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종종 있는, 2차세계대전 때 폭탄이 집 근처에서 발견되다.
쾰른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공원을 가면 알록달록 단풍이 한창이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오늘 아침에 받을 메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한채 단풍 구경을 하러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오늘 아침 11시가 되기 전, 건물 담당자로부터 받은 생각지도 못 한 메일로 인하여 나의 하루는 완전히 계획이 틀어졌다. 짧게 요약하자면, “2차세계대전 때 사용한 폭탄이 집 건물 근처에서 발견되어 오늘 제거할 예정입니다. 1시 반 이전에 중요한 물건을 들고 건물에서 다 나가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2차세계대전’과 ‘폭탄’이라는 정말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 친숙하지 않은 이 두 단어로 순식간에 나의 평온하였던 아침은 깨져버렸고, 나는 바로 여권과 작성 중인 박사논문 및 관련 자료가 들어 있는 usb, 그리고 노트북을 들고 집을 뛰쳐나왔다. 중요 물품으로 노트북과 usb만 달랑 들고 나온 내 모습에 너무 현실감 가득한 박사생 같아 헛웃음이 나왔다.
마침 15시 30분에 약속이 있었기에 약속 장소 근처로 미리 가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었고, 16시가 넘어가는 시점에 슬슬 배도 고프고, 춥고, 해도 뉘엿뉘엿 져갔기에 집에만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웬걸, 집 근처에 다다르자 버스 운전사께서 방송으로 다음 역은 내리지 못한다며 지나가지 못한다 말씀하셨고, 나는 집 앞 정류장에서 내리지 못 한채, 전 정류장에서 내렸다. 오후 17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경찰들은 여전히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고, 경찰 한 분께 내가 사는 곳을 말하며 가고 싶다고 하자 아직 들어갈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하며, 대신 근처 고등학교에 대피소를 만들었으니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말씀해주셨다.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고등학교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사람들로 학교 안이 가득 찼고, 적십자 및 구급대원들이 학교 입구에서 한 명씩 인적사항을 적으며 팔에 번호가 적힌 종이 팔찌를 채워주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과자와 음료를 받으며 처음으로 독일의 고등학교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일로 독일 고등학교에 와보다니. 처음에는 한국에서 다닌 중고등학교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신기하기도 하고, 옛 생각도 조금씩 났지만, 통제가 되지 않는 아이들의 정신없는 모습과 지친 모습이 역력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 그리고 점점 많아지는 사람들까지 겹치니 약 10년 전 겪은 일본 대지진 때의 대피소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였을까. 괜히 긴장되고 두려움이 커지고 무서워지는 게 계속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그 순간 쾰른에 사는 친구에게서 폭탄 제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으니 자신의 집에 같이 가서 기다리는 게 어떻겠냐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바로 친구가 지금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답을 하고는 재빨리 학교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미 해는 졌고, 도대체 이 폭탄 제거는 언제까지 이어지는 것인가, 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때쯤, 친구가 독일에서는 1년에 몇 번이나 일어나는 일이고, 특히 쾰른에서는 대학교 근처에서 자주 폭탄이 발견되어 흔하다면 흔한 일이라며, 안전하게 폭탄은 제거될 것이고 걱정할 것이 없다고 다독여주었다.
다행히 친구 집에 도착하여 15분도 지나지 않은 19시가 되기 조금 전에 인터넷으로 폭탄 제거 완료 뉴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에서는 이번 폭탄 제거를 위하여 5천 명이 반나절 동안 피난을 갔으며, 여러 도로와 트램, 기차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저 5천 명 중에 한 명이 나라고 생각하니 얼떨떨하기도 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한 번은 한 병원과 가까운 곳에서 폭탄이 발견되어 그 병원에 입원한 환자 모두를 대피시켜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라리 신체 건강한 5천 명이 대피하는 것이 낫지, 아픈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하는 일은 너무나 위험하고 훨씬 고되고 힘들게만 다가왔다. 잠시였지만 안식처를 제공해준 친구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혹시나 아직도 집에 못 들어가게 경찰들이 길을 막아놓았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며 집으로 향하였는데, 그런 걱정은 1도 필요가 없었나 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냥, 일상으로 벌써 돌아온 사람들과 길거리의 모습에 조금은 당혹함도 있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동독보다는 서독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는 2차세계대전 때 숨겨둔 폭탄들. 이 모두 전쟁을 발발한 나라로서의 죗값을 받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과응보. 어떻게든, 누구에게로든 자신의 죗값은 꼭 되돌아온다는 말이 정말 이 세상에 적용되는지 의심스러울 때마다 이렇게 인과응보는 살아있다는 것을 세상이 나에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할 때마다 다른 나라에서는 곧 전쟁이 발발할 것처럼 호들갑이지만 정작 한국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대하는 모습처럼,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폭탄 발견과 제거 뉴스는 호들갑을 떨 만큼의 주제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마다 조금씩 무언의 마음의 짐을 느끼며 살아가지 않을까. 생전 처음 겪은 ‘세계2차대전 때 사용된 폭탄 제거’ 해프닝이 독일인이 아닌 나에게도 이렇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의 짐을 느끼게 하는데,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런 해프닝이 어떻게 다가올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아침에는 당혹스러움이, 오후에는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못 한 하루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하였었지만, 늦게라도 무사히 아무런 사건 없이 내 집에 돌아올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가 되었다.
- 작가: 몽글맹글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걸 좋아합니다. 쓰면서 정리합니다. 주로 독일에서의 일상 및 매일의 삶 속에서 언젠가 기억하고 다시 꺼내보고 싶을 작고 소중한 일들을 기록합니다.
- 본 글은 몽글맹글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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