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여섯 살도 안된 아들의 조막만 한 손을 잡고 보건소 문 앞에 섰다. 한 눈에 봐도 동독 시절에 지은 것이 분명한 네모반듯 성냥갑 모양의 보건소. 감옥을 연상케 하는 외관 때문인지, 저 육중한 정문을 힘껏 밀어 들어가야 하는데 내키지 않는다. 문을 녹여 버릴 것처럼 레이저 눈빛으로 쏘아 보고만 있으니 왜 안 들어가냐고 묻는 꼬맹이. 이 녀석 검진하러 보건소에 온 건데… 어려도 아들이라 그런가? 나라에서 실시하는 검진이라고 하니 괜히 마음이 찌릿한 게 노래 한 소절이 귓가를 맴돈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초등학교 입학검진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입학 지원을 하던 날. 서류 등록을 마치고 나가려던 찰나, 입학검진도 등록해 놓고 가라고 붙잡는다. 웬 입학검진? 그럼 신체검사인가? 신검이면 군대 갈 때 하는 거 아냐? 잘못 알아 들었나 싶었지만 일단 눈치껏 적당한 날짜와 시간을 적어냈다.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는 궁금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름하여 아인슐룽스운터수쿵(Einschulungsuntersuchung). 예비 초등생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모든 면을 살피는 검진으로 독일에서 입학을 앞둔 어린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이미 길고 복잡한 명칭에 압도되어 있었는데, 통과하지 못할 경우 입학이 유예될 수도 있다는 문구에서는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단순 신체검사인가 했는데 입학의 당락을 좌우한다니. 그렇다면 입시나 다름없는게 아닌가. 설마 이 검진 탈락해서 우리 애가 초등학교 입학도 못 하는 건 아니겠지? 당황스러움과 조바심에 밤잠을 설치고, 다음 날 아침 유치원 선생님을 붙들고 질문을 쏟아부었다.
“선생님, 초등학교 들어가려면 무슨 검진을 해야 한다는데, 이게 도대체 뭘 검사하는 거죠? 이 검사 통과하려면 어떤 걸 준비해야 하나요? 유치원에서 검사와 관련된 수업을 하나요? 우리 애가 통과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독일은 처음이라 잘 몰라서…”
“어머니, 그 검사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저 아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을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를 보는 것뿐이에요. 제가 보기에 조슈아는 이미 준비가 다 되었는걸요.”
원래도 차분하신 선생님께서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조용히 다독여주셨다. 허나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교과서만 충실히 공부하고 서울대에 들어갔어요’ 라는 전국 수석의 대답. 이런 건 진짜 교과서에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감사하지만 내 성에 차지 않는 대답이라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길을 알려주는 이가 없다면, 내가 길을 찾는 수밖에. 입학검진까지는 앞으로 세 달. 자구지책으로 홀로 ‘독일 초등학교 입학 검진 무조건 통과하기’ 계획표를 머릿속으로 그려나갔다. 입학의 당락을 좌우하는 검사니, 독일어와 수학 능력을 좀 보지 않겠어? 수학은 우선 한국에서 사 온 7세용 학습지 한 권을 하고, 독일어는 알파벳을 싹 훑은 후 기본 단어 받아쓰기 연습을 좀 시켜야겠다.
저녁마다 더 놀고 싶다, 이제 자고 싶다는 아이를 끌어다 손가락 셈도 가르치고, 마마(Mama:엄마) 파파(Papa: 아빠)부터 시작한 독일어 받아쓰기도 시킨지 두어달.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심호흡을 크게 한 후, 무거운 문을 온몸으로 밀어 열고 보건소에 입성. 나이가 지긋하신 간호사 할머니께서 내가 가져온 예방접종 기록표를 체크하시더니, 아이의 키와 몸무게를 재셨다. 그 다음에는 동물과 세모, 동그라미, 네모가 그려진 검사표로 시력 검사도 하고, 헤드폰을 쓰고 언제 어느 쪽에서 소리가 들리는지 청력도 확인했다. 그러더니 아이를 책상 앞으로 부르신다. ‘아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이제 간단한 셈과 받아쓰기를 하겠지? 아들아 잘하자!’ 두 손을 꼭 잡고, 기도인지 주문인지를 외우는데, 선생님은 시험지가 아니라 색연필만 주르륵 펼쳐 놓으신다. 이게 무슨 색이냐는 물음에 아이가 ‘빨강, 노랑, 초록’ 대답하니, “잘했어! 아주 좋아! 그렇지!” 칭찬을 연발 아니 남발하신다. 이후에도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랑 알콩달콩. “우리 세모를 두 개 그려볼까, 이 점선을 따라 줄을 그어보는 거야, 이제 이 카드에 있는 집을 최대한 똑같이 따라 그려보자.” 뭐지? 시험이 아니라 친절한 동네 할머니랑 놀이하는 듯한 이 기분은?
