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시시하고 재미없었다. 나름 치열한 20대를 보내고 30대를 앞둔 어느 날 이었다. 한 번의 휴학 없이 학교를 졸업했고, 역시 한 번의 휴학 없이 대학원을 졸업했다. 20대 초반, 방송국에 발을 디딘 후 단 한 번의 쉼 없이 직진으로만 전진해온 나였다.
그 당시 나는 보도국 작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보도국이란 곳이 그렇다. 매일 매일이 속보 경쟁이다. 어느 방송사가 그날 가장 핫한 인물을 섭외하느냐가 관건이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하지만 매일매일 뜨거운 뉴스가 나올 리 만무하니 늘 아이템 전쟁이다. 웬만한 존속살인은 아이템 거리도 안 된다. 데스크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자극적인 소재를 원한다. 그래야 시청률이 올라가고, 이슈가 된다.
하루하루 아이템 전쟁 속을 헤매던 어느 날, 나는 무슨 일이 터지기만을 바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순간 섬뜩해졌다. 내가 무서웠다. 사건사고의 희생이나 원인 보다는 시청률에 연연해 눈에 불을 켜고 아이템을 찾고 있는 나란 인간이 잔인했다. 학창시절부터 꿈꾸어왔던 방송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휘몰아치듯 몰려왔다. 더 이상 이렇게 ‘일’이란 프레임에 꾸역꾸역 나를 구겨 넣어서는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전환을 시도해야만 했다.
30대를 앞둔 내 모습은 김빠진 콜라 그 자체였다. 어릴 적 동경해 온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세상이 그 노력에 합당하는 보상을 충분히 준 것 같지도 않았다. 불현듯 떠올랐다.
즐겁게 사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
라고 했던 무라카미류의 소설 『식스티 나인』이..
거창하게 ‘복수’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사는 게 최고인데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재밌게 살자”가 인생 모토였던 나는 언젠가부터 눈 뜨자마자 뉴스거리를 찾아보고 섭외전화를 돌리는 루틴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미나를 만나 이야기 했다. “떠나야겠다고.. 같이 떠나지 않겠느냐고..” 미나는 한 번도 나의 제안(특히 노는 일)을 거절한 적이 없다. 노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죽이 잘 맞았다. 템플스테이, 죽음체험, 록페스티벌, 각종 영화·콘서트 등 둘이서 참 신나게도 놀았는데 한 번도 같이 해외여행을 간적이 없었다. 그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3월 1일 삼일절에 떠나기로 했다. 호기롭게 놀 권리를 주창하면서 말이다.
- 작가: 여행생활자KAI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여행생활자, 주변 살펴보기가 취미인 일상관찰자
- 본 글은 여행생활자KA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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