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와서 살게 된 한국 가족의 배경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첫 번째는 부부가 똑같이 이주를 원해서 온 케이스인데 물론 이 상황 역시 때때로 다툼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부부가 합심하여 일심동체로 타국에서의 생활을 일구어 나갈 수 있다. 둘 다 공부하는 학생 부부라든가, 취업에 도전을 한다든가 혹은 이민과 정착을 위해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취업을 적극 도와주거나.. 어쨌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눈치를 볼 일도,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원망할 일도 없다. 처음에 두 사람 간의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부부 중 한 사람으로 인해 이주를 해야 하는 경우, 바로 나 같은 상황이다. 남편은 독일행을 절실히 원했고 나는 반대를 하다가 끌려오다시피 독일에 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불만이 있었다.
남편은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임에 분명했고 인생의 궤도가 바뀌었을 뿐 쭉 나아갈 것이다.
적어도 그는 나처럼 정지된 상태에 방향감마저 상실하진 않았다.
무력감이 컸다.
내가 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복귀 여부에 대한 불투명성이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했다. 힘들긴 했지만 10년 동안 나는 한 번도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차곡차곡 쌓아온 내 경력을, 알게 된 지도 몇 년 밖에 안 된 어떤 작자가 어느 날 남편이란 명함을 달더니 자기 마음대로 무너트렸다.
나란 존재는 낯설기만 한 이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언어였다. 독일어 때문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어쩌면 내가 언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서 더 예민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내 의사를 한국어로 유창하게 말하고 유려하게 글을 쓸 수 있었던 나는 이곳에서 아베체데(ABCD)도 모르는 키 작은 까만 머리의 동양 여자일 뿐이었다.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특히 외국에서의 언어는 곧 삶의 질과 비례한다고 보면 당시 삶의 질은 최하위였다.
더군다나 이따금씩 독일에서 만나게 되는 내 또래의 한국 여자분들을 보면 석사 및 박사 유학을 왔거나 연구원 자격으로 오신 분들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인해서 독일에 왔기 때문일까. 내 눈엔 희망차 보였고 진취적으로 느껴졌다.
나에겐 한국에서 하던 작은 강연 프로그램을 유지할 수 있다는게 그나마 숨통이라면 숨통이었는데 그녀들을 보니 내 일이 보잘것 없이 느껴졌다. 나는 왜 하필 문학을 전공했을까라는 부질없는 후회도 했다. 이공계 혹은 독일어 전공자이면 모를까 방송작가와 한국문학 석사라는 명함을 가지고 독일이란 땅에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법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독일이 감독이었다.
남편의 박사과정이 끝날 때까지 그 시간을 난 무엇을 하며 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시절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이상한 병이 생겼다. 뭐든지 잘못되면 남편 탓을 했다.
일명 “너 때문이야”
병이 생긴 것이다.
너 때문에 이 상황이 이렇게 됐다.
너 때문에 내 꿈이 조각났다.
너 때문에 나는 지금 힘들다.
그러니 너는 평생 나한테 잘해야 한다며 남편을 못살게 굴었다.
처음엔 그도 미안해했지만 나중엔 들은 척 만 척, 그 얘기 좀 그만하면 안 되겠냐는 반격이 돌아왔다. 왜 자신에게 가해자 프레임을 씌우느냐는 것이었다. 본인 역시 내가 피해자 역할로 남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이 서운해서 나는 엄청나게 쏘아붙이며 싸움을 걸었다. 독일에 와서도 한 6개월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한 번은 한국에 가겠다며 캐리어에 내 짐을 모조리 싸기도 했다. 결국 2017년 한 해 전체가 싸움으로 시작해서 싸움으로 끝난 셈이다.
합의점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나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갔다. 이 당시 유일한 나의 낙은 공원에서의 달리기뿐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작아질 대로 작아진 내 심장과 내 열정이 뛰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족을 알게 됐다.
