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돈키호테는 수면 장애 증세도 있다. 돈키호테가 한 손에 검을 쥐고 마치 적군과 싸우듯이 마구 휘두르는 와중에도 돈키호테의 눈은 계속 감겨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 자는 중이었고, 꿈속에서 거인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 김종성의 <뇌과학 여행자 : 신경과 의사, 예술의 도시에서 뇌를 보다> 중에서
예전보다 수면의 질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습니다. 비전문가들도 수면에 관한 책을 읽고 수면의 질에 신경을 씁니다. 수면의 주기는 비렘(non-rapid eye movement, NREM) 수면과 렘(rapid eye movement, REM) 수면으로 나뉩니다. 대개 비렘수면에서 시작하여 깊은 수면으로 진행되고, 대략 90분 후에 렘수면이 나옵니다. 렘수면 시에 우리는 꿈을 꾸지만, 근력은 축 떨어져 있어 사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정상적으로는 뇌 안쪽 하부의 구조물(뇌간 청색반) 신경이 억제되어 있어 무긴장 상태가 유지되고 있지요.
수면 문제는 크게 3가지로 나눕니다. 불면증, 주간 졸림증, 이상 수면행동입니다. 이번 글은 그중 세 번째, 이상 수면행동에 관한 글입니다. 위에서 설명드린 비렘수면과 렘수면 각각에서 이상 행동이 보입니다.
이상 수면행동 (Parasomnia)
이상 수면행동을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보면, 비렘 사건수면(non-REM parasomnia)은 흔히 아이들에게서 많이 보는데 수면 공포(sleep terror), 몽유병(sleep walking) 등이 있고 렘 사건수면(REM parasomnia)은 악몽(nightmare)과 렘수면 행동장애(REM related behavioral disorder, 이하 RBD)가 대표적입니다.
자다가 일어나서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수십여분 우는 어린이가 있다. 애기가 아닌데도 잠투정을 계속한다며, 참다못한 부모가 혼내보고 달래보고 갖은 방법을 다해 보지만 속수무책이다. 한 시간 뒤에 물어보면 자다가 깨서 본인이 어떻게 울고 난리를 쳤는지, 부모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혼돈 상태의 각성(Confusional arousal)은 소아기의 흔한 비렘 사건수면입니다. 서파 수면(잠들기 시작한 이후 지속되는, 느린 뇌파가 보이는 수면)에서 각성으로 전환이 스위치 켜듯이 팍!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질질 끌면서 몽롱한 상태입니다. 완전히 깨어나면 아이는 밤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정도나 횟수가 심해지면 부모 입장에선 걱정이 되지만, 대부분 특별히 치료하지 않고 수면 단계가 성숙하길 지켜보는 수가 대부분이지요. 아이들에게 흔히 보입니다. 이에 반해 어른들은 상대적으로 렘 사건수면이 많습니다.
가짜(pseudo) 렘수면 행동장애
60세 김 모씨는 밤마다 코를 골고 악몽을 꾸며 소리를 지른다. 코골이가 심하여 배우자가 진료실에 데리고 왔지만, 본인은 악몽을 꾸고 일어나는 불쾌함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낮에도 자꾸 졸리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잔 것 같지 않다.
꿈자리가 사납고 소리까지 지르는 증상에 렘수면 행동장애(RBD)를 의심하며 진료실로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매체 보도가 많아져서 소문을 익히 들으신 분들이 꽤 있죠.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렘수면 행동장애와 파킨슨 질환의 연관성이 알려지면서, 과하게 진단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렘수면 행동장애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1) 증상과 2) 수면다원검사(렘수면 시 근육의 긴장이 없는 게 정상인데, 긴장도가 올라가는 것) 소견이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위의 사례처럼, 폐쇄성 수면 무호흡(Obstructive sleep apnea, OSA)으로 인한 부차적인 증상이 아닌지 확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치료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죠. 수면무호흡으로 혈액 속 산소 포화도가 감소하면 뇌가 깨면서(arousal) 악몽을 꾸는 것입니다(어른이 꿈을 자주 꾸면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수면무호흡으로 인해 악몽을 꾸고 소리를 지르면 수면 무호흡을 치료(대표적으로 양압기 치료)해야지, 렘수면 행동장애 치료에 쓰이는 약물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렘수면 행동장애로 진단이 되면 파킨슨 질환의 증상이 없을지 추가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향후의 치료 방향이 전혀 달라집니다.
