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성 환자 한 분이 급성 뇌출혈로 뇌졸중 집중 치료실에 입원합니다. 출혈의 크기가 크지 않고, 부종도 심하지 않으며, 증상도 편측 감각 소실 정도로 경미하여 신경과로 입원합니다. 고혈압과 같은 흔한 위험인자 하나 없던 분이어서 주치의는 뇌출혈의 원인을 찾느라 애를 먹습니다. 뇌혈관 영상(MRA)을 아무리 뒤져 봐도 동맥류나 혈관 기형은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은 교수님 회진 때 엄청 깨지고 맙니다.
레지던트 1년 차 때 제가 맡았던 케이스였습니다. 교수님께서 찾아주신 범인은 ‘감기약’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에페드린(ephedrine)’ 성분입니다. 메틸 에페드린 혹은 슈도에페드린으로 대부분의 종합 감기약에 다 들어있습니다. 이 성분들은 종합 감기약의 효과에 필수적입니다. 기관지를 확장시키거나 비강 점막 내의 혈관을 수축시켜 코막힘 증상을 완화시킵니다. 문제는 ‘성분’이 아닌 ‘사용 횟수의 문제’입니다. 에페드린은 교감 신경을 촉진하여 장기 복용 시 혈압을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이 환자분이 만성 기침을 자가 치료해왔는데 두 달 넘게 매일 종합 감기약을 복용한 이후 급성 혈압 상승이 생겨 결과적으로 뇌출혈이 발병한 것입니다.
5년째 꾸준히 제 외래에 진료를 보러 오셨던 63세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경미한 뇌혈관 협착과 우울증으로 내원하셨던 분으로 60세가 넘었지만 생업을 지속하던 분이었습니다. 계속 일을 하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며 금연도 하고 우울증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우울증이 좋아지면서 30대부터 있었던 편두통 횟수가 많이 줄어 예후가 괜찮을 거라고 예상했던 분이었습니다.
근데 최근 몇 개월간 두통이 갑자기 심해졌다고 호소하였습니다. 기존에 편두통이 있었던 분이라도 두통 양상과 강도가 갑자기 변하면 다른 원인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뇌혈관(MRA)을 다시 촬영하여 6개월 전 이미지와 비교하였더니 이전에 비하여 확연히 한쪽 뇌혈관의 협착이 진행하였습니다. 단기간에 이렇게 진행할 만한 다른 원인을 찾기 힘들어 자세히 여쭤보니, 최근에 스트레스로 두통이 심해져 ‘종합 감기약’을 3개월간 매일 3 봉지씩 먹어왔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어떤 진통제보다 잘 듣는다며..
1년 전에 20대 남성이 ‘죽을 것 같은’ 극심한 두통이 초발하여 내원하였습니다. 기존에 그다지 두통이 없던 분으로 특별한 기저 질환이 없고 1년째 중요한 시험에 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각성과 집중이 필요한 기간인지라 하루에 인스턴트 봉지 커피를 25개 마셨습니다. (듣고서도 믿기지가 않았죠) 커피를 좀 적게 마신 날은 에너지 드링크를 마셨고요. CT상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지주막하 출혈이 MRI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약물 오남용은 종종 나이와 상관없이 뇌혈관질환을 유발합니다. 감기약, 카페인 등의 적정 허용 용량과 주의법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을 법하지만, 그 선을 가뿐히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너지 드링크는 각성 효과와 중독성으로 청소년층에 인기가 많은데 손쉽게 구할 수 있기에 부모의 적절한 지도와 개입이 필요합니다. 에너지 드링크의 달달한 맛은 식욕을 달랠 수 있지만 탐닉할 경우 가까운 미래에 당뇨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에페드린 성분이 정상적인 유통망을 벗어나 온라인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어 뇌혈관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약물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중요해졌습니다. 심장과 뇌혈관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는 성분이 어디에 얼마큼 들어있을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더욱 문제가 됩니다. 원래 에페드린 성분은 기관지 확장을 위한 천식약에 쓰였지만 지금은 저혈압 치료 외에는 의약품으로 쓰지 않습니다. 에페드린은 쉽게 암페타민으로 전환될 수 있어 미국 마약국에서 단속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슈도에페드린으로 대부분의 감기약 성분에 들어가지만, 쉽게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다이어트 약이나 한약의 마황 성분으로도 흔하게 접할 수 있기에, 저한테 내원하는 대부분의 환자분들에게 ‘다이어트 약을 일정 기간 복용하거나 복용한 적 있는지’ 확인합니다. 다이어트 약을 복용 중인데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불면을 호소하면 필히 이 성분을 의심합니다. 어지럼증, 실신까지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의 도핑 이슈에도 끊임없이 이름을 올리는 아이입니다. 에페드린은 체내 교감 신경을 항진시켜 기초 대사량을 늘리기 때문에 1) 체내 지방이 빠져나가고 2) 지치지 않고 활력이 넘치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에페드린을 도핑에 사용하다가 급사하는 운동선수들의 이슈가 다이어트와 관련된 다른 그림으로 점차 더 일반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식욕 부진이 심하고, 전신 쇠약감이 들 때
근육이 떨리는 느낌(경련), 두통, 어지럼증
너무 허기지고 메스꺼운 느낌이 반복될 때
두근거리거나 안절부절못하고 쉬 예민해질 때, 깊은 수면을 이루지 못할 때
복용하고 있는 약 (처방약, 일반 의약품 모두), 건강 보조 식품, 한약재의 성분을 한 번쯤 의심해보세요.
고혈압이 없었을 지라도 주기적으로 혈압과 맥박을 체크해보세요.
식약처가 판매를 허가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모두에게 안전하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본인이 복용하는 건강 보조 식품에 대한 부작용 사례 보고가 없는지 국내 사례와 해외 사례 모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보시길 바랍니다. 건강 보조 식품의 종류가 워낙 많아 성분 별로 찾아보시길 권하며, 효과가 좋은 것은 그만큼 의심해보는 균형감 있는 입장을 견지하시길 권고드립니다.
- 작가: 익명의 브레인 닥터 / 의사
말보다 글로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13년 차 신경과 의사입니다. 우연히 코로나 시대의 독일을 겪는 중입니다.
- 본 글은 익명의 브레인 닥터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 응원의 메세지나 문의를 아래 댓글창에 남겨주세요. 댓글을 남겨주시면 작가님께 메세지가 직접 전달이 됩니다.
ⓒ 구텐탁코리아(http://www.gutentag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