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식이 심하다. 어릴 때에는 지금보다도 가리는 음식이 많았는데, 편식 중에서도 제일 나쁜, 먹어보지도 않고 싫어하는 아이였고, 지금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커가면서 입맛도 조금씩 변하여 먹을 수 있게 된 채소도 많아지고 새롭게 먹어 볼 용기가 생겨 어쩌다 한 번 먹어보고는 생각했던 맛과 달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된 음식도 생겼다. 그래도 아직까지 한 번 먹어볼 시도도 하지 않은 것들이 많은데, 대추, 이 대추가 먹어보지도 않고 그냥 싫어서 먹지 않는 채소 중에 하나이다.
지난주에 친구가 독일에서 파는 말린 대추는 달고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말린 대추’라는 말을 듣자마자, “으- 대추 싫어, 그것도 대추를 말렸다니, 그게 무슨 맛이야” 라며 난색을 표하였고, 친구는 여기 유럽에서 파는 대추는 한국의 대추와 맛이 조금 다르다며, 중동, 유럽 쪽 대추는 달고 맛있다고 극찬을 하였다. 말린 망고, 말린 바나나, 말린 파인애플, 말린 살구, 말린 고구마, 등 이름만 들어도 맛있는 냄새가 느껴지는 말려서 먹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대추를 말려서 먹지,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들었지만 그래도 이번 참에 대추에 한번 도전을 해볼까 싶은 마음이 생겼다. 특히 ‘한국 대추와는 달리’ 달고 맛있다는 말에 홀린듯하다.
대망의 말린 대추를 처음 먹어 보는 날이 왔다. 괜히 혼자 있을 때 사서 먹어 보았다가 내 입맛에 안 맞아 버리지도 못 하고 먹지도 못 하게 되는 불상사를 없애기 위하여, 그리고 친구와 함께라면 좀 더 용기를 내서 먹어 볼 시도를 할 것 같기에 친구와 함께 주전부리를 먹을 기회만 호시탐탐 노렸다. 그 날이 오늘이었다. 슈퍼에 가니 야채 파는 코너에서 쉽게 말린 대추와 말린 살구, 말린 무화과, 그리고 삶은 밤 등이 나란히 있어 찾기는 아주 쉬웠다. 이 전에는 관심 없이 지나쳐서 그랬는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내가 항상 사 먹던 키위 위칸에 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마침 오늘 말린 과일들을 세일하는 날이라 땡잡은 마음을 안고 말린 대추를 샀다. 그러고 보니 생 대추는 안 보이던데, 얘네는 대추를 말려서만 먹는 건가.
슈퍼에 진열되어 있는 말린 과일들
친구는 말린 대추를 보자마자 이거라며 먹어보라고 권해줬고 나는 친구가 먼저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용기를 내서 한 입 살짝 베어 물었다. ‘어! 뭔가 식감이 익숙한데?’ 라는 생각도 잠시, 어렸을 적 이맘때쯤 오후 간식으로, 입가심으로 먹던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곶감이 생각났다. 대추를 말리면 이런 식감이 드는구나, 신기해하며 또다시 한 입 베어 물었다. 이번에는 처음 한 입보다는 조금 더 많이 베어 물었던 것 같다. 단 것을 싫어하는 친구와 단 것에 환장하는 나여서 그런지, 아니면 좀 전에 마신 초코우유 때문인지 내 입에는 단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건강한 아주 아주 살짝 나는 단 맛이랄까. 친구는 한 번 말린 대추를 먹기 시작한 뒤로 내가 곶감 먹듯 아무 생각 없이 계속해서 손이 말린 대추로 향하였고 나는 처음 시도한 대추 하나를 먹은 뒤로 다시 손이 가지는 않았다.
오늘의 주인공인 말린 대추
말린 대추에 호불호는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나에게 있어서는 어른들의 간식과 같다고 해야 할까. 다음에 한국에 들어갈 때 엄마 아빠께 드릴 선물로 한 팩 사가면 부모님은 정말 좋아하실 것 같다. 다음에 어딘가에서 말린 대추가 간식이든 안주로든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면 이제는 무서워하지 않고 서스럼없이 한 입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딱 한 입만, 딱 하나만. 아쉽게도 내가 즐겨 먹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에 시도를 해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다음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보아야겠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대추도 먹을 수 있게 될까, 싶은 기대를 아주 살짝 품었었지만,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다. 언젠가는 ‘아고 고 대추 참 달구나’하며 씹어먹는 날이 나에게도 있으려나.
(수정사항: 내가 먹은 것은 대추가 아닌 대추야자라는 것인데, 이름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효능이나 맛은 다르다고 한다. 위 글을 지금에라도 수정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대추라고 생각하고 일어난 나의 일상이었기에 그대로 두려고 한다.)
작가: 몽글맹글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걸 좋아합니다. 쓰면서 정리합니다. 주로 독일에서의 일상 및 매일의 삶 속에서 언젠가 기억하고 다시 꺼내보고 싶을 작고 소중한 일들을 기록합니다.
본 글은 몽글맹글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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