(진짜) 렘수면 행동장애
비슷해 보이지만 악몽 차원을 넘어서, 발길질이 심하고 벽을 발로 차는 과격한 ‘행동’으로 부상까지 입는 경우에는 진단이 달라집니다. 위에서 언급한 우리의 돈키호테 증상이 전형적인 렘수면 행동장애의 예인데요, 1605년에 발행된 소설에 쓰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의학 지식이 매우 놀랍습니다.
렘수면 행동장애는 증상 그 자체만으로도 골절의 위험성 등으로 위험하지만, 파킨슨 증상이 나타나는 루이소체 치매와 파킨슨 병과의 연관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렘수면 행동장애의 원인 병소는 뇌간의 수면 조절 센터의 청색반인데, 바로 그 뇌간에서 파킨슨 질환의 병리 기전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렘수면 행동장애가 진단된 15-20년 후에 파킨슨 질환이 나타날 확률은 130배나 됩니다. 도파민 핵의학 검사 결과보다 4배 이상이나 높은 수치인데, 그만큼 진단적 가치가 높으니 렘수면 행동장애를 진단할 때 정확성과 세심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지요.
렘수면 행동장애를 확진받는다면 파킨슨 병, 루이소체 치매 등의 퇴행성 질환의 여부를 장기간 추적 관찰할 수 있으니 예후 측면에서 의미가 큽니다(아쉽게도 아직 미리 시작할 수 있는 신경 보호 치료는 없습니다).
세심함이 필요한 질환
아직까지 렘수면 행동장애의 치료방법은 없습니다. 약을 쓰더라도 근본적으로 뇌를 변화시키지 못해, 정도만 경미해질 뿐이지 증상이 약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최근에 멜라토닌으로 퇴행성 신경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있으니, 연구 동향을 더 살펴보아야 겠습니다. 아직은 렘수면 행동장애로 내원한 분들에게 이런 치료적 한계에 대해 설명을 잘해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킨슨 질환과의 연관성에 대해 상담 치료와 진단 과정에 대한 사전 동의를 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치지 않게 몸을 보호하는 것이지요. 과격한 수면 행동으로 발톱이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수면을 전공하지 않은 의사로부터 내리 약을 처방받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약의 적응증이 다 다르고 생각해야 할 부작용도 다르기 때문이지요. 꼭 렘수면 행동장애에 대해 잘 이해하는 신경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폐쇄성 수면 무호흡과의 관계
흥미로운 사실은 렘수면 행동장애를 겪는 환자의 상당수에서 폐쇄성 수면 무호흡이 같이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수면 무호흡이 동반되지 않은 경우보다)수면 중 산소 포화도가 낮고, 수면의 연속성이 깨지고, 주간 졸림증도 심하고,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수면 무호흡으로 악몽이 심해질 수 있어 함께 치료해주면 렘수면 행동장애의 악몽 증상이 호전될 수 있습니다. 만성적인 폐쇄성 수면 무호흡으로 인해 산화 스트레스와 신경 염증이 축적되고, 뇌-뇌혈관 장벽이 붕괴되는 과정과 함께 퇴행성 신경 질환의 병리 과정이 진행된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면 무호흡 ‘치료’가 역으로 렘수면 행동장애를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어 현재로서는 환자 개별적인 접근이 중요합니다.
폐쇄성 수면 무호흡으로 오해할 수 있는 (가짜) 렘수면 행동장애가 있다는 점, (진짜) 렘수면 행동장애는 상당수에서 폐쇄성 수면 무호흡을 동반한다는 점, 폐쇄성 수면 무호흡은 렘수면 행동장애(퇴행성 신경질환)의 위험 인자로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 포인트입니다.
참고 문헌
- Paulo Bugalho, et al. Sleep Med. 2017
- A Gabryelska, et al. Sleep Breath. 2018
- Postuma RB, et al. Risk and predictors of dementia and parkinsonism in idiopathic REM sleep behaviour disorder: a multicentre study, Brain. 2019
- Annie C. Lajoie, et al. Obstructive Sleep Apnea in Neurodegenerative Disorders: Current Evidence in Support of Benefit from Sleep Apnea Treatment, J Clin Med. 2020
- Santiago Pérez-Lloret, et. al. Melatonin as a Chronobiotic and Cytoprotective Agent in Parkinson’s Disease, Front Pharmacol. 2021
- 작가: 익명의 브레인 닥터 / 의사
말보다 글로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13년 차 신경과 의사입니다. 우연히 코로나 시대의 독일을 겪는 중입니다.
- 본 글은 익명의 브레인 닥터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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