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이방인>, <싯다르타>, <지하로부터의 수기>….
독일로 가는 이삿짐 박스를 꾸리면서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된장 사이로 두고두고 읽어도 질리지 않을 인생책들을 챙겼다. 막연히 그곳에서는 한국 책을 구하기 힘들 것 같았고, 무엇보다 모국어를 가져가고 싶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한동안 이 책들을 자주 반복해서 읽었다. 아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읽고 싶은 책을 사는 일이 고추장, 고춧가루를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독일 내 한국 식료품점은 꽤 많았고 사는 동안 더 다양한 가게들이 오픈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한식 조달이 힘들진 않았다. 그러나 한국책은 판매처가 드물었고, 한국에서 받는다 한들 엄청난 세금 탓에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됐다. 게다가 책은 무게도 꽤 나간다. 이런 이유로 독일 내 한인 커뮤니티 벼룩시장에서 제일 빠르게 좋은 값에 팔리는 품목은 한국책이다.
책에 집착했던 이유는 구하기 힘들수록 더 갖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더불어 일종의 ‘품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독일에서의 삶은 누누이 썼지만 막연히 상상했던 여유 한 움큼, 우아 한 스푼과 매우 거리가 멀었다. 미용실을 가지 못해 추노마냥 풀어헤친 머리를 하고, 한 쪽 어깨엔 에코백을 한 손엔 끌차를 끌고, 마트에 가는 일이 주요 일과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수많은 카메라가 돌아가던 녹화현장, 하이힐을 신고 여의도와 상암 빌딩 숲 사이를 가로지르며 미팅을 다녔던 숨 가쁜 순간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해서 독일에 왔는데 외려 자주 초라했다. 이 사회에 소속된 사람. 이 아니었고 직장이 없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답답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묘한 인종 차별 앞에 속으로만 끊임없이 하이킥을 해댔다. 자존감은 나날이 고갈됐다.
하찮은 일상에서 책을 읽는 시간은 스스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행위였다.
느지막한 오후, 카페의 편안한 의자에 느슨히 기대어 앉는다.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빼곡한 활자들을 눈으로 훑어내려 간다. 이때만큼은 나도 약간은 유러피언이 된 것만 같았다. 꽤 고상한 척, 꽤 우아한 척. 그 척들이 켜켜이 쌓여 내 품위를 채워주었다. 괜찮다고 나쁘지 않다고. 너는 이렇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진 사람이라고. 2유로짜리 카페를 홀짝이며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을 읽을 만큼은 추운 독일의 겨울도 찬란한 여름이었다. 점차 나는 카페에 가지 않아도 하루를 마무리 하는 저녁, 작은 향초에 불을 켜고 독서를 하는 소박한 삶에 풍요를 느꼈다.
가져 온 책들을 반복해서 읽는 게 지겨워질 무렵, 조금씩 독일어에 눈뜨기 시작했고, 은혜로운 지인으로부터 이북 리더기를 선물 받았다. ‘책은 무조건 종이책’이라고 외치던 내게 이북은 신세계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탐독하기 시작한 것은 독일 작가들의 책이었다. 한국어와 독일어를 비교해 보고 싶었고,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헤르만 헤세와 같은 대 문호들이 보았을 그 풍경 속에서 그들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독일에서 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호사로 여겨졌다.
밤베르크의 장미 정원을 거닐며 장미 가시에 찔려 파상풍으로 죽은 릴케를 떠올렸다. 그와 같은 여자를 사랑했고 같은 상처를 받은 니체가 홀로 걸었을 산책길을 걸었다.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며 학교를 뛰쳐나온 헤세가 번뇌했을 들판을, 작가가 되고 싶었던 괴테가 아버지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법학을 공부하며 <파우스트>의 영감을 얻었던 맥주집을, 막스 뮐러가 독일인의 순결한 짝사랑을 구상 했을지도 모를 고성을 올랐다.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한 탓에 한낮에도 해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검은 숲, 그 숲에서 헨젤과 그레텔은 길을 잃었고,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는 방황했다. 나는 이 문학의 숲에서 황홀했다. 높다란 전나무와 가문비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에서 끝없는 푸르름을 맛보았고,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너울대는 라인강에 키스했으며, 오래된 좁은 골목 틈사이로 해질녘 태양이 타들어 가는 냄새를 맡았다.
