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감정 쓰레기통 취급했다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에게 모든 것을 기대고 싶었다. 내 감정을 온전히 이해해 주기를 바랐고, 그저 위로해주기를 원했다.
그렇다. 남편에게 모든 감정을 쏟아부었다. 흘러 넘 칠 정도로…
그러다 보면 오해를 살만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쏘아붙이고 뒤돌아 서면, 후회의 말들만 남았다.
왜 남편에게 감정을 이해받고 싶을까?
결혼 전에는 친한 친구에게, 가족에게 내 감정을 잘 말하곤 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말을 아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기 때문.
1.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내 얼굴에 침 뱉는 기분
특히 주변인의 시선이 두려워서 내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순간은 남편과 싸웠을 때다.
친구들에게 나의 감정을 말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남편과 있었던 일을 말하게 된다. ‘왜 내가 속상한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편 흉을 보게 되는데, 친구가 막상 내 편을 들어준다고 심한 말을 하면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과 함께 민망할 때가 있다. 작은 상황도 남들 눈에는 크게 보일 수 있으니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인에게 감정을 말하지 않게 됐다. 듣는 이가 남편에 관한 오해가 쌓일까 봐 걱정이 되고, 괜히 내 얼굴에 침 뱉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상한 마음을 덜어내지 못하고, 남편에게 많이 풀려고 했던 것 같다.
2. 남편은 매일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는 것, 듣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했던가? 매일 나와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나와 하루를 마무리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 작은 습관부터 큰 습관까지 닮아가고, 적응해 간다.
이렇게 늘 옆에 있는 남편이기에 힘든 일도, 풀리지 않는 감정도 많이 말한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같은 심리를 공유하고 싶은 못된 심보랄까.
매일 보는 남편에게 감정을 이해받고 싶다.
3.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갖기를 원하고 어떤 상황인지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엄마의 주의를 끌려고 일부로 식판을 엎는 아이처럼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은 나는 늘 감정을 분출했다. 그렇게 늘 감정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던 나는 어느 순간 감정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편은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회사 일로 늘 투정 부리던 나에게 한 번은 남편이 힘들다고 한 적이 있다. 내 감정을 받아 주고 싶은데, 자신의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못 듣겠다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거였다. 이 말을 듣고 두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첫째. 남편이 그동안 내 투정을
한없이 받아 주느라 힘들었겠구나
둘째. 남편의 감정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있었나
남편도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심지어 나와 나이가 비슷한 젊은 사람일 뿐인데 내가 너무 그에게 의지한 건 아닐지… 갑자기 미안했다. 남편은 감정 쓰레기통이 아닌 그저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나처럼 힘든 일도 있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있고, 말하기 싫은 일도 있고, 남편 역시 힘들었다. 나는 그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준 적이 있었던가
남편 앞에서 감정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 역시 힘든 일이 많았구나’하는 생각이 든 순간. 이기적으로 감정을 쏟아붓던 것을 멈췄다.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을 구분했고, 남편의 감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때론 똑같이 힘든 상황에 부둥켜 울기도 했고, 때론 누군가 위로받아야 하는 상황에 말없이 밥을 차려 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감정을 마구 분출하는 사람이었을 뿐. 나보다 더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말 못 한 고민을 가졌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누구나 힘들다.
‘누구나 위로받고 싶어 하는 존재다’라고 받아들이니 더 이상 감정을 무분별하게 내비치지 않았다. 때론 혼자서 감당하고, 때론 남편에게 의지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 작가: 은잎 / 방송작가
6년차 방송 작가이자, 기업 작가입니다. 삶의 권태로운 시기를 벗어나고 싶어 글을 씁니다. - 본 글은 은잎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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