이내 자신과의 검사는 끝났으니 의사 선생님께 가보라는 간호사 할머니. ‘아, 입학의 당락을 좌우하는 검사는 의사한테 받는 거구나.’ 옆방에서 한쪽 귀를 뚫은 젊은 의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격적인 검사에 앞서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려는지 유쾌한 장난을 걸기 시작. “나처럼 이렇게 한 발로 서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니? 옳지, 그럼 이제 한발로 콩콩 뛰어서 나한테 와 볼래? 다시 제자리로 가봐. 이제 내가 이 공을 던질 테니까 잘 받아. 오 잘하는데. 그 공 내가 받을 수 있게 잘 던져줄래?” 생각보다 길어지는 전주에 속으로 외쳤다. ‘선생님, 이런 건 이제 그만하고 얼른 진짜 테스트로 넘어갑시다.’ 머릿속으로 한 혼잣말이었는데 들렸나? 의사 선생님이 책상에 앉아 주섬주섬 종이 여러 장을 꺼내신다. ‘아, 이번엔 진짜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시험지를 흘낏 봤더니, 종이에는 귀여운 일러스트레이션이 한가득. 그림을 보고 이름을 말하란다. 왕관, 공주, 케이크, 물컵, 개구리, 연필, 바다, 달… 또 한 번 속으로 절규했다. ‘선생님, 이건 뭔가요? 얼른 시험 보고 집에 가게 해주세요.’
의사는 종이에 뭔가를 끄적끄적하더니 반듯하게 접어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다 됐습니다. 검사 결과는 아주 좋아요. 아드님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준비가 되었네요. 축하합니다!”
아이와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의사를 보며 어리둥절. ‘네? 검사가 끝이라고요? 우리 아이 아직 산수 문제 하나 안 풀었고, 독일어 단어 하나 안 썼는데…검사 통과라고요? 도대체 뭘 보고 입학 준비가 다 되었다는 거죠? 정말 이게 다라고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질문이 목에 걸려 마른기침으로 나왔다. 크흠 크흠! 독심술이라도 전공하신 걸까? 어안이 벙벙해진 내 표정을 스치듯 보시고는 의사 선생님이 몇 마디 덧붙이신다.
“키와 몸무게도 적당하고, 잘 보고 듣고 말할 수 있고…나이에 맞게 신체 발달이 아주 잘 이뤄지고 있네요. 두려움이나 어려움이 없고 낯선 사람과 대화할 수 있고, 타인의 지시도 잘 따르고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다 완벽해요. 아이가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어머니도 수고하셨어요.”
어쨌든 독일 초등학교 입학검진은 통과. 하지만 기쁨보다는 얼떨떨함이 더 크다. 집으로 오는 내내 의사 선생님의 마지막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학교에 갈 준비가 되었다는 건 수학 한 두 문제 더 잘 풀고, 단어 몇 개 더 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키우는 것이라는 말씀을. 분명 말랑말랑한 말이었는데 정신 차리라고 후려치는 손인 듯 맵다. 서서히 화끈거리는 얼굴. 입학 유예라는 문구를 보고 화들짝 놀라 검진을 나홀로 ‘입시’라 착각하다니. 있지도 않았던 ‘입시’를 무조건 통과해야 한다며 아이에게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강요 했던 나.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책상머리로 끌고 왔던 많은 날들, 누가 알까 민망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그렇게 아이들이 크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말라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몸과 마음을 빚고 있는 것이니, 그 노력과 정성을 고마워하고 기특하게 바라보라고. 그것만으로도 큰 일을 하고 있으니 조급하게 더 많은 것을 바라지 말라고. 교과서에나 나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독일 의사 선생님과 유치원 선생님이 내게 주시는 현실 조언이고 가르침이었다. 아이를 더 큰 세상으로 내보내려면 부모도 큰 마음을 가져야 할텐데. 부족했던 내 부모 그릇, 오늘부터라도 정성스레 다시 빚어야 겠다. 더 크고 더 넓게.
‘있잖아 아들아, 지난번에 덧셈하다 틀렸다고 꿀밤 때린 거 미안해…’
- 작가: 오롱
<동독에서 일주일을> 공동저자. 한국에 나고 자람. 스위스, 미국, 독일을 거쳐 이제 막 영국에 정착. 언어, 문화, 정체성이 뒤섞인 콩가루 집안을 지키는 씩씩한 엄마.
- 본 글은 오롱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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