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도 확신이 있어야 시작하지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방법
dear eun,
오랜만이다. 이별 후 약이 되는 말들을 듣고 나니 괜스레 연애의 시작에 대해 말하고 싶어 져.
‘독일인들의 연애는 어때?’ 하고 묻는다면 사실 웃음이 먼저 나와.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지녔지만 연애를 시작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에 지극히 신중한 그들에 대해 찬찬히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내 친구 M의 경우는 사실 조금 특별해. 성소수자인 그는 17년 전 어느 콘서트장에서 지금의 남편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어. 영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들은 불같은 사랑을 시작했고, 5년이란 기간 동안 장거리 연애를 이어갔지.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지금으로 부터 약 3년 전 결혼이란 결실을 맺었어. 연애기간 동안 그들은 휴가 때마다 세계 곳곳을 함께 여행했고 주말엔 케이크를 굽거나 음악이 있는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춤을 췄어. 콘서트와 힙합클럽은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였는데 어느 날은 그것이 그들의 집이 되기도 했지. 결혼을 한 지금도 그들에게 음악과 그림은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어. 주말 혹은 일이 끝난 후엔 각자의 취미에 따라 그림을 그리러 작업실을 가거나 극단에서 뮤지컬 연습을 하곤 해. 그렇게 서로의 꿈을 응원하지. 각자의 삶에 충실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그리고 서로를 아주 깊이 사랑하는 그들을 보며 나 또한 결혼에 대한 소망을 조금씩 품기 시작했어.
스페인 친구와 오랜 연애를 하고 있는 나의 선생님이자 유쾌한 친구 B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약 12년 전 스페인에서 처음 만났어. 교환학생으로 공부를 하러 간 B는 언어를 가르쳐주던 예쁜 선생님과 낭만적인 사랑에 빠져버린 거지. 스페인과 독일을 오가며 꽤나 힘든 장거리 연애를 지속하던 그들은 연애 3년 만에 이곳 독일 땅에서 함께 살게 되었어. 그리고 지금까지 동거를 하며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연애 중이야. 아름다운 스페인어 선생님은 그동안의 시간 동안 독일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한 뒤 고등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중이야. 그들의 파란만장하고 절절한 스토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를 향한 신뢰가 아주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사랑하는 이를 따라왔던 이국 땅에서 새로운 꿈을 찾고 여전히 도전하는 이 커플을 볼 때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자극을 받게 돼.
여기까지만 읽으면 독일인들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추구하는 해바라기들인가 싶을 거야. 어쩌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야. 확신이 생기기 전엔 “연인”이 되길 꺼려하는 그들의 시작은 조금 특별해. 데이트는 하는데 연인이 아닌, 이러한 만남이 몇 개월째 지속되지만 확실한 답을 할 수 없는 ‘우리’. 썸이 길어져도 확신이 생기기 전엔 사귈 수 없는 그들은 마음이 ‘그렇다’라고 할 때까지 또 다른 만남을 찾아 나서. 마냥 좋은 감정만으론 연애를 시작할 수가 없는 거지. 그래서 ‘Probe DATE’라는 단어까지 생겼어. 한국 말론 데이트 리허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쉽게 말해 쉽게 다른 누군가와 이야길 나누고 호감도 갖고, 또 불꽃이 튈 때는 스킨십도 나누지만 사귀지는 않는 거야.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확신이 드는 누군가를 만날 때 까지는 모든 것에 완전히 열려있어.
‘그렇게 완벽과 확신’을 추구하다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참 많이 들던 생각이야. 운이 좋아 확신이 드는 이를 빨리 만나면 위의 친구들과 같이 오래 연애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겠지만, 아무런 확신도 없던 누군가와 삐걱거리며 삶을 나누고 시간과 서로의 존재를 통해 새로운 내가 되어감을 깨달을 때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 누군가를 볼 때면 그저 한번 해보라고, 연애가 실패해도 인생이 주는 메시지가 있을 거라 말하곤 해.
독일인의 정서가 가득 담긴 연애스타일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어. ‘가정’과 ‘안정’을 추구하는 그들은 그만큼 평생 동안 (가능한 한) 선택한 이를 배신하지 않고 오래 곁에 머물기 위해 노력해. 아니, 노력보다 더 자세히는 성격이 그 원인이야. 쉽게 말해 잘 질리지 않아. 낡아 해진 옷도 아무렇지 않게 입고 출근을 하는가 하면 10년째 점심식사로 같은 샌드위치를 싸서 다니기도 하지. 처음 선택은 아주 신중하지만 고민 끝 당첨된 그 무언가는 오래도록 배신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오랫동안 곁에 두는 거야.
어떤 연애 스타일이 좋다고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우리가 오늘 눈 앞의 그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선택을 주저하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라는 거야. 완벽하지 않은 우리가 맞이한 그 사람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면, 그러다 문득 이별이 찾아 와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또다른 사랑을 찾아나설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사랑을 응원하며 독일에서,
eun
- 작가: 물결 / 예술가
독일에서의 삶을 기록하는 예술심리치료사. 재미있게 사는 것이 좋은 사람. - 본 글은 물결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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