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위해 떠난다”
“Partir pour partir (떠나기 위해 떠난다)”
이 문장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전혜린의 에세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나온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프랑스어 발음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 채로 이 문장을 되뇌곤 했다. 떠나기 위해 떠나다… 전혜린의 낭만과 우수에 가득 찬 독일은 열 여섯 살의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그 후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한국의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계 자동차부품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다. 독일이란 나라는 그렇게 나의 핵심에 혹은 주변에 늘 머물러 있었던 기분이다. 그렇지만, 이미 독일에 대해 가졌던 낭만은 사라지고 없었다. 사무 노동자인 나에게 독일은 내가 다닌 회사의 본사가 있는 곳, 그곳의 사무 노동자들과 주기적으로 프로젝트 회의를 하고, 프로젝트 리더에게 보고를 하고, 긴급사안의 경우 도움을 요청하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2018년 5월, 우리 가족은 독일에 왔다. 남편의 독일 본사로의 파견근무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2016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새롭게 시작한 공부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었지만, 독일에서 살 수 있다는 말에 모든 걸 기꺼이 접었다. 다시 예전에 독일을 향해 가졌던 낭만과 그리움이 마음 속에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곳’에 가면 이 지긋지긋한 한국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무언가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즈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 4년, 우리는 많은 걸 시도하고 경험했다. 나는 독일어 C1 자격증을 획득해 대학교의 학사 과정에 들어가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있고, 아이들은 모두 국제학교에서 독일 현지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리고 올해 5월, 남편은 독일 본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정직원이 되었다. 즉, 우리는 남편이 여기서 생계를 위한 직업 활동을 하는 한, 계속 독일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4년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며 독일에 대해 가졌던 낭만과 그리움은 환멸로, 독일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무력함과 지긋지긋함으로 변했고, 독일인을 향한 나의 경계심과 반감은 호감보다 더 커지게 되었다.
변명
사실 우리는 남편 상사의 정규직 제안을 거절하고 파견근무 계약 종료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이미 독일에서의 삶에 대해 다소 냉소적 시선을 갖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왜 독일에서 살기로 결심했는가? 이유는 크게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이다:
첫째, 나는 그 곳이 어느 곳이든 철저히 나 개인으로서 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나를 숨막히게 했던 위계질서 속 촘촘한 관계망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으로서 살 수 있는 곳에서 말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영원히 사회적/정치적 아웃사이더의 삶을 영위하겠지만, 그것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둘째, 궁극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나에게 자유는, 다른 모든 소중한 가치들 맨 위에 나 자신의 가치를 놓는 것이다. 나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진심과 최선을 다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회적 시선 때문에, 혹은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 지금 당장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희생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나는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나에게 도전거리를 던져주는 곳, 나의 지적인 호기심과 배움에의 열망을 채워주는 곳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현재 나에겐 -비록 나 자신의 무능력으로 인해 때론 좌절하고 실망하고 있지만- 독일어이고 독일의 대학 교육이다. 나는 끊임없이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성장하고 싶다.
넷째, 한국이라는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숨막히는 속도전에서 발 맞추면서도 언제나 마음의 공허함을 느꼈는가? 유행 따라 사주어야 하는 옷들, 생활 용품들, 사치품들, 경쟁하듯 가야 하는 여행지 등을 먼 발치에서 현기증을 일으키며 바라보진 않았는가? 나는 그랬다. 그리하여, 이 답답할 정도로 느리고 유행에 둔감한 독일 사회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다섯째,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성이 무한경쟁과 입시교육 때문에 시들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다. 물론 난 현재 아이들을 통해 경험한 독일 교육의 현실에 대해 다소 냉정한 시각을 견지하게 되었지만 (이에 대해선 나중에 이곳에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독일 교육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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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특정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다. 내가 나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그곳이 한국이든 독일이든 미국이든 브라질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수의 사람만을 조금 멀리서 사랑할 뿐이다.
이 칼럼은 독일에서 내가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맞닥뜨렸던, 그리고 앞으로 응하게 될 도전의 기록이 될 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의 실패와 성공의 기록이 될 것이다. 독일인을 향한 나의 미움과 애정, 독일, 이 나라에 대한 환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기록이 될 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의 경험은 우리에게 특별하고 특수한 것이기에 나의 시선은 종종 한 쪽으로 혹은 반대 쪽으로 쏠려 보일 것이다. 그것에서 편협함과 모순을 읽으신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어찌 됐든, 이 모든 것은 영원히 낯선 나라, 나의 천국과 지옥, 독일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나의 그리고 우리의 고군분투의 기록이 될 것이기에. 마지막으로, 내 글을 읽고 독자 여러분이 힘든 타지 생활 중에 때론 공감하시고 때론 작은 위로를 받으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작성: C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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