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에 사는 사람은 ‘섬’을 좋아한다.‘ 이 말을 들은 것은 산토리니에서였다. 온통 파랑과 하양뿐인 곳. 마리아 칼라스가 사랑했던 바가 있는 곳. 없던 낭만과 사랑도 퐁당퐁당 생길 것만 같은 곳. 영화 ‘비포 선셋’ 같은 로맨스는 아니더라도 포카리 스웨트 음료수 광고 마냥 청량함과 유유자적함을 기대하며 섬을 찾았건만 그것은 헛된 환상일 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다. 세상에. 섬은 중국인으로 포화상태였다. 어딜 가나 중국인이 보였고 간판이며 메뉴판 곳곳에 중국어가 가득했다. ‘혹시 중국이 거대 자본으로 이 섬을 통째로 산 것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음모론까지 떠올려 봤을 만큼 중국인이 가득했다.
그때 섬에서 만난 레스토랑 주인인지 게스트 하우스 직원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들 중 한 명이 농담삼아 얘기를 건넸다. 중국은 바다가 가깝지 않다보니 그 나라 사람들은 섬을 좋아한다고. 요즘 세계적으로 멋진 섬은 중국인이 다 잠식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내륙에서 태어났으되 바다보다 산이 좋았던 나는 그 말에 썩 동의할 순 없었지만, ‘리틀 차이나’로 불러도 반박불가인 산토리니였기에 어느 정도는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내륙에 사는 사람은 ‘섬’을 좋아한다는 말이 다시 수면 위에 오른 것은 다름 아닌 독일에서였다. 중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지형적 특성 상 내륙에 가깝다보니 바다를 보기가 어려웠다. 당일치기로 바다를 보러 갈 수 있었고 근처 마트만 가도 싱싱한 생선을 살 수 있었던 한국에선 수평선에 갈증을 느끼지 않았다. 산도 바다도 멀기만 한, 마치 원고지처럼 반듯한 흙투성이 육지에 살다보니 마치 그 네모가 나를 에워싸는 듯 답답했다. 사방으로 막힌 네모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었고, 탁 트인 바다가 자주 그리웠다. 노트북 바탕화면에 호퍼의 <바닷가의 방(Romms by the Sea)>을 깔았다. 바다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그 순간을 자주 상상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리스인의 말은 맞았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이 간절했다. 어느 섬이든 가고 싶었다.
유럽의 한 가운데 위치한 독일은 위치적으로도 여행하기 좋은 나라이지만 기상천외한 악천후로 인해 다른 나라로의 떠남을 부추기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독일인에게도 마찬가지인지, 그들은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바다를 사랑한다. 여름휴가 시즌이 되면 너도 나도 떠나는데, 독일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는 죄다 ‘섬’이다. 순위야 매년 약간씩 변동이 있지만 체감 상의 인기 순위는 늘 세 곳이다.
1. 스페인 마요르카
2. 그란 카나리아 섬
3. 이집트 후루가다
세 곳 중 특히 마요르카에 대한 독일인의 사랑은 유별스러운 데가 있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시차도 없는데다 유로 화폐까지 같기에, 우리가 제주도에 가듯 마요르카를 찾는다. 국내선이 대다수인 소도시 공항에도 마요르카 직항은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들의 사랑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독일인의 마요르카 사랑은 100여년을 이어왔으니까.
이념이 대립하던 1920~30년대. 많은 독일인 특히 예술가, 부유한 보헤미안들이 정치적 난민으로 마요르카를 선택했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는 심신이 지쳤을 그들에게 파라다이스가 아니었을까. 불행히도 평화도 잠시, 스페인 내전을 치러야했고, 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는 마요르카 마저 폭격 한다. 1950년대가 되면서 다시 관광지로서 활기를 되찾는데, 처음에는 독일 상류층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저렴한 패키지여행 상품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정치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한때 녹색당에서 환경 보호의 일환으로 일반인의 비행기 여행을 5년에 한 번씩만 허락하는 다소 극단적인 법 제정을 주장했다. (‘맙소사’가 절로 나오지만 요즘의 심각한 기후 변화를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의견만은 아닌 것도 같다.) 이에 슈뢰더 당시 연방 총리는, 모친이 85세이신데 해마다 겨울에 한 번씩 마요르카를 찾는다. 그런 법을 만들면 다음 마요르카 방문은 90세인데, 그때까지 기다리시라고 해야 하냐고 언성을 높였다. 물론 이 법안은 무산됐지만 슈뢰더 총리의 발언으로 마요르카는 다시 한 번 독일 내 뜨거운 감자가 됐다.
한 번은 독일 공영방송에서 <새로운 고향 마요르카(Neue Heimat Mallorca)>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마요르카에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독일인을 조명하고 있었는데, 공식적으로 마요르카 거주 독일인은 2만 명이 넘는단다. 아무리 이 섬을 좋아한들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기에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사는 노년층의 경우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마요르카는 천혜의 환경뿐만 아니라 실버 세대를 위한 최첨단 의료 시설을 구축해 놓고 독일의 연금 수급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이 섬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오죽했으면 독일의 17번째 연방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배출한 이 나라 사람들은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순정적인 면모가 있다. 언젠가 가족과 함께 무려 6번 째 마요르카로 휴가를 떠난다는 C에게 물었다.