독일 남자와 결혼한 한국인 여자였는데, 아이를 낳게 되면서 박사 과정을 중단하게 됐고, 언제 다시 복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녀의 심정에 공감하며 우스갯소리로 “남편분이 잘 하셔야겠어요” 했더니.. 그녀의 돌아오는 말이 내 심장에 화살로 박혔다.
“그러게요. 예전에는 제가 ”나한테 잘해“라고 하면 알겠다고 했는데 요즘엔 들은 척도 안 해요. 결국엔 제 선택의 문제죠.”
이 짧은 문장이 나에겐 어떤 섬광처럼 빛의 속도로 날라와 뇌리에 꽂혔다. 내가 충격을 받은 건 남편의 성품 때문이었다. 그에게 받은 인상은 한 마디로 ‘천사’였다. 뭐랄까. 그는 온종일 인류의 평화를 걱정하는 박애주의자였다. 저런 고운 성품의 남자도 살다 보면 혹은 참다 보면 저런 말을 하는구나 싶었다.
물끄러미 내 남편을 봤다. 단언컨대 그는 ‘천사 과’가 아니었다. 몇 달을 못 참고 그만 좀 하라고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나를 피해 망상에 사로잡힌 여자로 취급할게 뻔했다. (물론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좀 과격하게 표현해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남편이 완곡하게 같이 가기를 원한 것도 있었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만약 내가 진짜 독일에 오고 싶지 않았다면 나는 끝까지 한국에 있는 쪽으로 버텼어야 했다. 우리는 아이도 없었기 때문에 떨어져 사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한 번 선택을 했으면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을 머리는 알고 있었지만 몸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서울에서 직장인 같아 보이는 슈트를 입고, 유명 인사들과 협업을 하고,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백화점에서 느긋하게 쇼핑을 하던 나의 모습들을 상기시키며 말이다.
비단 나뿐 만이 아니었다. 국제 커플 혹은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온 많은 여성들이 비슷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평생 해야 하는 것이지만 외국에서는 더욱더 제한적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급기야 아내가 적응을 하지 못해서 돌아가시는 분도 봤고, 반대로 어떤 분은 제2의 적성을 발견해 한국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과연 나는 둘 중 어떤 쪽이 될까.
더 이상 뒤만 돌아보다가는 어디까지 후퇴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에게 잔소리와 불만만 쏟아내는 아내로 남겨지고 싶지 않았으며, 남편 때문에 경력단절이 됐다며 평생 신세한탄만 하는 내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 탓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내 성격상 남편 덕 보는 사람도 내키지 않았다. 훗날 남편이 박사학위를 받는 거지 내가 받는 것은 아니다. 부부라고는 해도 개인의 성취를 향한 길은 또 다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는 일들, 성과를 거두지 못할지언정 이곳에서의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을 일들을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우선 독일어 어학원에 등록했다. 새로운 언어가 나에게 모멘텀이 되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서울에서처럼 우리 지역에서 하는 각종 전시, 음악회를 찾아보며 몸을 움직였다. 요가도 등록했다. 일종의 나만의 생활을 위한 시간표를 짰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써왔던 TV프로그램을 위한 글이 아닌 내 삶에 대한 글을 말이다.
경력을 잃어버린 시간이 아닌, 한국에 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경험의 시간들을 기록했다. 보잘것없는 글들이 훗날 내 삶의 또 다른 거울이 되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너 때문이야”도 “너 덕분이다”도 아닌
“나 때문에” “나 덕분인 삶”을 써 내려갔다.
솔직히 훗날 한국에 돌아갔을 때 무엇을 할지는 여전히 고민이 많다. 계속 방송작가를 할지 다른 일을 시작해 볼지.. 진로에 대한 고민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숙제다. 다만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독일에서의 삶이 인생의 방향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진부한 말 그대로 세상은 넓고 할 것은 많다는 것을 3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그것도 기나긴 투쟁 끝에 깨달았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만드는 내 인생이고 내 작품이다.
- 작가: 여행생활자KAI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여행생활자, 주변 살펴보기가 취미인 일상관찰자
- 본 글은 여행생활자KA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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