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까지 갈 필요 없이 가까운 과거에도 당대의 집단지성이 동의한 오늘날 기준으론 상식 밖의 기록들이 있습니다. 독일의 최근 조상들 역시 오늘의 우리가 기대하고 흠모하는 현대 독일인의 사상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중 실소를 자아내지만 당당히 독일의 정사로 취급받는 일부를 소개합니다.
- Lufthansa의 여성관
1985년, 한 언론사는 ‘루프트한자’는 왜 여성 조종사를 고용하지 않느냐는 날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대변인은 “여성이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고 조종석의 남성을 향한 경쟁심이 너무 심해서…”라고 답변합니다. 20세기, 당대를 풍미하던 독일 국영 항공사의 공식 입장이라고 하기엔 구시대적 발상입니다.
- Helmut Schmidt의 결단
1979년,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독일 11개 주요 도시의 민영 TV 방송 송출을 중단시켰습니다. 당시 법무장관 Vogel은 정보 과부하로 가족의 사생활이 파괴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개헌까지 고려합니다. 컬러 tv의 보급으로 상업, 위성 방송 시대의 태동기에 맞선 정치적 결단은 ‘개인 텔레비전은 원자력보다 위험하다’는 캐치프레이즈만 남아있습니다.
- 알라신을 영접한 쾰른 대성당
1965년 2월 3일 이른 아침, 출근길을 서두르던 쾰른 노동자들은 대성당 근처에서 발이 얼어붙습니다. 기도용 망루를 팔에 감은 채 유럽 심장부의 유서 깊은 교회로 들어가는 수많은 터키 노동자들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이 광경은 대체역사 소설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이슬람교도들은 이날 쾰른 대성당에서 라마단 종료를 축하했습니다.
- 여교사가 독신주의가 된 사연
1951년까지 독일의 여교사는 결혼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여성은 일과 가사라는 이중적 부담을 견딜 여력이 없고, 일하는 여성은 독일 노동시장에서 남성의 불필요한 경쟁자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간의 시선과는 다르게 전후 독일 복구는 여성의 몫이었습니다.
- 갈색 피부 아이 Milschkingskinder 추방론
세계 2차 대전이 종료될 무렵, 아프리카계 미군과 독일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 아이들은 4,800명에 육박합니다. 분할 통치가 시작된 공화국의 소위 ‘Brown Baby’들은 은밀하며 때론 공개적으로 차별과 멸시를 받습니다. 1950년, CDU/CSU(독일 연합 정당)은 이 아이들이 학업을 마치면 독일에서 추방될 것을 요구합니다. 터무니없는 주장의 이유 중 하나는 ‘독일의 기후 조건이 ‘갈색 아이’에게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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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액 연봉 선수 출전 금지
대공황에서 막 벗어난 1930년, 독일 분데스리가 인기 구단인 FC Schalke 04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습니다. 14명의 주축 선수가 너무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이유로 시합 출전이 금지되었습니다. 당시 선수당 수입 상한선이 5마르크인 아직은 아마추어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에서 이들은 20마르크라는 거금(?)을 취득한 연유로 선수 생명 중단의 위기를 맞습니다. 1930년대 당시 1마르크는 현재 기준 4.50유로의 가치였습니다.
- 군 장성의 어이없는 죽음
1908년, 제국의 황제인 빌헬름 2세 앞에서 ‘발레리나 복장’을 한 독일군 내각의 수장이 춤을 추다가 추락사했습니다. 궁전 행사 사냥 중 심장마비설, 정치 탄압으로 인한 심신 미약설이 난무했던 황제 최 측근의 기괴한 사망 사고는 당시엔 군사기밀인 듯 함구령이 내려졌으나 풍문은 흐르고 흘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 마약상이 된 ‘Bayer’
아스피린이라는 ‘세기의 약품’을 개발한 Bayer사는 1년 뒤 이에 못지않은 베스트셀러를 출시합니다. 1898년부터 판매가 시작된 ‘디아세틸모르핀’은 오늘날 ‘헤로인’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니다. 당시 제품 홍보물에는 진통제, 고혈압 및 심장병 치료제로 소개됩니다. 덧붙여 모르핀 및 아편 금단 증상을 완화시키는 ‘비 중독성 약물’로 홍보된 신약은 유일한 부작용으로 변비 및 약간의 무기력증을 경고하였습니다.
- 전과 1범 ‘세바스티안 바흐’
1717년 가을, 독일의 천재 작곡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이전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는 이유로 4주간 감옥에 투옥됩니다. 죄명이 ‘고집’으로 알려진 이 투옥 사건은 악질 고용주를 충실히 섬기길 거부한 죄값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당시 뮤지션들은 다양한 이유로 감옥에 갇혔으며, 그중 ‘오만함’이 주된 죄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미혼 여성에게 부과된 세금
18세기 초, 베를린에 거주하는 미혼의 여성들은 한 달에 2페니의 ‘Jungfernsteuer(일명:처녀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20세~40세 사이의 미혼 여성에게 부과된 세금의 목적은 이미 결혼한 부부를 위한 재정적 지원과 함께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이라 선전합니다. 대단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유형의 세금을 발명한 이는 1699년부터 1711년까지 프로이센의 총리를 지낸 ‘Johann Kasimir Kolbe von Wartenberg’입니다. 거둬들인 세금 대부분은 발명가의 개인금고로 향했다고 전해집니다.
작성: 오이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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