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 우리는 수영장에 가려고 나섰다.
혹시나 하여 오픈 시간을 확인했더니 평소에는 밤 10시까지인데, 주말은 8시까지 인 것이었다. 아차!!
큰 실망을 하는 아들은 눈물이 뻥 터졌다.
내 실수라고 사과하며 용서를 구해도 눈물은 쉬이 그치지를 않는다.
사과의 뜻으로 오늘 내가 가위바위보를 이겨서 받은 소원카드 하나를 삭제하겠다고 해도 소리 내어 운다.
나는 서둘러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었다.
밖에 나가 성당 앞에서 비행기 날리기 할까?
우리만의 스포츠센터(텅 빈 거실)에서 탁구, 줄넘기, 복싱을 하는 건 어때?
잠시 울먹거림을 멈추고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한다.
“둘 다 하고 싶어.”
결국 우리는 밖에서 비행기, 축구, 줄넘기를 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참.. 엄마로 살기 힘들다.. 모든 만능인이어야 하니 말이다..
아들을 달래주러 나온 길인데, 상쾌한 밤공기와 총총히 떠 있는 별을 보니 오히려 어수선했던 나의 마음이 달래지고 있었다.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약간 고장 나서 동네형들이 준 비행기를 날리며.. 거침없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은가보다. 너도 저렇게 자유롭게 훨훨 날고 싶은 거지? (정말로 강민이는 두 팔을 팔락 팔락 거리며 날아보려고 시도하는 적이 많다)
나에게는 아주 작지만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강민이의 걸음걸이에서 나온다..
폴짝폴짝, 박자를 맞추며 뛰는 걸음. 한 걸음 반.. 한 걸음 반…
이 걸음은 기분이 무지 좋을 때만 볼 수 있다.
너무 신나요, 너무 좋아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뒤에서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행복해진다.
떨어진 비행기를 주우러, 멀리간 축구공을 가지러 가는 걸음이 폴짝폴짝 아주 가볍다.
잘 날리는 방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는 모습도, 달리기가 느린 엄마를 위해 조금 뒤에서 뛰는 모습도, 먼저 잡는 재미를 느끼도록 일부러 느린 척 천천히 뛰고, 자기가 졌다는 헛웃음도, 골을 성공시키면 잘했다고 손뼉 쳐주는 모습도..
순간순간 느껴지는 이런 고마움에, 너의 자라나는 모습에 나는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런 특별한 시간에는 그저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
아니다! 이게 맞다! 이렇게 하는 게 낫다! 그러면 안될 것 같다!
이렇게 말할 필요가 없다.
올바른 규칙은 학교에서, 그리고 여러 작은 사회에서 지키려고 이미 굉장한 노력을 하고 있다.
엄마랑 단 둘이서 놀 때는 둘만의 세상이고 맞고 틀린 정답도 없으며, 잘 안 돼도 되고, 엉망 이어도 된다.
나는 그저 내 아이가 자신만의 놀이 방법을 생각하고, 제시하고 시도하고, 느껴보는 자체가 기특하고 창의적이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성당 외벽의 시계를 보니 약 1시간 정도 놀았다.
들어가기 전 우리는 벤치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사랑한다고.. 너와 함께하는 모든 것에 엄마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 강민이는 슬그머니 내 무릎 위에 앉는다. 무언가 길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 종종 그런다..
아기 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25킬로 무게로 다리는 저리지만, 잠시 나는 참으면서 그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눈다. 이 자세로는 자연스럽게 함께 하늘을, 별을 바라보고, 귓속에 속삭이게 돼서 참 좋다..
나는 강민이가 5살 되던 해에 단 둘이서 제주도로 내려와서 유치원 입학 전날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금 다시 되돌아보니 꽤 어린 나이인 아이에게 나는 단단한 내면의 강인함을 심어주고 싶어 했었다.
유치원 입학 이틀 전이였으니 여전히 늦겨울이었다.