“대체 독일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마요르카를 가는 거야?”
“푸하하-마요르카에 한 번도 안 가본 독일인은 없을걸? 장담컨대 최소 2번 이상은 갔을거야. 이유? 글쎄…나도 모르겠어. 그냥. 마요르카잖아!”
‘그냥’, 저스트라는 말이 이상하게 끌렸다. 마요르카는 내 여행 리스트에 없던 곳이었는데, 기본적으로 바다가 고팠고, 대체 왜들 이 섬을 좋아하는지가 궁금했으며, 왕복 비행기 티켓 60유로라는 국내 여행보다 저렴한 가격도 심히 구미가 당겼다. 은근슬쩍 그 열렬한 짝사랑 대열에 합류해 보기로 했다.
지중해 서부, 에스파냐 령 발레아레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 마요르카 공항에 발을 딛자마자 마주한 커다란 야자수와 따뜻한 밤바람은 완전히 다른 나라에 왔음을 상기시켰다. 불과 2시간 30분 거리였지만 분위기는 마치 남극에서 아프리카로 온 듯 상반됐다. 밤이 이렇게 포근하면 낮에는 얼마나 근사한 햇살이 내려쬘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살면서 태양과의 만남이 이토록 기다려지기는 처음이었다. 이미 독일인이 왜 마요르카와 사랑에 빠졌는지 이해를 해 버렸다. 비행기 두 시간만 타면 혹독한 비 지옥에서 벗어나 햇살 파라다이스를 만날 수 있다는데, 게다가 60유로라는데, 두 팔 벌려 껴안고 사랑해야지!
이 여행의 목적은 아무도 시키지 않은 자발적인 마요르카 인기 비결 탐구였기에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요즘은 한국인에게도 꽤 유명한 관광지가 됐지만 그 당시엔 국내 정보도 전무후무했던터라, 구글로 가볼만한 곳을 뒤적였다.
‘꿈과 환상의 화가, 호안 미로’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섬에서는 꿈, 환상 이런 단어들이 현실에서 발현될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예감이 발동한다. 화가는 바르셀로나 출신이지만 일평생 사랑한 아내 필라르의 고향 마요르카에서 생을 다할 때까지 살았다.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 발자취를 느껴보자 싶었다. 이 외 일정은 태양에 맡겨볼 참이었다.
아침, 미술관으로 가는 길. 그토록 고대했던 햇살은 이미 마중을 나와 있었다. 거의 한 달 만에 보는 해였고, 파란 하늘이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없었다. 이 섬의 색깔은 마치 파랑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푸르름이 넘실되니 겨우내 웅크렸던 마음이 파란 물감 퍼지듯 스르륵 풀렸다. 하늘을 가리켜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라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 알게 됐다. 후안 미로는 이 파랑을 눈동자에, 가슴에 그리고 화폭에 담았겠지. 그의 작품도 좋았지만 미술관으로 가는 길 자체가 꿈결을 걷는 듯 환상적이었다.
독일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이 지중해성 기후야 말로
그들이 사랑하는 명백한 이유가 아니면 무엇일까,
그야말로 날씨 맛집이었다. 시린 1월에도 꽃이 피는 곳이니까…. 분홍, 노랑, 보라 꽃들이 골목 곳곳에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었다. 예쁘기도 하여라. 매일 매일이 맑음인 날씨와 지천에 널린 꽃은 유독 자연을 사랑하는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 섬에선 무엇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또 다른 요인을 굳이 찾는다면 편의성이 아닐까 한다. 보통 외국에 왔음을 느끼는 첫 번째 배경은 색다른 환경, 두 번째는 외국어일 것이다. 그러나 마요르카에서는 두 번째 원칙이 보란 듯이 깨졌다. 할로! 당케! 여기서도 독일어, 저기서도 독일어. 독일어가 왕왕 내 귓전을 울린다. ‘여긴 스페인인가 독일인가.’ ‘중국이 산토리니를 샀고 독일이 마요르카를 산 게 틀림없다.’
워낙 독일인이 많이 오다보니 호텔이며 레스토랑이며 웬만한 관광지에는 독일어 안내 표시가 있었고 직원들 역시 독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호텔 커피머신에는 Coffee, Kaffee, 출입구에는 Entrance, Eingang, 아주 세세한 부분도 놓치기 않겠다는 듯 독일어가 깨알같이 써 있었다. 그렇다보니 독일인들은 아주 마음껏 독일어를 쓴다. 거침이 없달까. 호텔 조식 때 만난 한 독일 아주머니는 누가 봐도 동양인인 나에게 독일 땅이 아닌 스페인 땅에서 독일어로 커피 머신 작동법을 물었다. 설명을 해 드렸지만, 보통 이런 상황이면 영어로 물어보는 게 일반적 일 텐데, 대체 나의 무엇을 보고 독일어로 질문했을까? 그사이 그녀가 원하는 커피가 연기를 뿜으며 치이익- 나왔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며 당케 당케! 슈퍼 당케!! 온갖 수사어구를 남발하며 고마움을 표현하더니 갑자기 박장대소를 했다. 별로 웃을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웃으시지? 이럴 땐 딱히 맞장구치기도 계면쩍다. 알고보니 너무 간단한 걸 물어봐서 민망했던 건지, 여행지에서 이뤄낸 작은 성공이 그녀를 웃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는 후자가 아닐까 추측했다.
