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와 아이 친구를 데리고 토론 수업을 하던 날이었다. 그날의 토론 주제는 ‘정당법 개정’에 관한 논란. 정당 가입 연령이 만 18세에서 만 16세로 낮아지는 법 개정을 두고 두 아이는 치열하게 찬성과 반대 의견을 내놓으며 한 시간 내내 즐거운 대화가 오갔다.
아이들의 마무리 발언까지 듣고 토론을 정리하던 내가 질문했다.
“독일처럼 우리도 아예 학교 수업으로 정치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는 시간이 있다면 어떨까?”
정당법 개정 찬성 근거로 ‘정치에 대해 일찍부터 배울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나중에 우리나라 정치가 더 좋아지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란 의견을 개진했던 아이들은 나의 발언에 대해 좋은 생각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다시 던지는 화두.
“근데 그러려면 선생님 역할이 진짜 중요할 거야. 특히 정치 같은 문제라면 더더욱 선생님이 중립적이라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자기 정치색을 주입하는 식으로 수업이 이뤄질 수도 있을 테니까. 아, 내가 선생님이라면 잘할 수 있을 텐데! 너희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내 말을 듣고 있던 우리 아이가 피식피식 웃더니 친구에게 한다는 말,
“아, 우리 엄마 자기 자랑 또 시작했다!”
맞다. 나는 아들 앞에서 자기 자랑을 서슴지 않는 엄마다. 대놓고 진지하게는 아니고 적당히 유머를 섞은 셀프 자랑이다.
아이가 음식이 맛있다고 하면, “엄마가 요리 좀 하지! 옛날에는 못했는데 하다 보니까 실력이 엄청 늘었어! 밖에서 사 먹는 음식보다 내가 해주는 게 훨씬 더 맛있지 않아?”라고 한다거나,
아이가 한참 찾고 있던 물건을 척척 찾아내는 나를 보고 어떻게 찾았는지 물으면, “엄마는 다 알아. 이 물건을 네가 사용했을 때, 그리고 정리할 때의 너의 동선과 생각을 다 짐작하고 있거든!”이라고 한다거나,
어쩌다 아이와 특정 주제로 논쟁(첨예한 논쟁까지는 아니고 의견 교류?)을 할 때는 고대 역사부터 철학까지 있는 지식 없는 지식 다 동원해 설득과 주장을 한판 거나하게 풀어놓는다. 그럴 때 아이의 반응은 늘 같다. “엄마, 지금 또 잘난 척하는 거지?” 아이의 말은 도전적이지 않다. 알았으니 이제 그만하자는 뜻이다. 그땐 또 쿨하게 받아친다. “어 맞아. 근데 많이 아는 걸 어떡해. 아는 걸 안다고 말해야지!” 대화는 웃음으로 마무리.
이밖에도 나의 셀프 자랑은 수도 없이 많다. 아이 수학 문제를 도와주다가, “엄마가 수학 진짜 잘했거든. 중학교 때는 반 친구들을 한 시간 동안 직접 가르치고 그랬어.”
그리곤 자랑 끝에 슬쩍하고 싶은 말을 끼워 넣는다. “수학은 정말 재밌는 공부인 것 같아. 진짜 어려운 문제들을 30분이고 1시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풀어냈을 때는 진짜 너무 행복하더라고! 그게 수학 공부의 기본이고 수학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지.”
아이가 학원에 대해 거부감(다녀본 적도 없으면서!)을 나타낼 때는 “엄마도 학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야. 엄마는 학교 다닐 때 할머니가 돈 없다고 학원에 한 번도 안 보내줬지만 그래서 혼자 더 열심히 공부했거든. 수업 시간에도 집중하고, 친구들이 쉬는 시간이나 자율 시간에 잘 때도 엄마는 졸아본 적이 없어. 스스로 하는 공부야말로 진짜 공부지.” 아이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하고 싶은 핵심적인 말을 ‘셀프 자랑’과 엮어서 하는 식인 것이다.
