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8월 어느 날
2017년 여름, 3년이라는 예정된 시간을 살기 위해 우리는 독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녹록지 않을 것임은, 꼭 경험이 아니어도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땐 ‘선물’ 같기만 했다. 터전이 달라질 뿐 여전히 바쁜 직장인의 삶을 살아야 할 남편은 또 달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인생에 새로운 챕터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20년 가까이 질주해온 직장생활에 커다란 쉼표를 찍고,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된 자기 성장의 기회를 얻는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인생 여정에서 중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이 ‘베를린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물론, 그해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무난하게 학교생활에 적응 중이었다. 집에서는 여전히 유치원생 티를 벗지 못했지만 학교에서는 나름 학교가 요구하는 ‘1학년 수준’에 부합되는 모습이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실제 아이가 체감하는 것보다 엄마 걱정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아이에 대한 걱정이라기보다 나 자신에 대한 걱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잡지 에디터 시절부터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한국 교육의 현실들이 아이 입학(겨우 초등학교 입학 이건만!)과 함께 스멀스멀 걱정으로 피어올랐고, 선배 맘들의 애정 어린(?) 경험적 조언들도 고민을 더하게 만들었다. 무조건적으로 아이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믿고 그 가치만 따르면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저 한구석엔 의심과 불안, 초조가 뒤섞여서 나를 마구 괴롭혔다. 아이 양육에 올인할 수도 없는 워킹맘의 한계까지 겹쳐,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그 자체로 나에겐 부담이고 숙제 같았다.
그런 찰나에, 게다가 공부 부담이 비교적 덜하면서도 아이의 그릇 크기는 무한히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이밍에, 무려 3년을 독일에서 보낼 수 있게 됐으니 선물 같았을 수밖에. 독일 교육이라고 해봐야 프뢰벨이니, 발도르프니 하는 정도밖에 아는 게 없었지만, 일단 나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고, 선행은 필수가 돼버린 보편적인 ‘한국식’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하나로 감사했다.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직장생활을 하느라 늘 부족했던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 등은 부차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밋빛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해외에서 살다온 선배맘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아이가 한 달 내내 혹은 두 달 내내 울면서 학교에 갔다는 경험들이 태반이었고, 결국 한국에 돌아와야 할 상황을 생각하면 마냥 놀면서 여유롭게 보낼 수만 없다는 얘기들도 많았다. 잠깐 동안 해외살이를 경험한 아이들이 막상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적응 문제와 학업 차이 때문에 더 힘들어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떠나기도 전부터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문제들까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려니, 슬그머니 걱정이 되는 건 당연지사.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친한 친구들, 익숙한 환경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디뎌야 하는 아이의 적응 문제는 내가 생각해도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다.
친구 하나 없이 낯선 독일 땅에서 늘 ‘혼자’였던 아이는 한 달 후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틱 증상이 지속됐다.
베를린 살이를 시작한 후,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가을학기제에 따라 8월 말 1학년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아이는 베를린에 도착한 며칠 후부터 틱 증상이 시작됐다. 6세 무렵, 유치원에서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아 한동안 틱 증상이 있었던 이후 처음이었다. 그때 한 달 이상 지속되던 틱 증상을 지켜보며 매일 눈물 나게 속상했지만, 결국엔 아이 스스로 극복해냈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처음만큼 당황스럽진 않았다. 다만,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일이라고 선택했던 결정이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변명 같지만, 아이를 믿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착 과정이 까다로운 독일 땅에서, 나는 매일매일 공무 절차를 밟고 집을 구하고 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고, 남편 또한 바로 시작된 업무 때문에 치열한 하루하루를 사느라 아이는 뒷전이 되기 십상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는 한국에서 가져온 책 몇 권과 로봇과학 블록 조립으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학교에 입학하기까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버텼다. 다행히 틱 증상이 더 심각해지지는 않았지만,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잘하고 있는 걸까.
결과적으로, 아이의 틱 증상은 학교 입학과 함께 바로 사라졌다. ‘독일에서 한 달만 살고 다시 한국에 돌아갈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독일행을 반기지 않았던 아이도 조금씩 그 기간이 늘어나 3개월이 되었다가 1년이 되었다가 3년이 되었다가, 이제는 더 오래오래 있고 싶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아마, 막상 돌아가야 할 시점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게 아닐지가 걱정될 정도.
독일에서 벌써 세 번째 학기까지 마친 아이는 그렇다고 전적으로 독일 방식으로 자라는 것도 아니다. 공립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나는 한국 엄마이고 한국식 교육이 필요하다고 믿는 부분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지금 우리 아이는 행복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 안에서의 ‘공부’만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경험들이 그 행복을 채워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온전히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들 또한 겹겹이 쌓여 그 행복의 질을 높이고 있다.
나는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매일 놀라고 깨닫고 그러다가 또 시행착오를 겪고 다시 반성하기를 숱하게 반복 중이다. 지난 일 년 반은 어쩌면 나의 성장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놀라운’ 이야기는 입학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입학식이, 교실이,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준 그곳에서부터.
<오늘의 깨달음>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준다, 고 무책임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스스로 힘들었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그 시간들을 견뎌내고 성장해준 아이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이 들 뿐.
작가: 어나더씽킹 in Berlin/공중파 방송작가,종합매거진 피처 에디터, 경제매거진 기자, PR에이전시 콘텐츠 디렉터,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유럽통신원 활동 중, ‘운동화에 담긴 뉴발란스 이야기’ 저자
현재 베를린에 거주. 독일의 교육 방식을 접목해 초등생 남아를 키우며 아이의 행복한 미래에 대해 고민합니다.
본 글은 어나더씽킹 in Berlin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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