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도 훌쩍 넘은 나이에 팔꿈치를 돌바닥에 갈았다. 뒤늦게 자전거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잡고 있는데도 자전거 위에서 얼음이 되어 소리만 꽥꽥 지르는 동양 여자를, 산책 나온 주민들은 신기하다는 듯 웃으며 바라본다. 자전거 선배인 아이들은 엄마의 그런 모습이 재밌나 보다. 눈을 반짝이며 깔깔거린다. 이렇게 타는 건데, 하고 자기 자전거에 올라 제비처럼 한 바퀴 쌩하고 달려 돌아오기도 한다.
내 몸이 고꾸라져 넘어지는 느낌은 참 오랜만이다.
얼얼하고 아프다.
속도는 대체로 고통을 수반한다. 백 미터를 전력 질주하고 났을 때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스키에 두 발을 얹고 뽀득거리는 언덕을 시원스럽게 내려온 다음날은 근육이 온통 뻐근하듯이. 내가 40년 이상 지면과 닿아 온 속도를 바꿔 보려다 보니 이렇게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피가 맺힌다.
나는 원래 기계와 속도에는 젬병이다. 이 비루한 몸뚱이가 빠른 경우가 있다면 잠들 때뿐이다. 머리만 대면 자기 때문에 아이들을 재우다 내가 먼저 곯아떨어져, 아이들이 마음껏 엄마 눈코입을 후빌 수 있게 프렌들리한 얼굴을 제공한다. 그것 말고는 평소에 밥을 먹는 것도, 걷는 것도 느리다. 마음도 대체로 느긋한 편이다. 나는 거북이라는 별명을 꽤 오래 달고 살았다. 누가 머리를 건드리면 목이 쏙 움츠러드는 까닭에 붙은 별명이었지만, 사람들은 내가 거북이라고 하면 대체로 온화한 미소와 함께 알 것 같다는 표정들을 했다.
운전을 시작할 때도 꽤나 애를 먹었다. 남이 운전하는 건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을 타고서도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데, 내가 운전하는 빠른 탈것은 무섭고 겁이 난다. 도로 운전을 시작하고서 나는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는 꿈에 무수히 시달렸다. 꿈에서만 내고 현실에서는 제대로 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더 신기할 정도로, 운전하는 꿈만 꾸면 그렇게 앞 차에 슬금슬금 다가가 콩 박곤 했다. (주행 중의 접촉사고보다는 주차장 기둥에 호쾌하게 긁기가 내 전공이다.)
자전거도 무섭다. 자전거는 왜 기본형이 네 발이 아니고 두 발인 것인가. 이 나이에 그냥 당당하게 네 발 자전거를 타고 다녀 볼까. 그리고 자전거 안장은 왜 이렇게 딱딱한 거야. 엉덩이가 사르르 녹을 만큼은 아니더라도, 좀 부드러운 승차감을 고려할 순 없는 건가. 거듭되는 실패와 불만 속에서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 생각이 있다. 이걸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이 나이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지금껏 자전거 못 타고도 잘 살아왔는데.
어렸을 때 자전거를 배운 적이 없다. 언니들까지는 두 발 달린 자전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 워낙 자주 도둑을 맞다 보니 부모님은 더 이상 자전거를 사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두 발을 땅에 착 붙인 채 살아왔다. 그럭저럭 살만했다. 동아리에서 강촌으로 엠티를 갔을 때 나 혼자만 자전거를 탈 줄 몰라서 몹시 민폐를 끼쳤던 것 빼고는. 사육기인 고3을 갓 탈출한 나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고, 뒤에 나를 태웠던 비쩍 마른 친구는 안 그래도 더운 여름날에 땀을 뻘뻘 흘렸다.
그런데 독일에서 살다 보니 사람 구실을 하려면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 하는 것 같았다. 걸음마도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내밀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누구나 시험을 봐서 자전거 면허를 따야 하는 나라다. 소아과에서 발달 상태를 체크할 때도 의사는 아이가 어느 단계의 자전거를 탈 수 있는지를 늘 묻곤 했다. 봄이 되면 땅에 두 발을 딛고 걷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가 싶을 만큼 많은 자전거들이 세상에 동글동글 쏟아져 나온다. 올봄엔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에 틀어박혀 뻐근하게 지내다 보니 가족들이 일렬로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숲이며 호수로 나들이 가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나도 배워볼까. 내년쯤 이사 갈 동네에는 슈퍼마켓이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 배워두면 나중에 바구니를 단 자전거를 타고 장을 봐 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 계속 땅에 처박는 중이다.
