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이제는 부모가 될 사랑하는 은,
어린 시절에는 어린이날이 끼어있던 오월이 참 좋았던 것 같아. 설레는 바람과 함께 불어오던 시끌벅적한 오월의 그 느낌은 여름밤만큼이나 마음을 적시는 무언가가 있잖아.
풍성한 오월을 누렸던 그 시절을 지나 어느덧 어색한 ‘어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오월이 주는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어른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우리를 무겁게 만드는 또 하나의 단어는 바로 ‘부모님’인 것 같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방긋 웃을 수 있던 그때처럼 가벼이 부모님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이라는 존재는 쉬이 닿을 수는 없지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그런 존재로 자리 잡게 된 것 같아.
독일 생활로 인해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진 나와 부모님 사이에는 이제 오가는 언어들도 많이 달라졌고 다툼이 있던 지난날에는 마음의 거리마저 생기더라. 돌이켜보면 관계의 변화는 나로부터 온 것 같아. 부모님께 참 많이도 의지했고, 크고 작은 것들을 세세히 이야기하며 ‘우정’으로 부모님과의 관계를 이어왔는데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었어.
부모님과 나 사이 거리
부모님의 이혼 후 아빠와의 관계가 유독 각별했던 내게 당신의 세상은 마치 나의 세상과도 같았고, 아빠의 희생은 언제나 삶의 원동력이 되어 나를 이끌었지. 여전히 마음 안엔 그들을 향한 사랑이 변함없고 당신들을 웃게 해드리고 싶지만 언제부터인가 생긴 부모님과 나 사이의 알 수 없는 이 ‘거리’는 무엇일까? 이제는 이에 대한 정의를 때가 온 것 같아.
언니의 말처럼 한국사회에서 ‘부모’가 가지는 사회적인 이미지는 희생이라는 단어와 밀접해있어. 세상이 바뀌면서 가정과 부모의 형태도 달라졌지만 우리 세대가 겪어온 부모님의 모습은 ‘희생과 헌신’없이는 표현하기 어려울 거야.
그런데 그 희생이라는 단어 뒤에 따라오는 엄청난 책임감, 혹시 느껴본 적 있어?
사랑의 형태와 종류 중 어쩌면 가장 위대하고도 고귀한 것은 어쩌면 부모님의 사랑이 아닐까라고 가끔 생각해. 그만큼 가슴을 울리는 것도, 그만큼 나를 살게 하는 것도 없잖아. 그래서 나는 그 사랑 뒤에 숨은 그들의 ‘기대’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것 같아.
사랑 뒤에 숨은 기대
집에서 나온 지 8년이 넘어가는 지금, 나는 과연 독립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몇 달 전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독립하는 과정에 서있다’라고 말하고 싶어. 육체의 독립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정신의 독립이란 걸 알게 됐기 때문이야. 관계가 돈독할수록 의존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끔 그것은 스스로의 선택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어.
동서양은 발달과정에서부터 부모를 대하는 법을 다르게 배운다
발달심리학에서도 실제 동양과 서양의 발달 과정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줘. 동양의 경우에는 0세부터 이미 ‘사람/그룹 중심’의 문화 속에서 어린이를 성장시키고, 서양의 경우에는 갓난아기 시절부터 개인의 선택과 가치관의 성립을 가장 중요시 해. 이러한 발달 과정 속에서 그룹을 위한 희생을 당연한 것, 그룹이 아닌 개인을 위한 선택은 옳지 않은 것으로 교육받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그룹을 떠난 독립적 선택이 ‘별난’ 행동으로 치부되는 것이 사실 놀랄 일이 아니야. 그런데 그룹 중에서도 개인과의 연결성이 가장 깊은 가족,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는 과연 어떨까? 부모님의 희생을 보고 자란 한국 어린이들, 어른들에게 부모님이란 존재가 가슴 깊은 눈물로 자리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거야.
사무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 그 마음 이상으로 그들을 동정하고 삶의 많은 부분을 맡겨버린다면 우리는 결국 ‘나’이지만 ‘내가 아닌’상태로 삶을 사는 것과 같을 거야. 나는 바로 이와 같은 삶을 오랫동안 살았었어. 그러다 이곳 독일에서 삶의 중대한 선택 앞에 처음으로 부모님과의 강한 부딪힘을 경험했고 그 과정을 통해 그들 내면의 기대가 얼마나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부모님의 기대를 원망하고 싶지 않아. 희생한 만큼 자리하는 기대 그것은 인간의 너무도 당연한 심리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러한 마음은 다양한 형태로 자녀에게 표현되고, ‘in der gruppenbezogenen Kultur : 그룹문화’에서 성장한 우리 자녀들은 부모를 향한 알 수 없는 감정을 가지고 삶을 통해 그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노력하게 돼. 이것은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이끄는 주범이 되기도 해.
단순히 부모님께 ‘의존적인’자녀, 자녀를 향한 부모의 ‘희생’이라고만 말하기엔 사실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는 조금 더 문화적이고 심리적인 무언가가 있어.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독일 사람들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독립적인’ ( o ) ‘이기적인’ ( x )
어린 시절부터 개인을 ‘독립 개체’로 인지하고 성장한 독일인들에게 가족, 특히 부모님은 특별한 존재이지만 약간의 거리감을 지닌 존재로 자리해.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두는 결국 ‘내’가 될 수 없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개인주의적인 독일인들의 사랑 표현 방식은 어떨까?
독일에는 Muttertag:어머니날, Vatertag: 아버지 날이 따로 있어. 그중에서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날은 어머니날인데, 이때 많은 독일인들이 휴가를 쓰거나 주말을 이용해 부모님의 집에 방문해. 돈을 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선물을 사 가거나 함께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등 소박하고 소소한 것들로 마음을 표현해. 내 주위의 친구들은 엄마를 위해 직접 장식품을 만들거나 카드를 쓰고, 케이크를 구워 고향에 내려가는 등 돈보다는 정성에 초점을 두고 마음을 표현했어.
‘나=개인이 소중하니까’, ‘남도 소중하다’.
독립 개체로 성장하는 법을 배우고, 부모와 나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를 자연스럽게 배운 그들에게 자기 자신은 가장 소중한 존재야. 하지만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부모님도 소중하고, 그들의 선택 또한 소중해. 부모에게 또한 자녀의 선택도 그런 것이더라. 금전적인 지원을 대학교 때까지 이어가고 결혼할 때 자금을 몰래 내미는 한국과는 달리 독일의 부모님은 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지난 자녀에게 재정지원을 크게 하지 않아.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고 이것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았어.
독일이란 나라가 워낙 크고 지역이 많아서 대학교를 선택하거나 직업을 선택할 때만 되어도 집에서 나오는 일이 허다해. 이처럼 자연스럽게 물리적인 독립을 경험함과 동시에 그들의 자연적 성향이 결부되어 그들은 더욱더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나의 개인적인 성장통과 더불어 뿌리부터 다른 문화들의 다양성은 이곳 독일 생활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다름 속에 성장하고 또한 새로운 시각을 얻어가는 지금, 나는 부모님과 앞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관계가 참 기대돼 🙂
곧 부모가 될 사랑하는 언니, 우리가 나눈 이 고민들이 건강한 뿌리가 되어 우리 안에 내려지고 언젠가 자녀에게 좋은 향기로 흘러가길 소망해 봐.
늘 건강하자 우리 🙂
- 작가: 물결 / 예술가
독일에서의 삶을 기록하는 예술심리치료사. 재미있게 사는 것이 좋은 사람.
- 본 글은 물결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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