우리는 아주 높지 않은 지미봉 정상을 목표로 출발했다. 둘이 함께 힘든 길을 걸어서 산 꼭대기에 올라 성취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초행길이었으니 당연히 우리는 길을 잃었고, 숲과 밭이 반복해서 나왔다. 가끔 마주치는 등산객과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길을 여쭤봤지만 오히려 더 계속 이상한 길만 가는 것 같았다. 강민이도 지치고 나도 지쳐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바닥에 앉아 귤도 까먹고 초콜릿도 먹고, 노래도 부르며 고비를 넘겼다.
길을 가다가 작은 물웅덩이를 만나 첨벙 대는 걸 그냥 두었더니, 양말, 신발이 다 젖었다. 내 신발은 너무 커서 잘 못 걸을 테니 대신 양말을 벗어주었다. 화낼 일도, 혼낼 일도 없었다. 그저 응원하고, 순간순간 상황을 해 결해 나갈 생각만 할 뿐이었다.
이 작은 모든 상황들이 재밌었다. 귤을 먹다가 귤즙이 삐죽 나와도 웃기고, 걷다가 다리에 걸린 나뭇가지에 소스라치게 놀란 것도 웃기고, 엄마의 큰 양말을 신은 것도 웃기고… 그러다가 밭 사이 돌담길을 걸어가다가 진흙탕 웅덩이를 만났다. 굉장히 크고 넓었다. 피해 갈 길도 없다. 우리는 고민했다.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나는 신발을 벗어서, 강민이 두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가방을 앞으로 메고, 강민이를 등에 업었다.
우리는 한 몸인 채로, 그 긴 진흙탕 길을 건너왔다. (마치 네가 뱃속에 있을 때 처럼말야)
너는 나의 눈과 손이 되어주었고, 나는 너의 다리가 되어주었지.. 그때 내 아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아들아, 살다 보면 오늘처럼 길을 잃을 때도 있고, 사람들이 옳지 않은 말을 할 수도 있고, 진흙탕 길을 만날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차분히 생각하면 헤쳐나갈 수 있고, 너는 반드시 이겨낼 힘을 지니고 있어. 그리고 그 길에 엄마가 항상 응원할 거란다. 잊지 마렴.. “
5살의 별 같은 이 아이는 무엇을 느꼈을지. 무엇을 깨달았을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 마음을 전했을 뿐.. 진흙탕을 건너가는 길에 불러주었던 뜸북새와 과수원길, 그리고 포근하게 등에서 느껴진 온기만으로도 사랑을 느꼈을 거라고 믿는다. 엄마가 빼빼 말라서 어부바해도 딱딱하고 불편할 텐데도 좋아하는 걸 보면 내 아들이 맞나 보다.
진흙탕 길을 지나고도 40분을 더 걷다가 결국, 우리가 차를 세워둔 주차장이 나타났다. 차를 발견하고 우리는 너무 반갑고 기뻐서 팔짝팔짝 뛰었다!
3시간 정도 걸었고, 산꼭대기는 못 가고 산 둘레길만 돌았지만, 우리는 무언가 이루어낸 듯 뿌듯했다..
그날로부터 4년이 흘렀다… 강민이는 지미봉, 지미 산, 길 잃은 거.. 아무것도 기억 못 하지만, 진흙탕길을 어부바하고 건너간 것은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덧붙여 말했다.
“엄마는 강민이랑 독일에 와서 학교도 다니고, 새로운 것도 배우며 살고 있어서 행복해. 비록 어려운 일도 있고, 힘들 때도 있고, 가족이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너와 함께라서 엄마는 든든하고 어디서든 행복하단다. 건강하게 잘 놀고, 잘 자라고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사랑 사랑해~~~”
- 작가: 이연재/기획자
독일과 한국에서 놀이터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쉬고 노는 곳을 연구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합니다.
- 본 글은 이연재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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