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베를린 이야기
독일 생활 시작기
13년이 다 되어가는 독일에서의 생활 중 절반정도의 시간을 베를린에서 보냈다. 내가 독일에서의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 이기도 하다. 처음 베를린에 도착했을 땐 유럽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게 내가 택시를 타고 첫날 숙소를 향하던 중 봤던 베를린의 모습 그리고 베를린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그러나 사실 독일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는 부담감과 걱정에 베를린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자세히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6개월동안 독일어를 공부하고 독일에 가서 계속해서 독일어로 모든 일을 처리하며 독일 생활을 시작하던 중 독일어에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처음 한국 민박집에서의 며칠을 보내고 드디어 내가 오래 머물게 될 집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일이다. 방에 들어가고 이제 첫 달 월세를 내야 하는데 입주전에 은행 계좌가 없었기에 입주하고 나서 첫 월세를 내게 되었다. 월세를 내러 집을 관리하는 사무실에 갔을 때 그 곳에 있던 직원이 내게 월세를 Bar Geld (현금)으로 낼 건지 아니면 Überweisung(송금)을 할 것인지를 물어봤다. 그런데 송금이라는 단어 Überweisung (위버바이중)을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못 알아들은 상태로 다시 이야기 해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니 결국 그 직원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라고 했다. 그렇게 사무실을 나와 방에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 한참을 내가 정말 여기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도대체 왜 난 그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들었을까? 영어라도 자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별별 생각을 하며 멍하게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도 독일어에 자신감을 잃고 독일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일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냥 여차하면 포기하고 한국에 들어가려고 온 것이 아니었기에 모든 일을 참고 견디며 이겨냈다.
독일에 오기전부터 독일 생활에 대해 많이 조사하고 매달 필요한 경비를 계산하고 왔지만 독일에 왔던 2009년 1월은 2008년 르만 브라더스 파산이후 세계경제 침체의 시기였고 유로화의 환율은 당시 1유로당 2000원이라는 기록적인 환율을 기록하던 때였다. 그래서 처음 독일생활을 할 때는 정말 많이 아끼며 살았다. 다행히 독일의 생활물가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에도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특히 과일과 야채 고기 등 일상적으로 먹는 식료품들의 가격이 한국에 비해 많이 저렴하여 먹고 살아가는 데는 빠듯한 생활경비에도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독일 생활의 시작은 두렵기도 하고 쉽지 않은 도전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1달정도의 시간이 지나 독일어학원을 등록할 때 즈음엔 어느정도 적응이 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작하게 된 독일어 공부…한국에서 단기 속성으로 6개월을 배우고 왔기에 중간 등급부터 어학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중간 등급 B1 반은 내가 생각한 수준과 많이 달랐다. 다른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같은 알파벳을 사용해서인지 아니면 그 뿌리가 라틴어라 그런지 독일어를 정말 빨리 이해하고 습득하고 구사했고 터키에서 온 친구들은 오래전에 독일에 이주한 부모덕에 이미 굉장히 말을 잘했다. 그저 문법을 좀더 배워보려 온 친구들이었다. 그 반에서 정말 진도와 수준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은 나 밖엔 없는 것 같았다. 그때 그런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말도 걸어주고 과제도 도와주었던 스페인 친구가 있었다. 정말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아마 등급을 바꿔 아래등급인 A2부터 다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 친구 덕에 학생을 위한 저렴한 건강보험도 알게 되었고 그 보험 증명을 통해 얼마 지나지 않아 어학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학원을 등록하고 반 년 동안은 정말 학원과 집만 오가갔던 것 같다. 난생 처음 가본 독일 베를린에서 볼 것도 경험해 볼 것도 많았겠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저 하루 빨리 독일어를 공부해서 어학자격증 시험을 통과하고 그걸로 빨리 독일대학에 입학해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던 것 같다. 또 무엇인가를 하고 자하는 모든 게 다 돈이었고 높은 환율로 인해 내가 쓰는 돈이 부모님께 더 큰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에 학원과 도서관 집 말고 다른 곳을 가는 걸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돌이켜보면 아쉬움도 있다 6년이라는 시간동안 베를린에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게 많아서…그렇지만 그때 그 시간에 가지고 있는 목표를 놓고 애썼고 그 목표한 것들을 이루며 살아왔기에 크게 후회는 되지 않는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그래도 버티고 노력하며 드디어 대학에 지원할 수준의 등급은 B2과정을 수료하고 곧 바로 국제 독일어 자격시험인 TestDaF를 치를 생각으로 시험을 준비하던 중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학학원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는 절대 시험에 합격할 수 없다는 사실을…시험에 속한 말하기 파트와 작문 파트는 시험을 준비하며 내 독일어 실력이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게 했다.그저 빨리 학교에 들어가 학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기에 시험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금 힘들었다. 그러나 곧 바로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독일 대학교에 대학공부를 준비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준비과정 프로그램 Studienkolleg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준비 프로그램 안에서 외국인 학생들은 독일어를 공부하게 되는데 그냥 어학학원에서 배우는 것처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수학과 과학 과목의 기초를 배우면서 독일어를 공부하게 된다. 여기서 배우는 수학과 과학은 정말 기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고 그 과목에서 자주 사용하게 되는 용어들을 독일어로 배우면서 대학과정을 준비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추가적으로 독일어 작문을 배우게 되는데 이 역시도 대학 과정에서 쓰게 될 리포트를 준비하는 목적으로 프로그램에 들어 가 있다.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 B2등급의 독일어 과정 수료였는데 다행히 이 과정을 수료한 상태였기에 지원할 수 있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거의 대부분의 대학에서 제공하고 있는데 자신이 들어가고자 하는 대학에서 이 준비과정을 수료하면 과정수료 후에 그 대학에 진학할 때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가고자 했던 베를린 공과대학교에서 하는 준비과정 Studienkolleg에 지원하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알아보고 들었던 것처럼 정말 이 준비과정은 너무 유익했고 독일어 실력을 향상시켜주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대학 학과 과정을 시작하면 배우게 될 과목들의 용어들을 독일어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이 과정 전체에 걸쳐 대학입학을 위해 필요한 독일어 자격 증명으로 쓸 수 있는 DSH(Deutsche Sprachprüfung für Hochschulzugang) 시험도 준비했는데 그 결과 준비과정 이후 마지막에 치른 DSH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이 준비과정을 알기전엔 그저 내가 빨리 학교에 지원하고 학업을 시작할 수 없음에 안타까웠지만 준비과정을 마치고 난 이후엔 이 준비과정에 쓴 반년의 시간이 정말 아깝지 않았다. 빠르게 서둘러 내가 원하는 과정과 일들을 이루어가는 것이 무조건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첫번째 경험이었다.
작가: Eins / 아우디 회사원
직접 경험한 독일에서의 유학생활과 직장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는 중입니다. 독일 브랜드의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독일로 와서 독일 자동차 회사에서 꿈꾸듯 살아가는 중
본 글은 Eins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 구텐탁코리아(http://www.gutentag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