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말 어느 날
베를린에 도착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아이는 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8월 말 토요일로 잡힌 입학식을 앞두고 있던 나는 그리 들뜨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미 한 번의 입학식을 경험하기도 했고, 어디나 입학식이 거기서 거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입학식 날부터 선생님이며 친구들이며 우리나라와 너무 다른 학교 환경 때문에 아이의 틱이 더 심해지는 건 아닐지 초 긴장상태였다.
입학식 당일 아침 집을 나서는 아이는 다행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팔 할이 슐튜테 덕분이었다.
그로부터 보름 전, 아이의 독일 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교 담당자와 나눈 마지막 이메일에서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슐튜테, 잊지 마시고요!” 슐튜테? 슐튜테가 뭐란 말인가! 네모난 검색창에 ‘독일 슐튜테’라고 검색하니 독일에서 초등학교 입학식을 경험해본 엄마들의 후기가 쏟아졌다. 입학식에 들고 갈 슐튜테를 사지 않고 직접 만들었다느니 슐튜테 안에 넣을 사탕과 과자, 선물을 샀다느니 하는 등의 이야기와 함께, 베를린 거리 곳곳, 백화점이나 쇼핑몰 곳곳에서 마주쳤던 거대한 고깔 모양의 종이로 된 콘의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이게 슐튜테라는 것이구나. 학교에 첫 입학하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담아 선물로 준다니,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긴장되는 ‘입학식’을 조금은 즐겁게 만드는 좋은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학식 당일, 학교에 가니 아이들 모두 커다란 슐튜테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우리 아이도 자신이 직접 고른 스타워즈 사진이 프린트된 커다란 슐튜테와 함께였다. 기념촬영을 할 때도, 강당에서 호명을 받고 무대 위에 오를 때도, 각자의 교실 투어를 갈 때도 아이들은 종일 슐튜테와 함께했다. 식이 끝나고 각자의 교실에 모여든 아이들은 슐튜테 속에 들어있던 사탕과 과자, 초콜릿 등을 꺼내,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며 수줍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달콤한 것들이 가득 들어있는 슐튜테를 들고 있다는 것 자체로, 아이들은 입학식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입학식에 와 있는 것인지 축제에 와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입학식 현장은 떠들썩하고 유쾌했다. 선배 학년 아이들의 서툴지만 진심 어린 환영 무대와, 남다른 비주얼 자체로 흥이 폭발케 하는 음악 선생님의 특별 공연,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교장선생님의 농담까지 더해져 강당에 모여있던 모두는 이 날이 다소 긴장된 입학식이란 사실을 잊은 듯했다. 아니, 어쩌면 입학식은 곧 긴장되는 순간이란 생각 자체가 나의 편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입학식 내내 아이는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경험한 초등학교 입학식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 이렇게 축제 같은 입학식이 가능하다니!
그로부터 6개월 전, 한국에서의 입학식이 떠오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독일에 오기 전 한국에서 이미 입학을 경험한 아이와 나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특별하지 않다. 잔뜩 긴장한 채로 학교에 갔던 것, 각자 이름표를 달고 국민의례부터 선생님 소개, 교장 선생님 말씀, 학교 위원 소개 등으로 이어지는 지루한 순서를 끝내고 교실로 갔다는 것, 그나마 담임 선생님이 준비해놓으신 백설기 떡을 나누어주던 순간에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것 정도다. 그렇다고 불만이었던 건 아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그러할 테고, 우리가 경험했고 들어왔던 입학식의 보편적 풍경이 그러했으니. 다만, 입학식 자체의 분위기만으로도 ‘이제 너희들은 유치원생이 아니야’ ‘학교는 노는 곳이 아니야’ ‘규칙과 규율은 중요해’ 등의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전달받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슐튜테 이미지로 대표되는 독일학교에서의 입학식은 진정 신입생, 재학생, 학부모와 친인척, 교사들이 함께하는 축제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18세기 후반부터 슐튜테 전통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전쟁과 같은 역사 속 위기에도 이 전통은 계속 유지됐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슐튜테는 단지 경건하고 긴장되고 지루할 수 있는 입학식을 위한 ‘달콤한 위로’의 의미가 아니라, 아이와 온 가족이 새 출발하는 날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란다. 아닌 게 아니라, 부모와 형제자매 정도만 참석한 동양인 가족들과 달리, 독일 가족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며 이모 고모 삼촌으로 추정되는 친인척들이 그것도 잔뜩 차려 입고 입학식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집 아이가 귀한 아이인가 보다’ 했는데, 그게 바로 ‘독일식’이었던 것이다.
마냥 즐겁던 입학식 분위기 덕분에, 피부색도 머리색도 다른 낯선 친구들이 건네는 초콜릿과 사탕 덕분에 아이는 첫날부터 학교를 사랑하게 됐다. 입학식 후 소감을 묻는 내게 아이는 말했다. “처음엔 좀 떨렸는데 나중엔 너무 재밌었어. 엄마, 근데 번개 머리 음악 선생님 너무 재밌지? 아까 교실에서는 어떤 애가 나한테 사탕도 줬어. 우리 친구 된 거 맞지? 선생님도 너무 친절해. 그리고……..” 재잘재잘 아이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앞으로도 학교 생활이, 교실이 즐거움으로 가득하겠구나, 나는 진심으로 안도했고 감사했다.
아이는 생각보다 걱정보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다. 보통 한 달은 울면서 학교에 간다던 얘기도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다만, 친구들을 사귀는 문제는 완전히 다른 범주의 얘기였다.
<오늘의 깨달음>
입학식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 아이 학교 교장 선생님은 학교 행사에서 아이들과 단체 댄스로 이벤트 시작을 알리는 그런 분, 학부모 데이에는 누가 누가 잘하나 유머 경쟁하는 선생님들은 또 어떻고! 이렇게 즐거운 학교, 안되나요?
- 작가: 어나더씽킹 in Berlin/공중파 방송작가,종합매거진 피처 에디터, 경제매거진 기자, PR에이전시 콘텐츠 디렉터,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유럽통신원 활동 중, ‘운동화에 담긴 뉴발란스 이야기’ 저자
현재 베를린에 거주. 독일의 교육 방식을 접목해 초등생 남아를 키우며 아이의 행복한 미래에 대해 고민합니다.
- 본 글은 어나더씽킹 in Berlin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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