직히 아이의 반응이 성에 차지 않을 때가 많았다. 만들기나 건축에 관심이 많아 ‘르 코르뷔지에’ 전시에 갔을 때 정도나 흥미로워했을까, 대부분은 마지못해 따라가 관람이 끝난 뒤 숍에서 물건 하나 ‘득템’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반 고흐 정도만 알던 아이는 독일 살이를 하는 동안 마네와 모네의 차이를 알고, 에드가 드가의 작품 스타일이 어떤지 구분할 수 있게 됐으며,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에 꽂혀 무엇을 그리든 점묘법 스타일로 그리는 등 예술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아이가 되었다.
유럽에 살다 보니 박물관, 미술관을 경험할 기회가 많았고, 그 경험들이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여 조금씩 아이를 물들게 했을 것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갤러리 앞에 서서 이 작품이 어떻고 이 작가가 누군지 일장연설 늘어놓던 한국에서의 관람 스타일과 달리, 이곳에서는 함께 가서 아이가 보고 싶은 대로 느끼고 싶은 대로 놔두게 된 나의 행동 변화도 한몫했으리라.
모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좌)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우).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오르세 미술관에서 익숙한 밀레의 작품 앞에 선 아이(좌). 베를린의 가장 유명한 박물관인 페르가몬박물관에서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며 관람 중인 아이(우).
또 하나, 이곳의 미술교육은 한국의 그것과 너무 다르다. 일단 전시회라는 콘셉트를 빌어 아이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는 그 방식 자체도 매우 마음에 들지만, 이곳에선 그저 막연히 결과물을 내놓기 위한 미술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그 후에야 비로소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작품으로 내놓는다. 어떤 것이 잘 그린 것인지 어떤 작품이 더 좋고 나쁜지 평가 따위도 없다. 모든 아이의 생각은 훌륭하고 창의적이며 충분히 칭찬받기에 마땅한 것들일 뿐.
나는 이런 미술 교육이 갖는 힘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기대하는 창의력의 발굴이자 통합교육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번 전시회에 앞서 교장선생님은 학부모들을 모아놓고 잠재력의 발굴과 작품을 통한 표현 능력, 다시 언어를 통한 표현 능력, 팀워크 등을 통한 다양한 토의 등을 미술 교육의 지향점으로 설명했다. 이는 비단 우리 학교만의 특징이 아니라 독일 예술이 갖는 힘과 연계돼 있기도 하다.
요즘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전역에서는 ‘바우하우스 100주년’ 관련 소식들이 넘쳐난다. 건축가, 예술가 집단이 모여 모든 미술 장르를 통합한 예술 교육을 하는 학교였던 바우하우스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추상화의 대가 칸딘스키를 비롯해 명성 높은 예술가들이 교수로 활동했는데,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다 보니 그들의 교수법 맥락이 토론과 담론의 공유에 닿아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스스로 ‘그림을 못 그리는 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진처럼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자기만의 표현 방식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고 피카소가 말하지 않았나. 그 예술성을 키우고 죽이고의 문제는 어른들의 교육방식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요즘이다.
<오늘의 깨달음>
살아있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오늘.
- 작가: 어나더씽킹 in Berlin/공중파 방송작가,종합매거진 피처 에디터, 경제매거진 기자, PR에이전시 콘텐츠 디렉터,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유럽통신원 활동 중, ‘운동화에 담긴 뉴발란스 이야기’ 저자
현재 베를린에 거주. 독일의 교육 방식을 접목해 초등생 남아를 키우며 아이의 행복한 미래에 대해 고민합니다.
- 본 글은 어나더씽킹 in Berlin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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