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회색이었고 불투명하게 두꺼웠다. 공기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힐 열기에 가득 차 있었고 무겁고 척척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전혜린
작가 전혜린의 표현은 절묘했다. 그녀가 써 내려간 독일의 겨울과 내가 마주한 독일의 풍경은 너무나 같아서 마치 데칼코마니를 보는 듯 했다. 독일의 집에 처음 짐을 내려놓았을 때 공기는 이상하게 서러웠고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은 낙엽이 우수수 다 떨어져 나갔고 겨우 몇 개 붙어있던 나뭇가지만이 파리하게 몸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소설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며 쓸쓸한 풍경 속에 지독히 외로워했다.
독일의 겨울은 혹독했다. 연일 흐리고 비가 왔다. 그나마 한줄기 빛인 크리스마스 마켓이 끝난 1월과 2월은 최악 중 최악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일조량 부족에 허덕이는 몸을 위해 비타민 D를 성실히 섭취하는 것뿐이었다. 늘 추웠다. 내 입에선 ‘춥다’라는 말이 하루에도 수 십 번 터져 나왔다. 매일 밤 옷 세 개도 모자라 경량 조끼를 입고, 양말을 신고, 물주머니까지 껴안고 잤지만 추위를 이겨낼 수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겨울을 보내고, 바야흐로 기다리고 기다렸던 봄이 왔다. 모든 것이 느린 이 나라는 봄도 참 더디게 와서, 5월은 되어야 포근함을 안겨준다. 봄의 도착과 동시에 나는 그때서야 우리집 창밖으로 드리우진 앙상한 나무의 이름을 알게 됐다.
그의 이름은 ‘아카시아’였다.
우리 집 창문을 장식한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무..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에 발을 디딜 때마다 연신 감탄했다. 매일 눈뜨자마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나는 행운아임에 분명했다. 마치 이 아카시아 나무는 독일이란 땅에서 아등바등 사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이육사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했는데, 나에게 “독일의 오월은 아카시아 꽃이 익어가는 계절”로 기억될 것이다. 아카시아 꽃이 만개하면서 점차 독일이란 궤도에 적응해나갔다. 햇빛을 뚫고 들어오는 찬란한 아카시아 꽃의 빛깔, 바람과 함께 살갗을 스치는 싱그러운 아카시아 내음.. 이 아름다움을 온전히 체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부셔서 눈물이 났다.
봄을 맞은 나뭇잎들은 더욱 싱그러워졌다. 초록의 깊이가 한결 청신해지고 성숙해졌다. 계절은 5월 여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좋다”라는 말이 연신 나왔다. 그것은 “춥다”를 달고 사던 겨울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비자발적으로 온 불편함 덩어리였던 이 나라에 박자를 맞추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간간히 이곳 아닌 다른 곳, 한국 아닌 저 너머를 아련히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어보곤 했다.
독일에 사는 것은 어때?”
물론 미세먼지 없는 맑은 공기, 저렴한 물가, 일과 휴식의 균형 등 표면적으로 보이는 장점도 많지만, 불편한 의료와 느린 행정 서비스, 독일어의 어려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한국도 독일도 아닌 어떤 경계에 존재하는 ‘이방인’이라는 혼돈, 인종차별, 향수병 등 단점 역시 손가락 발가락이 보자랄 정도로 많다. 그래서 유학이나 이민을 고민하는 그들에게 무조건 독일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조언하기가 어렵다.
삶의 방식에도 유행이 있다. 휘게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 소확행.. 많은 신조어들이 이를 반증한다. 라이프스타일의 홍수 속에 유행을 쫓아가기보다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간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실천하기란 만만치가 않다.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생활방식도 워낙 달라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딱히 정답도 없다. 때문에 내 삶의 방식이 즉 독일에 온 것이 잘한 결정인지 나 역시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삶의 가치관이 달라진 것만은 확실했다. 가령 예전보다 한결 물건에 대한 집착이 줄었으며, 남과의 비교에도 자유로워졌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생활의 불편함들은 내 안에 내재된 여러 능력들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스스로 해낸 것에 대한 성취감이 주는 희열을 일상에서 곧잘 느꼈고 정신적 만족이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약간은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나를 더욱 나이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토록 새소리, 나무의 성장, 나뭇잎의 푸르름에 자주 반응하고 감화했던 적이 있었을까.. 시간의 압박에 못 이겨 평생 내 것이 아닐 것만 같았던 “지금 이 순간”을 비로소 살고 있었다.
표면적으로 한국에 있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 폭풍 속에 들어갔다 나온 나는 이전의 나와는 분명히 다르다. 어느새 나는 지금껏 살아온 그 어떤 시공간에서보다 ‘나답게’ 살고 있었다.
…
독일에서는 이 마음을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독일 공원을 함께 산책하듯 영상 에세이도 만나보세요.^^
- 작가: 여행생활자KAI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여행생활자, 주변 살펴보기가 취미인 일상관찰자
- 본 글은 여행생활자KA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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