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집의 세 가지 에피소드
Y가 들려준 이야기
“그런데 귀에 뭐 꽂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에피소드 하나. 독일 총리 부부
베를린에서 Y가 스시 레스토랑을 운영할 무렵 그녀의 단골들 중 눈 밝은 사람들은 매주 금요일 독일 총리의 남편 헤어 Herr 자우어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스시를 좋아하는 그는 Y의 스시집에 매주 들러 스시를 사 가곤 했다. 그의 특징은 누군가 그를 아는 체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 반전은 먼저 아는 척만 하지 않으면 본인이 다가와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도 있다는 것. 예를 들면 Y가 주인장이란 것을 안 후 묻지도 않았는데 그가 직접 털어놓은 사실은 다이어트 때문에 스시를 즐겨 먹는다는 것이었다. 매장에 들어오면 실내를 한 번 돌아보며 가장 먼저 주인장인 Y와 인사를 나누거나 여의치 않으면 눈이라도 꼭 맞추었다.
그가 사들고 가는 스시는 언제나 두 종류였는데, 그가 하나만 포장해 가는 날은 메르켈 총리가 외국이나 어딘가로 외유 중이란 뜻. 그런 날은 TV 뉴스에 총리 소식이 실시간으로 나왔다고. 총리가 직접 들르기도 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이나 열흘에 한 번쯤 들렀는데 월요일이나 수요일에 들렀다. 원래 성정이 소탈해서인지 요란하게 방문한 적이 없단다. 언제나 조용히 와서 줄까지 섰다고. 그런 상황을 모른 채 언젠가 Y의 남편이 레스토랑에 들렀다가 Y에게 묻더란다.
“그런데 귀에 뭐 꽂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지?”
메르켈 총리 역시 Y가 레스토랑에 있는 걸 좋아했단다. 직원들은 총리가 판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스시를 가리키며 ‘이거 가져가면 되느냐’라고 물으면 열이면 열 된다고 고개만 끄덕이는 반면, 주인장 Y는 잠시만 기다리시라며 그녀를 위해 금방 준비한 따끈한 스시를 건네주었기 때문이란다. 이런 센스 있는 주인장을 좋아하지 않을 고객이 있을까. 한 번은 Y가 간장을 좋아하는 총리에게 매장에서 파는 간장병을 가리키며 ‘아예 간장병을 하나 마련하시는 게 어떠세요?’ 하고 제안했더니 반색하며 사 갔다고. 또 한 번은 간장이 거의 떨어질 때가 된 것 같아 ‘일전에 사 가신 간장은 다 드시지 않았나요?’라고 물었더니 맞다며 좋아했다고. 이런 소박한 총리라니!
에피소드 둘. 러시아 여인 릴리아
우아하고 매력적인 중년의 러시아 여인 릴리아도 그녀의 단골 중 하나였다. 남편이 러시아 외교관이란다. 문제는 남편의 여성 문제로 속을 많이 끓였다고. Y를 편한 친구로 여겨 레스토랑에만 오면 자기 마음을 털어놓곤 했는데 옷차림도 세련된 그녀는 머리에 언제나 옷과 어울리는 멋진 두건을 쓰고 있었다. 일대에서 꽤나 유명했던 그녀의 두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난무했는데 Y의 직원들은 항암 치료를 받다 머리가 빠졌다고 했단다. 릴리아의 말에 의하면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 탈모가 됐다고 했는데. Y가 정정을 해줘도 직원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더라고. 모르긴 해도 Y가 뮌헨으로 떠난 이후 가장 허전했을 고객은 아마 릴리아가 아니었을까.
에피소드 셋. 꽃미남 브라질 방송국 대표
고객 중에는 외국 손님들도 많았다. 패셔니스트에 믿을 수 없이 잘 생긴 남미계 남자가 있었다. 알고 보니 브라질의 어느 방송국 대표였다. 얼굴이 대변하듯 여자들에게 인기도 장난 아니었을 법한데 며칠 동안 늘 혼자 온 게 신기했다. 호기심으로 사흘 째 날에 시식용 스시를 들고 가서 얘기를 걸었더니 그가 반색하는 바람에 오히려 Y가 놀랐다. 포 떼고 차 뗀 Y의 자체 분석은 이렇다. 빼어난 그의 용모에 한 치 흔들림 없이 순수하고 인간적인 관심으로 다가간 자신의 태도에 그가 반가워했던 것 같다고. 마지막 날엔 Y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온 게 아닐까 싶은 인상까지 풍겼기에. 떠날 땐 명함까지 주고 갔다. 하긴 미남 미녀들도 피곤할 때가 있겠지.
참고로 Y는 때때로 시식용 스시를 준비해서 두어 번 방문한 손님을 기억했다가 직접 들고 가서 권하기도 했다는데 그중 가장 인기 있던 메뉴는 특별한 레시피로 개발한 고소한 연어 스시였다. 마지막까지 그 스시를 싫어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단다. 글쎄, 그런 걸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어떤 스시였대도 맛있지 않았을지. 절반은 감동으로 먹었을 테니 말이다. Y가 주인인 줄도 모르는 몇몇 손님들은 그렇게 해도 되냐며 오히려 Y를 걱정해주기까지 하더란다. 어딜 가나 꼭 있다. 이런 착한 고객들.
Y가 베를린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겪은 몇 가지 배꼽을 잡는 에피소드는 아쉽게도 올리지 못했다. 한국 사람인 데다 아직도 Y와 연락이 닿는 사람들이라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대신 Y는 약속했다.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많다고. 그걸 문학모임 번개 때마다 들려주겠노라고. Y와 내용을 조율한 후 무궁무진한 에피소드의 공개를 허락받은 것은 기쁜 일이다. 반쯤 진지한 듯 반쯤 가감 없이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를 듣듯 끝없이 계속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반나절 정도는 거짓말처럼 훌쩍 지나가 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즐거움을 종종 브런치에서 나누게 되기를.
- 작가: 마리 오
뮌헨에 살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북 <프롬 뮤니히><디어 뮤니히><뮌헨의 편지> 등이 있습니다.
- 본 글은 마리 오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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