그들이 표현했던 자연이 내 가슴에 들어왔을 때, 활자들은 다양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마치 책 속에 갇혀있던 인물들이, 장면들이 마구마구 튀어 나온 것만 같았다. 여전히 어려운 독일어를 붙잡고 사전과 대조해가며 원서를 읽을 때는 마치 내가 지성인이 된 듯 한 지적인 허영심에 매료됐다.
이상하게 독일 문학 작품들을 읽다보면(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작품에 한 해.) 한 쪽 구석이 자주 아렸다. <독일인의 사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책 읽어 주는 남자>, <생에 한 가운데>, <늦어도 11월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라이너 쿤체의 시…. 그들의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회오리바람처럼 훅 일어나 모든 것을 휘감아 버린 다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미련한 짝사랑으로 끝나거나, 자살해 버리거나. 모두를 버리고 얻은 뜨거운 사랑 앞에서도 그 흔한 격정적 키스 신 한 번 없이 자멸하고 만다. 이것이 독일인의 사랑일까. 무뚝뚝하고 더러 고지식해서 가끔은 답답하기까지 한 오히려 그래서 고귀하게도 느껴지는 그 사랑. 무조건 빠름을 외치는 현대인은 절대 가 닿지 못할 것만 같은 숨 막히는 정한을 더듬는다.
분더리히(Wunderlich)의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을 듣는다. 시린 혈관 속에서 뜨거운 열정이 흐른다. 사랑은 변해도 그 순간 영원을 맹세한 마음은 빛바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랑을 기록한 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 백년 이백년 후에도 이 작품들은 읽히겠지. 누군가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겠지. 나는 이미 죽어 없을 먼 미래에도 이 땅에서 어떤 이가 위대한 작품들을 읽을 거라고 그리고 사랑을 할 거라고 생각하면 뻐근해진다. 시대를 초월하는 글의 생명력에, 고귀함에 숙연해진다.
아마 10여 년 전 일거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 가난한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외딴 강화도에서 아내와 함께 인삼을 팔며 시를 썼다. 왜 하필 바다에서 산에 나는 것을 파느냐고 물었더니 인삼이 ‘사람 인(人)’을 닮아서란다. 너무나 인간적인 시인의 시는 자본주의 시대에 몇 남지 않은 ‘순수’였다. 속물로 가득한 현대인의 영혼을 뒤흔든 말간 시들은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었단다.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할 때도 산이 도와주고 새가 응원해주었단다.
이런 섬에 살면 시인과 같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시심이란 게 피용-하고 불꽃처럼 피어오를까? 잠깐 헤아려보다 나는 절대 못해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빌딩숲으로 돌아왔다.
독일의 대자연과 대문호들이 쓴 글을 마주하며 그때 그 시인을 자주 떠올렸다.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었다.’ 그들의 글도 이 태양이 써주고, 이 나무가 그려주었을까. 자연은 대체 작가에게 어떤 존재일까. 작가라는 명함이 여전히 부끄러운 나는 끄나풀이라도 잡고 싶어 그들이 누볐을 자연 속에서 허우적댄다. 그리고 읽는다. 내가 행운아(Glụ̈ckspilz)라고 별명을 붙여준 커다란 고목나무 아래 기대어 <싯다르타>를 펼쳐든다. 이 시공간에서 헤세를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운아다.
- 작가: 여행생활자KAI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여행생활자, 주변 살펴보기가 취미인 일상관찰자
- 본 글은 여행생활자KA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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