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사람 깔끔하죠, 최고봉 Mario
이제는 장기간 살 집을 신중하게 알아볼 때다. 한인 커뮤니티도 보고, 유학생 커뮤니티도 보고, 지역 신문도 보고 에어비앤비도 보고 신중히 골랐다. Full furnished (일명 풀옵션) 이여야 하고, 아이가 있는 집이면 좋겠고 무엇보다 렌트비도 적정해야 했다.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하늘의 별따기처럼.
그러던 중 별똥별이 떨어졌다. 유치원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아파트 3층, 8살 여자아이도 살고 있는 집의 쉐어하우스를 찾았다. 직접 가보니, 층고가 높은 독일식 3층은 우리의 5층에 해당하는 높이고 엘리베이터는 당연 없었다. 그래, 운동한다고 치면 되지! 그게 뭐 문제가 되나?
문제가 됐다. 적어도 아이와 엄마 둘이서 생활하기에는. 이삿짐도 직접 옮겨야하고, 슈퍼에서 장본것들 들고 와야지, 쓰레기 분리수거, 차에서 잠이 든 아이를 업고 올라올때, 자전거를 올리고 내릴때, 이놈의 건망증은 뭘 그리 빡하는게 많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안은 너무나 깔끔하고 우리가 쓸 방에 티비도 있고, 책상이 놓인 창가는 해도 잘 들고 플라타너스 나무의 차경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8살 여자아이의 방에는 재미있는 만들기 장비가 가득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는 살면서 몇 번 못 봤다.) 아파트 중정에 작은 모래놀이장이 있어서 아이들이 모여 놀기도 한단다. 이 집과 계약을 했다.
독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계획적이고 깔끔한 편이다. 그러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던 완벽주의 추구형의 나는 독일에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겠다라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집주인 마리오는 공동생활의 규칙을 알려줬다. 매주 토요일은 대청소의 날, 본인은 평일 9시부터 5시까지 재택근무를 한다는 참고, 욕실과 주방에서 쓰는 청소도구와 세제 종류, 세탁기 사용법, 욕조 사용법과 청소법, 뭐 그 정도다.
‘아, 청소 하나는 제대로 배우겠구나, 좋네!’
옛말에 ‘사람은 만나봐야 알 수 있고, 집은 살아봐야 알 수 있다’ 고 했다.
깔끔한 이 집은 정말로, 먼지 한 톨도 있어서는 안되는 집이였고, 재택근무를 하는 집주인을 위해 낮시간에도 조용히 있거나 밖에 나가있는게 편한 집이였다. 다 떨어진 청소 세제, 똑같은 걸 사기 위해 찾아헤매다가 지치고, 매주 토요일 5시간씩 대청소를 해야 하는 아주아주 깨끗한 집이다. 그래도 난 이악물고 해나갔다. 몰라서 오래 걸리고, 안해봐서 스트레스 받는거지, 익숙해지면 괜찮을거라고 믿었다.
어느 토요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5시간동안 청소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돌아와보니 집 안의 모든 불이 환하게 켜져있고, 마리오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내가 청소 하고 갔는데 왜 또 하고 있어?”
“너가 깨끗이 안해서 내가 다시 하고있는거잖아, 여기 이 손가락에 묻은 먼지 안보여?”
손이 닿지도 않는 선반의 꼭대기를 스윽 그으며 내 보이는데, 으.. 내 인내심에 주황불이 켜졌다.
우선 우리방에 들어가서, 강민이를 재우고 난 후에 얘기를 하자고 했다. 마리오는 다행히 영어도 잘 해서 진지한 얘기를 나눌때는 영어로 대화했다. 마리오가 대화를 먼저 시작했다.
“강민이가 서서 오줌을 누는걸 두번이나 봤어. 교육 안 시켰어? 더러워서 못 보겠어.”
“양치질하고 깨끗하게 뱉는 방법, 용변 보는 방법을 어떻게 여러번 말해야 알아? 내 딸은 한 번에 딱 바로 했어. 원래 애들은 그래야 하는거야. 그래야 학교에서도 잘하지!”
독일에 온지 40일 된 7살 아이다. 그리고 노력하고 있다. 듣기 싫겠지만 나도 매번 얘기하고 있고 그리고 낯선 문화에, 새로운 생활방식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안다. 어른은 어린이를 기다려줘야 하는게 맞다. 아이가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관심있게 봐주고, 칭찬하고 격려해줘야 하는 아직 미숙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대화가 아니라 거의 말싸움이 되고있다. 돌고 돈다. 난 그 이유를 안다. 그 사람은 우리를 존중하는 척만했지 속마음엔 없었다. 다른 사람과 하우스를 쉐어한다는 것은 운이 좋다면 척척 맞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다름을 인정하고 불협화음을 조정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사람은 우리가 자신의 계획표에 완벽한 하나의 마그네틱이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자격지심인지 뭔지 예민하게 우리 방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불편한 점이나 할 말 있어?”
“어, 난 너가 저녁에 너무 일찍 자는게 불만이야. 같이 이야기도 하고 와인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친구처럼 지낼 줄 알았어. 근데 넌 강민이랑만 보내고 거실엔 나오지도 않잖아.”
나는 잠을 좋아한다. 꿈꾸는 걸 좋아하고 잠들기 전에 아들이랑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좋아한다. 엄마의 하루가 얼마나 바쁘고 고되는데..둘이 살아남기가 지금 전쟁같은데..
여보세요, 나는 친구 만들려고 집을 구한게 아니예요.
이제 빨간불이 켜졌다. 거기서 대화를 끝냈다.
다음날 아침, 그래도 한번 물어보기는 해야했다. 혹시 서서 소변을 본 적이 있느냐고.
그런적 없다고 나 진짜 노력했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붙들고, 나는 어젯밤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야!
나는 내 아들의 눈물의 의미를 안다. 그래 몇 번 실수했을거다. 아니 귀찮아서 습관대로 했을거다. 안다. 하지만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를 가려내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나는 강민이 엄마니까! 내 아이를 믿어주는 게 맞다.
바로 나가서 당장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처음 계약시 장장 63장의 계약서를 내 손에 쥐어 준 집주인도 예외 조항으로 동의하였다. 집구하기 하늘에 별따기인 곳에서 무슨 무모함인지.. 그 무모함은 하늘의 도움을 받아 5일만에 나올 수 있었다. 어떤 유학생이 한국에 가는 27일동안 비우는 집으로 재빠르게 이사를 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유치원이 엄청나게 먼데도, 1층집에 우리 둘뿐이라 가끔 무서웠어도 우린 그런 우리 둘로 행복했다. 버스를 오래 타는 동안 2층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같이 독일어 단어 공부도 했고, 냄새나는 김치찌개도 끓여먹고, 샤워도 마음껏 하고 노래도 불렀다.
깔끔했던 쉐어하우스를 나오면서 그에게 말했다.
“육아방식은 누가 틀리고 누가 맞다고 말하는게 아니야. 그냥 너와 내가 다른 방식일 뿐이지. 그리고 한국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사견으로 일반화하지말고, 그냥 내가 너와 다르구나로 이해해주길 바래. 그리고 난 엄마역할이 가장 우선인 사람이야. 친구는 자연스럽게 되는거지 만들어지는게 아니거든? 좋은 하우스메이트 만나!‘
3개월 열심히 살았다. 이제 나도 독일 사람처럼 청결하게 살겠지? 1/100정도?
- 작가: 이연재/기획자
독일과 한국에서 놀이터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쉬고 노는 곳을 연구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합니다.
- 본 글은 이연재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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