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어느 날
같은 반에 한국인 남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아들아이는 같은 언어를 쓰는 아이가 한 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상당한 위안을 얻은 듯했다. 게다가 그 친구도 이번 학기가 처음. 그 둘은 서로를 친형제처럼 의지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보다 더한 ‘동맹’이 있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되고, 정서적 교감도 전혀 이뤄지지 않는 학급 무리 속에서 고립무원에 떨어진 두려움을 느꼈을 아이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라도 그랬을.
문제는 둘 사이가 너무 돈독하다 보니 다른 친구들과는 어울릴 새가 없었다는 점이다. 두 아이가 한국말을 하며 놀고 있으니 외국 아이들이 다가서기 어려웠을 상황도 있겠으나, 그보다 이미 아이들은 각자의 이너써클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학년 1학기 입학이라곤 하지만 이미 키타(유치원) 시절을 보내고 올라온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아이들도 부모들도 자신들만의 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아이는 이런 상황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열 명의 외국 친구보다 강력한 한 명의 한국인 친구가 있었으니,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을 터. 더구나 한국에서의 학교 생활에 비하면 너무나 즐겁고 재밌으니 그저 행복했을 수밖에. 하지만 나는 달랐다. 여기는 외국이고, 외국인 친구가 태반이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한국 아이와만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마뜩지 않았다. 언어적인 부분에서도 한국어만 쓰면서 놀고 있으니, 못마땅할 수밖에. 더구나 그 친구가 학교를 빠지기라도 하는 날, 학교에 가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걱정하고, 결국 혼자 놀다가 돌아왔다는 얘기라도 들으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잔소리를 아무리 해대도 아이는 바뀌지 않았다. 언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 외국인 친구를 사귄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모르지 않지만, 이러다간 일 년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버릴 것 같았다. 학기 시작 후 몇 달이 지날 무렵, 우리보다 먼저 베를린 거주를 시작한 다른 한국인 가정의 엄마에게 고민을 얘기했다. 아들아이와 같은 나이의 아들을 현지 바이링구얼 학교(이중 언어를 가르치는 학교)에 보내고 있었던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플레이 데이트가 답이에요. 여긴 친구를 사귈 때 무조건 플레이 데이트를 해요. 친구를 집에 초대해 데려가 놀고, 그러면 그다음에 또 그쪽에서 아이를 초대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지죠. 친구를 사귀는 것도 그렇지만 언어가 늘려면 외국 아이들과 플레이 데이트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어요. 수다를 많이 떨어야 당연히 말이 늘 테니까요. 저희 아이고 여기 와서 미국인 베스트 프렌드와 하루가 멀다 하고 플레이 데이트를 했더니 영어가 금세 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아이는 늘 얘기했었다. “엄마, 누구랑 누구는 오늘 또 플레이 데이트 한대.” “누구는 오늘 누구네 집 간다고 계속 자랑했어.” 친구 하나 있으니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아이도 내심 부러웠던 거였다. 관심 있게 보다 보니 어떤 아이가 반에서 인기 있는 친구인지도 알 것 같았다. 하교 때 아이를 데리러 가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를 번갈아가며 같이 하교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는 ‘플레이 데이트’ 신청을 자주 받고 있던 것이었다. 학기 시작 후 몇 달이 지나도록 플레이 데이트 신청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아이였던 우리 아이가 속으로는 얼마나 상심했을까, 마음이 짠해졌다.
'플레이 데이트' 신청을 전혀 받지 못하는 아이였던 아들아이는 이제 많이 초대받고, 많이 초대하는 아이가 되었다.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지 못하는 스트레스는 결국 '플레이 데이트'로 해결된 셈이다.
결국 내가 나서야 하는 일이었다. 한국도 요새는 아이 친구 관계를 엄마들이 맺어주는 게 현실인데 여기도 상황은 비슷했다. 외국 생활 경험이 처음인 나 역시 왜 외국인 학부모들 사이에서 주눅 들고 긴장되지 않았을까만,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야 하는 부분이었다. 아이는 딱히 플레이 데이트를 신청하고 싶은 외국인 친구도 없는 눈치였다. 언어적으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니, 단둘이 함께 논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모양. 아이의 마음을 모른 척하고 플레이 데이트를 밀어붙인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혹여 아이가 더 상처 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 그렇게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가고, 아이가 비로소 친구들과 어느 정도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상황이 되었을 무렵, 나는 우리 아이에게 늘 호감을 표현하곤 했던 미국인 부부의 아이에게 플레이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 아이 아빠를 붙잡고, 느린 영어로 묻고 답하고, 약속을 잡고 아이를 데려와 몇 시간 함께 하기까지의 그 과정이, 결코 별 게 아니던 그 과정이 ‘처음’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긴장되는 일이었던지.
막상 한번 플레이 데이트를 경험하고 나니 그 뒤부터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플레이 데이트 ‘기브 앤 테이크’ 문화 덕분에 그 집에 아이가 초대를 받아 놀러 가고, 아이가 외국 아이와 자연스레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니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 먼저 플레이 데이트를 신청해오기도 했다.
이제 2학년이 된 아이는 1학년 때 겪었던 ‘플레이 데이트’ 신청을 받지 못하는 소외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영어가 익숙해지고 친구들과의 대화가 전혀 문제없는 수준이 된 것도 크게 한 몫했다. 어떤 날은 아이가 내게 묻지도 않고 플레이 테이트를 잡아오는 경우도 있어서 오히려 당황하는 일이 있을 정도.
그래도 그 처음을 돌아보면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플레이 데이트 신청받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갚아야’ 할 플레이 데이트 약속이 몇 건 밀려있고, 아이가 플레이 데이트하고 싶다는 친구들 리스트를 줄줄이 읊어대 스케줄 정리하느라 골치 아픈 요즘은 그야말로 행복한 비명일 따름이다.
아이는 감사하게도 영어를 빨리 습득한 편이었다. 한국에서 서너 달 원어민 같은 한국인 선생님과 ‘I am a student’ 수준의 영어를 배우긴 했지만, 듣기도 말하기도 문법도 되지 않은 채로 베를린에 온 것에 비하면 비교적 큰 고민이나 걱정 없이 언어 문제가 해소됐다. 물론, 플레이 데이트를 하며 자기들끼리 ‘수다’를 떤 효과도 분명 있었을 테고.
언어에 대한 걱정이 사라져 가니, 공부 부분에 대한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아직 1학년이니 당연히 놀아야 할 시기였지만, 너무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가 또 걱정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엄마, 학교가 너무 좋아, 매일 놀아, 유치원 같아.”라고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 한국 수학 문제집을 들이밀며 어느새 ‘공부’를 챙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오늘의 깨달음>
언제는 친구들과 잘만 어울려 놀아주면 땡큐일 것 같더니만 이제는 공부 걱정을 하고 있으니, 역시 부모가 문제다.
- 작가: 어나더씽킹 in Berlin/공중파 방송작가,종합매거진 피처 에디터, 경제매거진 기자, PR에이전시 콘텐츠 디렉터,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유럽통신원 활동 중, ‘운동화에 담긴 뉴발란스 이야기’ 저자
현재 베를린에 거주. 독일의 교육 방식을 접목해 초등생 남아를 키우며 아이의 행복한 미래에 대해 고민합니다.
- 본 글은 어나더씽킹 in Berlin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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