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4년간 정형외과 재활클리닉에서 근무하다가 지금 이 병원에서는 정신건강질환(Psychosomatik)과 심장재활(Kardiologie)환자들을 담당하고 있다.
작년 12월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6개월정도 다양한 이유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과 함께 운동치료를 하였다. 그 동안 100실이 만실이였으니, 지금까지 대략 600명의 환자들을 만났다.
각 환자의 스토리를 들으면 거의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다양한 인생스토리가 담겨있다.
성별, 연령, 국적, 교육상태, 직업 등과 상관없이 각자가 처한 상황들이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워 신체와 정신에 큰 영향을 미쳐 여기 병원까지 온 게 된 것이다.
다른 정형외과, 신경과, 심장질환과는 다르게 정신건강질환 환자들은 의료차트를 보기 전, 환자와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어디가 아픈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근데 이야기를 해보고, 챠트를 읽어보면 왜 병이 생겼는지 이해가 가는 상황들이 많이 있다.
그럼, 도대체 어떤 환자들이 병원에 오는걸까?
먼저, 환자들의 진단명을 간략히 보면 보다 정확하게 어디가 아픈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정신분열증
- 조울증
- 우울증
- 불안장애 (공황장애, 사회적불안장애, 특정공포장애)
- 강박증
-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 신체성 증상장애
- 해리장애
- 섭식장애
- 물질사용장애(알코올,담배/마약 등)
- 성격장애(편집성/반사회적/경계성/자기애/회피성/의존성)
이런 진단명은 정신과 의사와 임상심리치료사가 상담과 진료 후 결정내리며, 나는 주로 질병의 배경지식, 그들의 인생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진단명 하나로 한 환자의 병을 단정짓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너무나 단편적인 정보들이 많다. 퍼즐놀이로 비유하면, 나는 6주동안 같이 재활클리닉에서 동거동락하면서 전체 퍼즐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보통 1-2주는 관심주, 서로 알아가는 단계로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면서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관찰한다. 3주 이후부터는 조금 친해져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재활목표를 서로 확인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대부분 여기 오는 환자들의 배경지식과 상황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게 내가 짧게 6개월동안 일하면서 느낀 점이다.
첫째, 인간사에 있어서 가장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주는 것은 배우자 혹은 가장 친한 사람의 사망이다.
각 개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 다른 것처럼, 어떤 이는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 오는 환자들은 사고 혹은 질병 등의 이유로 배우자, 가족, 친적, 친구, 직장동료, 자녀 등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후 현재 자신의 신체와 정신이 힘든 사람들이다.
예상하지도 못한 죽음의 충격은 한 인간의 정신을 잃게 만들 만큼 엄청난 큰 충격이다. 이런 사람들은 일상적인 생활이 너무나 힘이 들어 여기에 오는 것이다.
둘째, 배우자, 가족, 친척, 친구, 직장동료 등이 큰 병으로 아프거나 장애가 있어서 본인이 직,간접적으로 케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부분 남편, 아내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하여 병투병을 하거나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야하고 그를 돌보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다 보면, 본인은 삶의 무게가 예전에 비해서 굉장히 무거울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러한 삶의 무게를 장기간 감당하기 너무 힘들고 지쳐 여기 오는 경우이다. 한 환자는 50대 초반 여성으로, 노령이 된 어머니를 간호하고, 자녀 중 한 명은 장애가 있고, 남편은 알코올중독환자이고, 직장생활은 육체노동으로 너무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셋째, 본인 혹은 측근의 사람이 자살시도를 했거나 자살시도 현장을 목격했거나, 성장기때 부모님,친척들로부터 상습적인 폭력, 성추행 및 성폭력 등 충격적인 사건, 사고에 의해 트라우마가 생겨 현재의 삶을 정상적으로 살기 힘든 사람들이다.
넷째, 혹독한 업무로 인해 번아웃이 된 환자들이다. 의외로 독일에서 사무직,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직장 내 업무과다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다.
주로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번아웃이 중지되지 않고, 운동도 운동한계를 두지 않는 환자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히 신체에 에너지가 다운되어 삶의 활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다섯째, 생산공장에서 육체노동, 단순노동으로 기계처럼 일하면서 정형외과질환(디스크 등)을 가진 환자들이다. 의외로 중년여성들이 굉장히 많으며, 집에서 가장역할을 하면서 몸이 아파도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힘든 육체노동으로 만성적인 통증을 가지고 살면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어쩔수 없이 업무를 계속하다 정신적인 어려움까지 격게되는 경우이다. 알디 냉동공장에서 무거운 짐을 하루종일 나르는 사람, 정육생산공장에서 무거운 돼지를 계속 들어야 하는 사람, 택배공장에서 숨도 못 쉬고 택배상자를 분류해야 하는 사람, 대형의류공장에서 하루종일 거의 뛰듯이 일하는 사람, 도로건설현장에서 하루종일 허리를 계속 숙이고 일하는 사람, 생필품공장에서 기계가 물건을 찍어내듯이 계속 기계처럼 서서 일하는 사람 등등. 일일히 다 적기 힘들 정도이다.
나는 운동치료사로서, 이런 환자들한테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운동과 신체활동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잠시 여기 있는 동안 본인건강만을 위해서 살아 보라고 권유하고, 본인이 처한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면, 힘들겠지만 본인의 생각을 변화시켜보고, 스스로 변화하기를 추천한다.
만약 그것마저도 힘들다면, 나는 환자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우리가 한 마리의 새라고 한다면, 그냥 바람과 자연에 몸을 맡기고 바람이 흐르는대로 그냥 날기만 해도 된다라고…. 만약 혼자 날기 힘들다면, 잠시 여기 있는 동안 내가 행복하게 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너와 함께 같이 날고 싶다고.. 그리고 훗날 혼자 날게 되었을 때, 여유가 생겼을 때 나와 함께 날았던 기억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만약 현재 독일 타지에서 마음이 힘든 분이 계시다면, 위와 같은 환자들을 한 번 생각해보시면서, 많은 위로가 되실꺼라 믿습니다.
또한 치료사로서 당부드리자면, 독일에서 보내는 힘든 하루하루가 훗날 인생에서 많은 경험과 좋은 에너지로 사용될 것라고 믿습니다. 화이팅입니다.
작성: 모젤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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