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어느 날
요즘 가장 많은 받는 질문 중 몇 가지가 이렇다.
“한국에 돌아가는 기분이 어때요?”
“독일 생활 3년 동안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뭐예요?”
“여행은 많이 했나요?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 3년을 살았으니 어디 그리 간단하게 감정 정리가 될까마는, 한편으론 아쉽고 한편으론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이라는 게 가장 정확할 것이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면 마냥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 떼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으나, 현재 이곳에서 활동의 폭이 좁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 데다 복잡하기만 한 타국 생활 정리 절차를 빨리 관통하고 싶다는 차원에서 서둘러 귀국하고픈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다.
두 번째 답은 가족 관계다. 타지에서 여행이 아닌 생활자로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낸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일들이 많았다. 그저 우리 생활의 단면만을 보는 입장에서는 모든 게 좋아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남의 나라 살이 그것도 깐깐하기 이를 데 없는 독일이란 나라에 산다는 건 언제나 긴장을 동반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한국과 달리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나, 그리고 많은 시간을 재택근무하는 남편의 업무 환경은 어찌 됐든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건을 허락했고, 부모와의 시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아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보면 더 놀라운 관계의 변화는 나와 남편이다. 3년을 연애하고 결혼해 벌써 11년 넘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제야 비로소 진짜 베스트 프렌드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업무량으로 치면 한국에서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지만, 한국 생활과 비교하면 남편의 약속 및 술자리 등이 현저히 적어 서로 대화할 시간이 많았던 덕분이다. 주된 화제였던 아이가 커가는 이야기부터 고민과 걱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는 우리 부부가 이토록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물론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별로 크지도 않은 집에서 홈 오피스와 거주 공간을 겸하며 지낸다는 건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어려움이 있다. 같이 있지만 따로 있고 따로 있지만 같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 애매모호한 상황은 특히 외국생활에 적응하던 초창기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일로 바쁜 남편은 남편대로, 독일 생활 정착을 위해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던 나는 나대로 예민해져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을 수없이 지나쳐야 했다. 6개월 여 지나고 어느 정도 서로 적응이 된 후에는 다소 여유를 찾았지만, 여전히 불편함은 남아 있었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는 남편의 말에도 삼시 세 끼를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렸고, 어쩐지 혼자 놀러 가는 것도 눈치가 보였으며, 몸은 편한데 마음은 편하지 않는 시간들이 계속됐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한 공간에 있으되 각자의 삶의 형태를 유지하며 따로 또 같이 지내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로를 특별히 신경 쓰지 않지만 필요한 상황에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점만을 최대한 살려서 살게 됐다고나 할까.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3년을 붙어 지내면 이혼 위기에 이르던가 진짜 친해지던가 둘 중 하나라고 하던데 다행히도 후자 쪽이니 이 또한 감사할 일.
마지막 여행지에 대한 질문은 정말로 책 한 권을 쓰고도 남을 정도다. 그럴 정도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가 됐든 각각의 이유로 모두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서 느낀 대 자연의 힘, 그저 넋 놓고 지냈던 테네리페 섬에서의 일주일, 추적추적 비 오는 길을 하염없이 걸었던 리스본, 수년 전 사진 한 장에 꽂혀 언젠가 가고야 말겠다 했던 이탈리아 포지타노 등… 모든 여행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여행의 기억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걷고 걷고 또 걸으며 마주했던 장면들이다. 걷는 여행을 별로 해본 적도 없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던 나는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자발적 도보 여행자가 됐다. 그렇게 된 건 유럽 골목골목의 매력에 빠지면서부터다.
사실 초기에는 여행 안내서나 블로그 검색 등을 하며 유명하다는 곳 위주로 동선을 짰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과 몽마르트르 언덕 위주로 시작했고, 바르셀로나에 가면 성가족 성당과 구엘 공원이 중심이 됐다. 물론 그런 여행도 더없이 좋았으나 알려지지 않은 곳, 화려하지 않은 곳, 그곳 사람들의 삶이 날 것 그대로 담긴 공간들을 걸으며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들은 마음을 풍요롭게 했다. 독일 생활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유럽 내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보다 독일 소도시 여행에 방점을 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변화가 유난히 더딘 독일에선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소도시들도 많고, 역사적으로 중요성을 띠는 소도시들도 많지만, 그뿐만 아니라 어느 이름 없는 작고 소박한 마을이라 해도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만끽하는 행복이 작지 않았다. 골목을 걷고 집들을 구경하며 누군가의 삶의 방식과 스토리를 상상하고, 담벼락에서 자라는 식물이며 낙서를 보며 즐거워하고 아담한 동네 교회에서 경건한 마음을 가져보는 그 사소한 방식을 통해 나는 진짜 여행이란 것을 하고 있음을 깨닫곤 했다. 소도시 중에서도 큰 도시에 속하는 고슬라나 에르푸르트, 바이마르부터 친환경 마을인 브로도윈, 하펠강 품은 작은 힐링 도시인 베르데, 독일 알프스의 최고봉을 끼고 있는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까지 몇 번을 다시 가도 좋은 소도시들은 한국에 돌아간 후에도 두고두고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만 같다.
<오늘의 깨달음>
아이는 매끼 같이 먹는 식사가 좋았다고 했다. 특별할 것 없어도 그저 함께 한 지극히 사소한 일상의 장면들 하나하나 꺼내보며 이야기 나눌 추억이 많다는 것, 서울에서도 지금처럼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