일상에서는 당연한 행위가 여행지에서는 특별한 일이 된다. 커피 주문을 완벽하게 했을 때, 대중교통을 제대로 탔을 때, 한 번에 목적지를 찾아갔을 때, 그런 작은 성공이 알알이 모여 커다란 성취감을 준다. 그 사소한 기쁨이 차곡차곡 쌓여 여행의 추억이 된다. 그래 맞다. 그녀도 나도 이곳에서 만큼은 아주 세세한 색다름에도 놀라워 하고 감동할 수 있는 같은 여행자였다.
그동안 독일인 특유의 무뚝뚝함이 참 싫었다. 그들은 자국민, 나는 외국인이다 보니 서로의 처지가 달랐고 이방인을 대하는 게르만족 특유의 자만심이 느껴질 때, ‘내가 여길 뜨고 나면 다시 오나 보자!’라며 으르렁 댔다. 그러나 마요르카에서 만난 독일인은 여행자라는 동질감 때문일까. 아니면 이 섬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빚어낸 마술일까. 하나같이 밝고 유쾌하고 친절했다. 그래서 모두를 돌아보게 만들었던 아주머니의 호들갑스러운 웃음이 좋았다.
분위기 탓인지 그날 아침, 남편도 뜬금없이 속마음을 고백했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있잖아. 행여나 한국으로 돌아가서 초반에 일이 잘 안 풀려도 지금처럼 즐거운 모습으로 살자. 너무 조바심 내지 마.” 라고 한 적이 있다. 무심결에 뱉은 말이었는데 그에게는 큰 힘이 됐는지 연거푸 고마움을 쏟아냈다.
사실이 그랬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래 친구들보다 한참 뒤처질 것임을 안다. 우리는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자식도 없다. 완벽한 무의 상태에서 남과 비교를 하면 결과는 100% 참패일 것이다. 희한하게 비교는 하면 할수록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전술을 갖고 있다. 100% 이기는 방법은 아예 싸움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이데, 각자의 길과 속도가 있는데, 똑같은 루트를 설계해 놓고 누가 빨리 가나 경주를 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게임이 아닐까. 세상이 좀 치사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린 이날 약속했다. 정 비교를 할 거면 스스로와 하기로. 독일에 오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 결혼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어제와 나와 오늘의 나. 마요르카에 오기 전의 나와 후의 나(독일인이 왜 이 섬을 좋아하는지 궁금증이 풀렸다. 후후후)….
그런 이야기를 하며
커피 한 입~
바다 한 입~
하늘 한 입~
공기 한 입~
웃음 한 입~
행복 한 입~
유치 한 입~을 먹었다.
말년의 쇼팽은 상드와 함께 파리에서 마차로 대륙을 통과해 배를 타고 마요르카에 이르렀다. 그 유명한‘ 빗방울 전주곡’이 바로 이 섬에서 탄생했다.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랑의 도피처에서 예술은 빛났다. 천재화가 후안 미로에게는 위없는 따뜻한 사랑을 보여준 창조의 영감이었고, 하 수상하던 시절 수많은 보헤미안들에게는 영혼의 안식처였던 곳. 오늘날 독일인에게는 비타민D와 같은 성지가 된 마요르카.
섬의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드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래서 내륙의 민족이 섬을 좋아한다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하다. 땅을 딛고 사는 외로운 사람들은 누구라도 섬을 찾기 마련이니까. 육지와 바다 사이. 내가 살던 세상과 멀어지되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은 그 경계의 아슬아슬한 위치는 묘하게도 고립감과 함께 위로를 준다.
바다는 밀물과 썰물을 끌며 섬을 오간다.
일상에 치여 파랗게 멍든 자국들을 쓸어간다.
그 자리엔 파란 희망이 돋는다.
영롱한 바다 빛깔이, 중세풍 담장에 내리쬐는 햇살이 자꾸만 발길을 잡는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던 나는 이 섬에 와서야 그 말을 믿게 되었다. 사랑하면 닮는다고 하던데, 어느새 내 마음은 쪽빛바다를 닮아가고 있었다. 독일인의 그 곡진한 사랑이 궁금해 마지않았던 어느 이방인은 어느새 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다.
- 작가: 여행생활자KAI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여행생활자, 주변 살펴보기가 취미인 일상관찰자
- 본 글은 여행생활자KA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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