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은 전쟁 중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많은 범죄를 일으켰는데 현재까지도 이에 대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책임지고 반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독일에는 전쟁 당시 참혹함과 독일의 잔인함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소나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많은데요, 이번 시간에는 브레멘에 있는 독일 최대의 제2차 세계대전 기념관인 벙커 발렌틴(Bunker Valentin)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독일 해군의 위상을 높이려 했던 벙커 발렌틴(Bunker Valentin)
브레멘의 베저강(Weser)에는 35,000제곱미터의 엄청난 규모의 건물이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바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잠수함 건조를 위해 건설한 벙커 발렌틴(Bunker Valentin)입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을 이용한 해상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에 따라 나치는 독일 해군의 위신을 높이고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해군의 새로운 무장 지대를 만들고 싶어 했는데 그곳이 벙커 발렌틴입니다.
12,000명의 강제 노동자 동원
1943년 5월, 본격적인 벙커의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벽과 천장의 두께만 무려 7m에 달하는 이 거대한 벙커를 1945년 3월 완공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매일 최대 12,000명의 노동자가 강제노역에 시달렸습니다. 노동자들은 주로 체코,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동원되었으며 공사 기간 동안 1,600명 이상의 강제 노동자가 영양실조, 감기, 감독관의 폭력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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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의 폭격으로 건설 중단
그러나 완공을 거의 앞둔 1945년 3월 30일, 연합군의 폭격으로 벙커의 천장이 뚫렸고 건설이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4월 10일 나치는 적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곳의 노동 수용소를 정리했고 이곳에 수감된 강제 노동자 중 일부는 함부르크 근처의 Neuengamme 집단 수용소로 이동하기 위해 5일을 행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으로 이동한 6,600명의 강제 노동자가 다시 세 척의 배로 옮겨지는 과정 중 영국 공군의 공격으로 배가 침몰하고 모두 목숨을 잃었으며 니더작센주의 Sandbostel POW 수용소로 옮겨진 수감자 중 일부는 영국군에 의해 해방되었습니다.
창고로 쓰이던 벙커 일반인에게 공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이곳은 한동안 연합군에 의해 폭탄 실험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말 독일연방군이 부지를 인수했고 2010년까지 독일 해군이 이곳을 자재 창고로 사용했습니다. 현재는 일반인이 무료로 이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였고 매주 화, 금, 일요일에는 1인당 7유로로 가이드 투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 링크)
- 작성: su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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