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두통 환자분들이 오늘도 신경과 진료실 문을 두드립니다.
그동안 두통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해보지 않았을까요?
가방을 열어보니 은박지에 여기저기 구멍이 있는, 까먹다 남은 진통제가 있습니다.
약국에서 산 진통제는 처방약보다 '순한' 거라며 비타민처럼 가볍게 수시로 꺼내드시는 분들이 나타납니다.
친한 친구가 가방 속 진통제를 워낙 자연스럽고 캐주얼하게 소개해서 두통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오랫동안 먹다 보니 예전 약이 안 들어서 새로운 약국 약으로 바꿨는데 신박하게 잘 듣는다며 보여준 약의 성분이 심상치 않습니다.
워낙 컨디션이 좋아 보였던 분이라 한 달에 1-2번 먹겠거니, 복용 주기를 물어보니 한 달에 10일? 2-3일에 1번? 일상적이고 무덤덤한 답이 날아옵니다.
오늘의 주제는 ‘약물 과용 두통 (medication overuse headache, 줄여서 MOH)’입니다.
약물 과용 두통 환자분들은 만성 두통 환자분들입니다. 1주일에 2회 이상, 1달에 보름, 1년에 180일 가까이 진통제를 드시는 거죠. 횟수 만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다면, 기존 약이 자꾸 안 듣는다고 용량을 마음대로 늘리거나 효과가 더 좋은 다른 약을 찾을 때 의심해보세요. 1주일에 2-3회 복용하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이런 패턴을 수년간 이어온 분들은 꼭 염두하세요.
약물 즉, 진통제를 많이 먹으면 안 좋다는 것은 익히 아는데, 어떻게 안 좋은지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두 가지 측면으로 알고 계시면 됩니다.
1) 약물 과용이 오히려 두통을 유발하여 결국 두통의 횟수와 강도가 심해진다.
- 두통이 심해지면 더 센 진통제를 자주 찾게 되니 악순환의 비극이죠.
2) 익히 사용하는 진통제들의 부작용에 소화기계 부작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 속만 쓰린 것이 아닙니다. 뇌혈관이나 심장혈관에도 좋지 않아요.
가장 널리 알려진 약국 두통약은 ‘타이레놀’이나 ‘애드빌’인데, 이들은 염려하신 만큼 약물 과용 두통을 잘 유발하진 않습니다. 약물 과용 두통을 유발하는 성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카페인입니다. 카페인은 시중에 판매되는 많은 진통제에 들어있습니다. 타이레놀 성분 + 카페인, 이부프로펜 + 카페인 이런 혼합 제재들은 단일 제재보다 효과가 더 좋아 진통제 골수팬들에게 더 인기가 많죠.
카페인은 뇌혈관을 수축시키는 성분입니다. 편두통 발생 과정 중에 뇌혈관이 늘어나는데, 카페인이 그런 현상을 막아주니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1주일에 2회 미만으로 쓰면 독이 아닌 ‘약’입니다.
카페인은 어떻게 두통 환자들에게 ‘독’이 될까요?
사실 편두통기가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하루에 카페인 400mg 정도는 괜찮습니다. 문제는 인구의 15-20%에 해당하는 편두통 환자군입니다.
편두통이 발생할 때 뇌(시상)-삼차신경-얼굴 감각 경로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화학물질이 염증성 반응을 유도합니다. 이 화학물질은 3일 정도가 지나면 자연히 분해되어 소실되는데, 카페인은 그걸 방해하여 화학물질이 계속 잔존하여 편두통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만성화되는 거죠. 편두통이 발생해도 보통은 3일 이내 좋아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카페인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면 편두통이 만성화되어 ‘약물(카페인) 유발’ 두통이 만들어집니다.
또한 편두통 환자들은 편두통 자체 만으로 수면의 질이 불량한 경우가 많습니다. 깊은 수면 단계에 쉬 도달하지 못하는데 카페인까지 더해진다면?
(잠시 옆으로 새는 이야기)
카페인은 뇌신경을 ‘자극’시키는 케미컬입니다. 뇌와 몸에 이완을 도와주는 신경 전달 물질(아데노신)의 경로를 차단하여 휴식과 수면을 방해하고, (암페타민과 같은 마약 성분과 유사한 경로로) 교감신경을 항진시켜 몸은 ‘100m 달리기’ 모드가 됩니다. 좋은 면에선 학업이나 운동 능력을 향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정한 휴식을 방해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카페인 음료가 일상인 세상에서 커피, 에너지 음료, 각종 차와 탄산음료의 카페인 함량을 계산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약물 과용 두통은 왜 생길까요?
약에 대한 심리적, 신체적 의존 외에도 정상적인 통증 억제 기능의 약화, 유전적 요인, 약물 금단으로 인한 반동 두통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렵죠. 쉽게 말씀드리면, 통증이란 자기 방어 시스템의 일종인데 이 통증을 외부에서 자꾸 억압하면 뇌가 신호를 다른 경로로 해석하여 더 민감해집니다.
그럼 아파도 참으라는 얘기냐? 그건 아닙니다. 뇌가 헷갈리지 않게 제대로 치료해주자는 것입니다.
우선, 앓고 계시는 만성 두통에 대한 진단이 정확해야 합니다. 신경과 의사의 진단 과정 후 ‘편두통’이 맞다면 그냥 참기는 힘듭니다. 두통의 강도가 세기 마련이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아 편두통 예방 치료를 따로 해야 합니다.(편두통 예방 치료의 목표는 당장 두통의 횟수를 0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발작의 횟수를 줄이고 몸과 마음이 더 편하게 만드는 거죠. 편두통 예방 치료는 이번 글의 주제가 아니니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만성 두통의 경우 편두통과 긴장형 두통이 혼재하는 경우가 많아, 편두통 발작과 비 편두통 발작을 구분할 수 있게 교육합니다. 목적은요? 긴장형 두통 때는 되도록 약을 복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긴장형 두통은 진통제의 효과가 50% 미만이기에 약이 주된 치료가 아닙니다. 진통제를 복용하고 두통이 호전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약을 먹지 않았어도 저절로 혹은 근육 이완, 스트레칭 후에 좋아졌을 거라는 얘기지요. 그러니 두 양상을 구분하여 편두통 때만 진통제를 복용(다시 말씀드리지만, True 편두통 발작은 약 없이 참기가 힘듭니다.)하면 그만큼 복용 횟수가 줄어듭니다. 물리치료에도 불구하고 긴장형 두통이 심해질 때는 진료실에서 후두부 신경블록 주사를 놔줍니다. 주사의 중독성과 부작용이 없고 그날부터 효과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물 유발 두통에 대한 글을 보면서 카페인이 뇌에 미치는 부분에 대해 더 명쾌해지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향후에 뇌혈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약물 오남용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 작가: 익명의 브레인 닥터 / 의사
말보다 글로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13년 차 신경과 의사입니다. 우연히 코로나 시대의 독일을 겪는 중입니다.
- 본 글은 익명의 브레인 닥터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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