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복이 많은 게 좋은 거라고요?
일복이네. 복福이네 하지 마시고, 일이나 줄여주세요
일이 많은 사람에게
‘일복이 많다’라는 말 대신
‘고생하네’라며 위로해야 하는 이유
우리 회사가 원래 안 바쁜데,
00 씨 들어온 뒤로 바빠졌어.
일복이 아주 많은 것 같아
일하면서 항상 들어왔던 말이다. ‘일복이 많다’라는 이야기. 얼핏 듣기에는 좋은 말 같지만, 일복이 많은 당사자가 되면, 참 억울하다. 같은 돈을 받고, 남들보다 두 배 이상 일을 한다. 그러다 못 버티겠다 싶어 나오면 이상하게도 내가 맡았던 일이 여유로워진다. 남들이 흔하게 쉬는 빨간 날은 나에게 단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긋지긋한 일복은 방송작가에 입문했을 때부터 따라왔다. 남들은 한 프로그램을 맡을 때, 나는 두 개 프로그램 작가로 일을 했고 받는 월급은 똑같았다. 그래서 밤을 새도~새도 일이 줄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2년 동안 몸을 혹사시킨 채 첫 번째 방송국을 떠났다. 또 한 번은 아침 방송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월화수목금 아침 생방송이라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그렇게 5개월을 일하다가 결국 병을 얻어 프로그램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내가 그만둔 다음날 프로그램이 우연히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래서 다음 작가는 입사하자마자 한 달을 푹 쉬게 되었다. 나에게 하루도 허락되지 않았던 휴일이… 그 작가에게는 허락된 것이다. 부러웠다.
그놈의 일복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일까. 나는 ‘일복이 많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아니, 솔직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일복이 많은 건 제가 아니라
당신 때문이에요.그렇게 신경 쓰이면
일을 줄여주세요.일복이 많네라며
정당화하지 마시고
일복이 많은 건 사실 일의 분배가 잘못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칭찬으로 하는 말인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복을 그냥 ‘복福’으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1. 일복이 많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일의 양이 정말 많다.
사실이다. 누군가는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한 숨 돌리고 쉴 수 있지만, 일복이 많은 사람은 정말 쉴틈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한다. 일은 정말 줄지 않고 쌓여만 가고, 끝이 안 보인다. ‘끝이 있다’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일을 하려고 해도, ‘끝은 없다’라는 말이 뒤에서 웃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럴 때 ‘일복이 참 많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겠는가. 안 그래도 현실이 어두워 눈앞이 캄캄한데, ‘일복’이라는 말로 안대 하나 더 쓴 것 같다. 정말 캄캄~하다. 일복이 많다는 말만 하고, 일을 분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바쁜 거 아니니까. 저 사람이 바쁜 건 일복이 많아서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잔인한 게 아닐까
2. 일복이 많은 사람도 힘들다.
‘복이잖아. 복이면 좋은 거지 뭐.’라고 생각하지만, 당사자는 정말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복이 많은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힘든 것은 보지 못한다. ‘저건 저 사람의 복이야’라고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무슨 특권인 마냥. 축복인 마냥. 일복이 많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농담 따먹기 식으로 ‘너 왜 이렇게 일복이 많냐?’ 이렇게 하면 끝인 거다. 더 이상의 배려도 격려도 없다.
‘일복’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전에 ‘일이 많아서 힘들지?’라는 위로를 건네는 게 순서 아닐까. ‘일복이 많다’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당사자의 힘듦을 헤아려 주는 게 먼저 아닐까.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으면,
‘일복이 많다’는 말은 그만 두시라
사실 회사에 일복이 많은 인재가 있으면, 회사 입장에서는 좋다. 일복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일을 잘하고, 일처리가 빠르기 때문에 그다음 일이 줄줄이 오기 마련. 또한 사람들이 말하는 ‘복’이니 정말 일복이 많은 인재가 사업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최근에 알게 된 사람 중에는 본인이 일 한지 1년 만에 회사 매출이 1억이 올랐다고 한다. 거짓말 같지만, 진짜라고 한다. 회사 사람들이 복덩이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불행했다는 이야기가(일복이 많은 불쌍한 이는 1년 넘게 매일 밤낮없이 일을 했다고 한다. 동지여…)
사실 ‘일복이 많은 자’ 스스로도 자신이 일복이 많은 걸 안다. 자신의 ‘일복’으로 인해 정말 고통받는 이도 있다. 그때 ‘일복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다. 안 그래도 아픈 곳을 한번 더 푹 쑤시는 기분이랄까.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제발 일복이 많아서 힘들어하는 이에게 ‘일복이 많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시라. 그 사람을 위해서, 정말 당신의 회사를 위해서.
당신이 정말 순수한 의도로 칭찬을 하고 싶은 거라면 ‘일복이 많다’라는 말 대신 ‘고생이 많다’라며 위로를 건네는 게 맞지 않을까.
- 작가: 은잎 / 방송작가
6년차 방송 작가이자, 기업 작가입니다. 삶의 권태로운 시기를 벗어나고 싶어 글을 씁니다. - 본 글은 은잎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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