나의 셀프 자랑은 (전혀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진 않지만) 적당한 포장을 거친다. 그리고 아이가 봐도 ‘뭐, 그럴 만하네’라고 어느 정도는 인정할 만하면서 웃음의 포인트를 반드시 갖춰서 이야기한다. 너무 진지한 자기 자랑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불편하다. 특히 나처럼 반복하는 경우라면(?) 웃는 포인트가 필수다! 그게 엄마와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또 하나, 정말 중요한 건 평소의 태도는 겸손 모드여야 한다는 사실이다.(사실 평소에 셀프 자랑하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즉, 아이는 자기 앞에서 보이는 엄마의 자랑하는 태도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에게만 드러내 보이는 ‘엄마의 면모’ 혹은 자기만 파악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셀프 자랑’이란 단어는 얼핏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근거 있는 엄마의 셀프 자랑은 아이로 하여금 엄마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측면이 있다.
며칠 전 토론 에피소드에서 아이가 “우리 엄마 자기 자랑 또 시작했다”라고 한 말은 혹시라도 이런 상황에 익숙지 않은 친구가 당황할까 봐 해주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 안에 아이의 ‘긍정 포인트’가 있음을 안다.
아이는 TV에서 특정 운동화 브랜드 광고만 나와도 “엄마가 저 브랜드 책 냈었지?” 하면서 엄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서점에 진열된 책들을 보다가도 “엄마, 저 책들 많이 읽었잖아!”라고 말한다. 유명인사 관련 기사를 보다가는 “엄마, 예전에 유명한 사람들 많이 만났었지?”라며 마치 자신이 만난 것처럼 으쓱한다.
아이가 자부심을 갖는 엄마는 우아함을 유지할 수 있다. 존경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 엄마는 꽤 괜찮은 사람, 신기한 경험이 많은 사람, 배울 게 많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갖는다면 엄마로서의 품위는 그걸로 인정받는 셈이다.
오늘의 이 글에서 혹자는 ‘기대했던 우아함’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우아한 엄마의 이미지는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의 존재가 아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자부심을 갖더라도 거리가 멀게 느껴지거나 올려다보는 자부심이 아닌, 나와 비슷하지만 따라 하고 싶은 혹은 제법 멋지다고 생각되는 존재로서의 자부심이야말로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비밀 하나, 아이에게 잘난 척 좀 하기 위해서 나는 ‘몰래’ 공부를 할 때가 많다. ‘오늘 이런 주제로 이야기 한번 나눠봐야지’ 하고 생각할 때는 아이가 안 볼 때 미리 검색 좀 하면서 풀어놓을 ‘썰’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역시, 우아함을 유지하는 데는 ‘노오력’이 필요하다.
- 작가: 어나더씽킹/공중파 방송작가,종합매거진 피처 에디터, 경제매거진 기자, PR에이전시 콘텐츠 디렉터,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유럽통신원 활동 중, ‘운동화에 담긴 뉴발란스 이야기’ 저자
베를린에 거주하다 최근 귀국했습니다. 독일의 교육 방식을 접목해 초등생 남아를 키우며 아이의 행복한 미래와 교육의 갈 길에 대해 고민합니다.
- 본 글은 어나더씽킹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 응원의 메세지나 문의를 아래 댓글창에 남겨주세요. 댓글을 남겨주시면 작가님께 메세지가 직접 전달이 됩니다.
- ⓒ 구텐탁코리아(http://www.gutentag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독일에 있는 우리 한인들은 어디에 얼마를 쓰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재미있는 질문들을 아래의 설문을 통해 답변해 주시면 아주 아주 재미있는 결과와 기사들로 보답하겠습니다.(설문조사 링크)
- 구텐탁코리아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 제보 및 기사 요청을 보내주시면 적극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사 제보: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