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처음 시도하는 게 있다는 것이, 그것도 많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한 것 같다. 그때마다 새로운 일을 경험할 수 있고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으니.
며칠 전 집 앞 슈퍼를 갔다가 작은 화분에 파는 민트를 보고 민트 티를 해 먹을까, 라는 생각에 화분 채 사서 돌아왔다. 생 민트 잎을 줄기 채로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후 꿀을 타서 마시면 정말 향기부터 시작해 입 속까지 황홀한 순간이 선물처럼 오기 때문이다. 배스킨라빈스에 가면 무조건 민트 초콜릿 칩을 고르고, 차는 페퍼민트 아니면 루이보스를 마시는 나에게도 이 생민트 티는 네덜란드에서 처음 만났을 당시 아주 당혹스러웠다. 잎을 말리기는커녕 갖 따온 것 같은 싱싱한 줄기들을 플라스틱 통에서 꺼내서 털듯이 툭툭 손바닥에 쳐 향이 잘 나게끔 한 후 컵에 넣어서 뜨거운 물을 붓고는 꿀 필요하니? 하는 모습에 여기는 어디이며 나는 무엇을 주문했더라, 싶었다. 그 강렬한 첫인상은 잊을 수가 없다. 그 후에는 거의 항상 생민트 티만 주문하였고 나중에는 학교 카페 아저씨가 나만 보이면 민트가 든 그 흰 통의 뚜껑을 열어 준비를 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이런 나의 추억이 깃든 생민트 티를 집에서 해 먹어 보고자 하는 마음에 데리고 온 민트지만, 막상 집에 데려다 놓고 보니 화분이 민트에 비해 작아 보였고, 특히 화분 밑으로 뿌리가 나와서 엉켜 있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까지 생겨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참에 지속적으로 민트 티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 싶어 시작된 분갈이. 한국에서도 분갈이는커녕 화분조차 산 적이 없었기에 우선 흙과 화분을 살 수 있는 곳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독일에서 분갈이 하기”로 검색하니 독일에서 직수입한 흙, 독일에서 만든 화분 구입 등 죄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결과만 나왔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뒤셀도르프에 사는 해바라기를 키우는 친구에게 연락해 물어보니 그냥 슈퍼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슈퍼에서 살 수 있다고? 나는 못 본거 같은데..? 민트를 산 슈퍼는 REWE CITY여서 물건이 다양하게 많이 없어서 못 봤나,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REAL은 슈퍼도 2층으로 크고 접시나 장식품, 옷까지도 파니 거기에는 있으려나, 별 생각을 다 하며 그렇게 그 날은 그냥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REAL로 가서 슈퍼 전체를 두 번이나 돌아보았지만 크리스마스용 빨간 화분 하나밖에 못 찾았다. 그것도 구멍이 없는 화분. 직원에게 화분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그 날 따라 직원들이 얼마나 퉁명스럽던지.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REAL도 아니라면, 집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있는 BAUHAUS를 가봐야겠다 생각하며 그날도 그렇게 아무런 수확 없이 그냥 잠에 들었다.
드디어 민트를 사고 셋째 날, 나는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BAUHAUS를 찾아갔고, 들어가는 입구부터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입구부터 식물들은 뭐가 그리 많은 것이며, 시기가 시기여서 그런지 크리스마스트리도 정말 많고, 전동드릴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도 몰랐으며, 집 공사를 할 때 쓰이는 타일, 페인트, 벽지, 전등, 샤워 시설, 잔디, 잔디 깎는 기계, 등 정말 없는 게 없는 철물점의 이케아 같았다. 화분이 있는 코너를 찾기까지도 시간이 걸렸지만, 독일은 집 안의 바닥이 나무 혹은 카페트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겨우 찾은 화분들은 다 구멍이 안 뚫려 있었다. 화분에 구멍이 안 뚫린 것은 주로 수중 식물이나 조화 등에 사용이 되는 것이어서 그냥 식물을 구멍 없는 화분에 키워버리면 물이 빠지지 않아 썩어서 죽거나 함으로 화분에 구멍이 없다면 직접 뚫어야 한다는 말을 어디서 본 기억이 있어 다시 구멍 뚫린 화분을 찾으러 다녔다. 나는 분명 건물 안으로 들어와 돌아다니고 구경하였는데 어느샌가 야외에 전시된 코너가 나와서 눈이 휘둥그레 졌다. 미어캣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아보다 드디어 찾았다. 이 곳이야 말로 발코니나 외부에서 키우는 식물 용 화분들이 즐비해 있었다. 외부에서 사용하는 화분들에는 다행히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마음에 드는 화분을 찾느라 요리조리 잘도 다녔던 것 같다. 집 안에서 사용하는 구멍이 없는 화분은 이쁜 것도 많은 것 같은데, 집 밖에서 사용하는 구멍 뚫린 화분은 생각보다 이쁜 디자인이 없어 조금 아쉬웠지만 마지막에 그래도 마음에 드는 깔끔한 화분을 발견하여 두 개를 냉큼 집어 카트에 넣었다. 그 뒤 또 흙을 찾으러 다니는 여정이 시작되었지만.
도저히 안 되겠어서 지나가는 직원을 붙잡고, 꽃 흙 (Blumenerde)은 어디에 있나요? 하고 물어봤더니 엄청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감사합니다, 하고 알려주신 방향으로 갔더니, 맙소사. 여기는 또 어디인가요, 뭔 흙 종류가 이렇게 많은 건가요, 라는 생각과 함께 머리가 띵 해지며 분갈이 시작도 하기 전에 난관이 도대체 몇 개나 있는 건지, 이거 제대로 할 수나 있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하나하나 살펴보다 야호! 허브 용 흙이 있다! 당첨! 너다, 너로 정하고 이제 집에 가자, 하고 보니 10kg이 제일 작았다. 하는 수 없지 뭐, 하며 10kg의 흙을 카트에 넣고 돌아오는데 아까 길을 알려 주신 직원분께서 나에게 흙은 잘 찾았냐며 다시 물어봐 주시는 게 아닌가! 나에게 말을 걸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서 처음에는 조금 놀랐지만, 금세 정말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요즘 괜히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길을 가다가도, 슈퍼에서도 사람들이 나 주위를 피하거나 꺼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런지 이 순간만큼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흙을 찾으러 이리저리 방황하던 나에게 한 줄기의 빛과도 같던 친절한 직원분.
그렇게 나는 화분 2개와 화분 받침대 2개, 그리고 민트의 새로운 친구인 로즈마리와 10kg의 흙, 그리고 작은 삽,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트리 줄기 몇 개를 사고 집에 돌아왔다.
- 작가: 몽글맹글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걸 좋아합니다. 쓰면서 정리합니다. 주로 독일에서의 일상 및 매일의 삶 속에서 언젠가 기억하고 다시 꺼내보고 싶을 작고 소중한 일들을 기록합니다.
- 본 글은 몽글맹글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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