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11살이 되었다. 어린이날 선물 받는 나이로는 약간 어색한 듯 하지만, 선물은 언제든지 좋은 거니까! 그리고 6학년 13살까지는 어린이라고 불러줄 것이다.
어떤 선물을 줘야 좋을까…. 소비놀이가 모두의 무의식 중에 스며들어있는 요즘에 특별한 날이라고 동참하고 싶지는 않다.
11년째 쓰고 있던 전자렌지가 5개월 전부터 스위치가 안눌린다. 혹시 어느날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여전히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고, 5개월동안 없이 살아보면서 우리에게 전자렌지는 없어도 된다는 결론을 냈다. 이제 “이제 진짜 버린다!” 마음을 먹은 참이였다.
그런데 왠지 그냥 버리기가 아까운 것이다.
전자제품의 속을 뜯어보는 일이 그 얼마나 흔하지 않은 재미있고 궁금한 일인가!
그래서 5월 5일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가 어린이날 선물로 마당에 꺼내놓았다.
나는 아이가 분해하며 놀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나 아이들은 예상을 뒤흔단다!
부시고 던지고 깨트리고 더 부시고 난리 부르스를 친다.
그대로 두었다. 아니, 더 잘 부숴지도록, 시원하게 찌그러지도록 쇠망치를 던져 주었다.
그렇게 때려 부수기를 1시간여가 지나자, 계속 부수면서 숨을 거칠게 쉬며 힘들어 했다.
시원하단다! 스트레스가 확 풀린단다!
망치로 힘을 다 쏟아내고 나니 드라이버를 잡고 작은 힘을 쓴다.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분해를 한다. 전선들을 잘라내고, 나사못을 풀고, 다 뜯어낸다.
그 속이 궁금한게 아니라 그냥 다 뜯어서 해체하고 싶은 욕구였던 것이다.
어느 매장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작은 것들을 몽땅 쓰러뜨려 버리고 싶은 이상요릇한 욕구와 같은!
무엇이 보이는가?
이 아이는 주어진 사물을 보고 가만히 자신의 내면 욕구를 들여다 보았고, 자신의 리듬대로 천천히 또는 빨리, 살살 또는 세게 흐르면서 내 안을 어루만지고 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안에 여유와 만족이라는 공간이 생겼다. 그래서 행복지수가 급격히 상승한 특별하고 기분 좋은 어린이날을 보냈다.
어떤 선물이 좋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기회를 주고 가만히 내버려 두는 시간이 필요하다.
- 작가: 이연재/기획자
독일과 한국에서 놀이터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쉬고 노는 곳을 연구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합니다.
- 본 글은 이연재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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