아니 다들 어떻게 저렇게 쉽게 슥슥 타는 거지. 첫째 아이는 네 살이 되고 보조바퀴를 떼었을 때, 거의 5분 만에 요령을 터득하고 안정적인 주행을 선보여 잔뜩 쫄아있던 나를 놀라게 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엄마 오리 새끼 오리처럼 자전거를 타고 쫑쫑쫑 놀이터를 향할 때, 나는 뒤에서 헐레벌떡 뛰어가느라 늘 숨이 차다. 그럴 때면 그냥 나는 뒤에서 말이나 탈까 싶기도 하다. 말은 발이 넷이니까 네 발 자전거처럼 안정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자전거에 비해 말은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말 때문에 차를 팔 수는 없지.
논어 옹야편에 보면, 선생님처럼 사는 건 너무 힘에 부치다며 앙탈을 하는 염유에게 공자님께서 말씀하신다. “힘에 부친다는 것은 힘껏 길을 달리다가 쓰러지는 것을 말한다. 지금 너는 마음으로부터 선을 긋고 있구나.” 사실은 힘에 부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위축된 것이라는 말씀이다. 못 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것 아니니, 이렇게 물으시는 셈이다. 나도 지금 마음이 위축되어 슬그머니 선을 그으려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잘 안 되더라도 끝까지 열심히 해보라고 입바른 소리를 할 거면서.
체념의 씨앗이 슬금슬금 싹을 피우고 덩굴을 뻗어 나를 옥죄기 전에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가 이 나이에 꼭 자전거를 배워야 하는, 격렬하게 좋은 그런 이유가 있을까요?”
“없습니다”라고 단호한 답을 달아주는 지인들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자전거에 호의적인 댓글들이 쏟아졌다.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 환경에 좋다, 이제 관절을 생각할 나이다, 자전거가 예쁘다.
문명의 몰락이나 자원 고갈에 대비해야 한다는 디스토피아적 이유도 등장했고, 마음속에 사라락 들어오는 공감각적 설득도 있었다.
“수영할 때 물소리를 느끼듯 자전거를 타면 바람 소리가 들려요. 내 속도에 따라서 바람 소리를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답니다.”
아 그래, 나도 그렇게 차츰 늘어가는 백발을 휘날리며 바람의 요정이 되어 볼까.
자전거 타고나서 마시는 맥주는 더 맛있다는 말에 내 귀가 마치 호들갑스러운 나비처럼 팔랑거릴 때쯤, 최고로 강려크한 이유가 등장했다.
“자전거 타면 소고기 사 줄게 언니.”
아, 왠지 저 멀리 아득한 지평선 어드메에 나의 소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고, 나는 그곳을 향해 이 두 바퀴로 끝내 도달해야 할 것 같은 이 장렬하고도 가슴 벅찬 느낌.
그래 이거다.
그러나 벅차기만 하고 나는 여전히 굳어 있다.
“자전거는 자유입니다!”
한 지인이 달아 준 이 예쁜 문장을 보고 생각했다. 자유에는 역시 공포와 불안이 따르는 것인가. 이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극복해야 나는 바람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는 걸까.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도 믿고 있는 말이 있다. 안 되는 게 되는 거라는. 실패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되어가는 과정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실패와 성공의 경계는 꽤 모호하다. 실패인 줄 알았는데 결국 성공인 것들, 성공인 줄 알았으나 돌아보면 실패인 것들. 실패의 교훈이 거름이 되어 그 실패가 없었다면 이루지 못할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고, 성공이 독이 되어 누구나 손가락질하는 실패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실패와 성공은 참 정의하기 어려운 말이 아닌가 싶다. 삶 속에서 실패와 성공은 꽤 희한하게 맞물려 있기에.
몸뚱이가 너무나 비루하여 결국 이번 생에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전거는 내 삶에 그 동그란 바퀴 자국을 또렷하게 내줄 거라고 믿는다. 어설픈 몸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다 보면, 적어도 이 세상에서 나의 균형과 속도를 잡는 일이 얼마나 노력을 요하는 것이었는지 쯤은 내 마음 안에 깊이 남지 않을까.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무엘 베케트가 말했다.
“또 실패했다. 이번에는 좀 더 세련되게.”
나도 내일은 좀 더 세련되게 넘어져 볼 생각이다.
- 작가: 이진민 /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정치철학 박사
미국서 두 아이를 낳아 현재 독일에서 거주 중.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풀어내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 본 글은 이진민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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