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그냥 뭘 만들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이, 쓰레기통으로 가기 직전의 물건들로 노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걸로 기획해 보았습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이런 것들로 놀 수 있다는 사실이 의외로 머리에 안 떠오를 수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디어 공유차 올려 봅니다.
상자 같은 건 워낙에 아이디어들이 많으시니, 잘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시는 애들로 골라 보았어요.
- 페트병 뚜껑
1) 좀 어린아이들에게는 이 뚜껑을 모아주면 신나 합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모아만 줘도 좋아합니다.
크기 비교하기, 색깔, 숫자 세기, 던지기, 쌓기, 뭐 다 가능한 전천후 놀잇감이자 교재입니다.
내기를 좋아하시는 가풍이면 윷놀이 말판이나 어른들 포커게임 칩으로 쓰셔도 손색이 없겠… 흠흠.
2) 플러스 알파: 뚜껑에 좀 볼록한 스티커를 붙이면 도장이 됩니다. 신이 납니다.
- 참고 1) 거친 질감의 스티커는 피하세요. 매끈한 질감이어야 도장이 예쁘게 잘 찍힙니다. 2) 좌우가 반대로 찍히기 때문에 알파벳은 좌우 대칭이 되는 A, H, I, M, O, T, U, V, W, X 만 가능합니다. 이걸로 알파벳 도장 세트를 만드시려다가 좌절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셔서 미리 알려 드려요.
3) 플러스 베타: 아이가 좀 크면, 안에 똑같은 스티커를 두 개씩 붙여서 메모리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요.
- 테이크 아웃 용기
남은 음식을 싸 온 테이크 아웃 용기가 있다면 깨끗이 씻어서 아이들이 목욕할 때 보트로 갖고 놀라고 주어 보세요. 이게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되게 좋아합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목욕용 장난감이 집에 있더라도 늘 그것만 갖고 놀면 심심하거든요. 중간중간 재활용품을 넣어주면 목욕 시간에 더 활기가 도는 것 같아요.
생수통(물을 담았다가 뺐다가 다른 통에 부었다가 동생 놈 머리에다 부었다가 극강의 아이템), 밑에 구멍이 뚫린 과일 포장 용기(물을 담아 들어 올리면 물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모두 모두 좋은 아이템.
- 달걀 초콜렛에서 나오는 노란 플라스틱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는 모를 수가 없는 바로 그것, Kinder Überraschung.
한국에는 킨더조이로 알려져 있는 듯해요.
킨더는 아이들이라는 뜻의 독일어입니다. 위버라슝은 서프라이즈. 아마 이쪽에서 만들어진 제품인가 봐요.
어쨌든 이것도 무심한 듯 시크하게 그냥 모으면 됩니다. 모아서 한 바구니쯤 되면, 그것 그대로 신나는 장난감이 되거든요.
1) 빨간 모자 아가씨가 할머니에게 배달 가는 바구니로 쓰이기도 하고, 창문 난간에 걸터앉아서 하나씩 던지면서 Humpty Dumpty 노래를(험티 덤티라는 달걀 녀석이 담장에 앉아 있다가 떨어져서 깨졌다는 내용의 영국 전래동요) 부르기도 합니다.
2) 거미줄 놀이를 할 때 죄다 가져다 붙이기도 하고 (엄만 좀 징그러웠다 얘들아…)
3) 제일 신나는 건 광란의 농구 타임.
4) 플러스 알파: 달걀 껍데기 안에 펠트천으로 달걀을 만들어 넣으면 플레이 키친 요리 재료로 재탄생.
- 시장놀이
우유갑, 잼 병, 요거트나 고추장 용기 같은 것도 깨끗하게 씻은 뒤 바구니에 모아주면 시장놀이 장난감으로 잘 쓰입니다. 따로 시장놀이 세트를 따로 사지 않아도 좋죠. 독일에는 소 포장으로 파는 물건이 많아서 특히 좋아요. 유리로 된 잼 병 같은 건 처음에 깨질까 봐 조금 걱정도 되었는데 오히려 다소 묵직한 무게감과 그립감이 좋은 모양입니다. 잼 병이 생기는대로 이 놈들이 무조건 가져감.
과일이나 채소는 선물 받은 썰기용 원목 놀이가 있어서 그걸 이용합니다. 봉지에 오렌지나 사과를 담아주고 싶다길래, 그냥 두꺼운 종이로 몇 개 만들어 작은 지퍼락 봉투에 담아주기도 했습니다.
플러스 알파: 촌스러운 계산기를 하나 만들어 주면 놀이가 훨씬 신나집니다. 이건 정말 추천합니다.
만드시기 나름이겠지만 제가 만든 방법을 예로 들어드리자면
1) 마트 폐박스 코너에 딱 저렇게 각지게 생긴 상자가 있길래 가져와서 윗면만 따로 붙여 몸체를 만들고
2) 스티커로 숫자와 각종 버튼을 표시해주고
3) 먼지 제거용 돌돌이에서 나온 플라스틱 본체와 종이컵, 포장용 리본으로 바코드 인식기를 만들어 붙여주고 (광분하는 아이들)
4) 나무젓가락을 글루건으로 붙여주고 (신나게 카드를 긁어보자)
5) 포스트잇 플래그 다 쓰고 남은 투명판(워후, 사이즈가 딱 적당해-)에 안 쓰는 카드를 꽂아 옆에 붙여주었습니다. (feat. 오늘도 열일한 나의 쓰레기 보물상자)
입으로 땡- 땡- 바코드 인식되는 소리를 내며 식료품 구입에 매진하는 아이들.
놀다가 닳으면 또 새 재활용품으로 물건을 바꿔주면 되니 리필도 간편합니다.
종이로 된 파스타 상자나 시리얼 상자는 중간중간 적당한 쓰레기가 나올 때 새 걸로 갈아주면 좋겠죠.
망한 것 하나 제보드립니다. 우유팩 의자.
실을 우유팩을 모아서 성을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모으다가 늙어 죽겠더라고요. 우유팩이 제법 공간을 차지하니 좁은 집안에 모을 공간도 만만치 않고요. 그래서 성은 포기하고 아이용 의자를 하나 만들어 줘 봤는데, 한 번 앉고 끝.
그러나 의외의 용도 발견!
둘째가 뚜껑을 모두 뺐다가 다시 끼우는 놀이에 열광. 허허허.
그렇게 님은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다가 쓸쓸히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가셨습니다. (feat. 테이프 떼어내느라 죽을 뻔)
그럼, 취향에 맞는 쓰레기로 재미있게 놀아보세요!
댓글로 더 많은 아이디어 나눠 주셔도 정말 고맙겠습니다.
- 작가: 이진민 /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정치철학 박사
미국서 두 아이를 낳아 현재 독일에서 거주 중.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풀어내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 본 글은 이진민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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