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얘들아!! 오늘 날씨도 풀렸는데 산에 갈까?
아들 귀찮고 힘들어서 싫어요.
엄마 유치원 발표 시간에 할 얘깃거리 생길 텐데.
아들 괜찮아요.
놀이터에서 줄넘기한 거 올려주세요.
엄마 산에 가는 게 얼마나 좋은데! 얘는 참!
아들 엄마는 참!
주말마다 산에 가자고 절 유혹하신단 말이에요
엄마 오늘은 무슨 맛있는 간식 싸서 산에 갈까나?
아들 알겠어요. 엄마, 오늘만 같이 가 줄게요.
제가 좋아하는 간식 챙겨주세요.
집안일에 멀미가 나는 날, 마땅히 갈 곳이 없을 때 난 딸을 재촉해서 산에 간다. 봄바람이 부는 날에는 하루가 멀다고 밭에 가서 흙을 만지고 풀을 뽑더니 가을엔 산으로 내 맘대로 출근이다. 아이를 데리고 놀기엔 자연만큼 좋은 장소도 없다. 지난 몇 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딸과 즐기던 둘만의 산 데이트를 하지 못했다. 아이의 꼬막 손만큼이나 예쁜 단풍잎 사이로 보이는 가을 하늘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열심히 산에 가야지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겨울이 올 줄이야.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만한 산이 지척에 있어서 든든하다.
아직은 간식으로 아이를 유혹할 나이가 다행이라 여기며 간식을 챙긴다. 힘들어하면 당근으로 틈틈이 사용할 사탕도 넣었다. 돌 전에는 남편이 띠로 등에 메고 산에 올랐다. 운동이라곤 숨쉬기만 하는 남편을 위해서 그리고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은 온 식구산으로 출동이다. 첫째 아이는 다람쥐처럼 날쌔지만 둘째 아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빠한테 자꾸 안아 달라는 통에 애먹었는데 이젠 제법 산에 잘 오른다. 혼자 걸어서도 거뜬히 중턱까지 오르는 일이 감격스럽다. 산기슭을 올라가는 남매 뒷모습이 얼마나 흡족한지.
온 식구가 산에 오르던 어느 날, 산에 오면 이렇게 좋은데 한 달에 한 번만이 아니라 세 살 난 딸을 나 혼자 데리고 못 올 이유는 없어 보였다. 시간 많은 우리 모녀가 두 손 꼭 잡고 산에 오면 심심치 않고 좋을 듯했다.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더라도 산어귀에서만놀아도 뭐 어떠랴. 처음엔 힘들다고 자꾸 주저앉고 안아달라는 녀석 때문에 산에 다녀온 날은 온몸이 천근만근으로 밤새 끙끙 앓았다. 그럴 때마다 ‘체력이 허술해서 그래, 그럴수록 더 열심히 운동해야지’ 하며 산에 갔다. 그랬던 딸은 산에 자주 오를수록 다리에 제법 힘이 생겼다. 날이 갈수록 아이는 커갔고 나는 요령이 생겼다. 딸이 좋아할 만한 간식으로 “저만큼만 오르면 까까 줄게”라며 녀석을 꾄다.
아이와 함께 산에 오르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느린 걸음 덕에 전엔 보지 못한 풍경을 본다. 허물 벗은 매미의 투명한 옷들, 여기저기 모자를 벗어던진 도토리 형제가 눈에 더 잘 띈다. 산은 꼭 정상을 밟지 않아도 아주 좋다는 것도 알게 된다. 둘이 오를 만큼만 갔다 오순도순 즐겁게 내려오는 산행길은 즐겁다. 우리 둘만의 아지트도 만들었다. 산 중턱쯤에 너른 바위가 바로 그곳이다. 거기에 돗자리를 깔고 준비해간 간식을 아이에게 주고 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딸은 내가 그렇듯 산에서 느끼는 평화로움을 이미 느끼는 모양이다. 단풍을 모아 작은 구릉을 만들기도 하고 매끈한 나뭇가지를 고르기도 한다. 숲속에 널린 다양한 놀잇감을 가지고 놀 줄 안다. 잠깐이지만 훨씬 정신적으로 편안한 자유를 맛보는 꿀맛 같은 시간이다.
산에 혼자 가는 걸 더 좋아하지만, 어린아이를 떼어놓기 어려운 환경에서 차선으로 선택한 산행도 나름 괜찮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삶이 점점 더 무기력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귀찮고 힘들어도 어떻게든 몸 쓸 일을 만든다. 신체 에너지가 높아지면 기분이 좋아지고 남매에게 훨씬 다정한 엄마가 되기에. 코끝이 기분 좋게 시린 날, 산에 갔다 온 날은 유독 더 기운이 난다. 아이는 밥도 더 맛나게 먹고 낮잠도 달게 잔다. 오늘도 딱 그만큼 자유 시간을 확보했다. 선심 쓰듯 산에 가주겠다던 아이도 산에 오길 참 잘했다는 걸 보니 오늘도 집 나서길 잘했다.
- 작가: 김유진 / 에세이스트, <엄마라서 참 다행이야>저자
한국에선 가족치료 공부 후 부모 교육을 했으며 현재 마더코칭연구소를 운영하며 2016년 여름부터 독일에 삽니다.
- 본 글은 김유진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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