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중고가구를 다 팔았습니다
베를린의 평안한 중고나라
관심 있으면 연락주세요
페이스북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마지막에 “If you are interested, please PM me”을 남겼는데 단번에 인기게시물에 등극하며 약 100개의 PM과 답글을 받은 적이 있다. 13만명의 멤버가 가입되어 있는 베를린의 유명한 중고거래 페이스북 커뮤니티 ‘Sell your stuff in Berlin’에서 9개의 중고가구를 내놓으며 받은 피드백이다. 내 인생 최대의 고객 인게이지먼트가 아니었을까?
880유로치 레슨
무슨 가구를 9개씩이나 팔았냐고 물으면 한숨부터 난다.
베를린 집 구하기가 어렵던 작년, 한국인으로부터 가구를 모두 양도받는 조건으로 집을 얻게 되었다.
‘제 가구를 사실 분들에게만 집을 넘기겠습니다!’는 유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이뤄지는 방법이다. 전 세입자는 처리가 힘든 가구, 전자제품을 편하게 넘기고, 다음 세입자는 필요했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받을 수 있다면 괜찮다. 문제는 내 전세입자 그녀가 비싸게 넘겼다는 것.
나는 침대, 옷장, 소파, 세탁기, 냉장고 등 총 2,000유로에 가구를 받았다. 이케아 물건을 포함한 중고, 저가브랜드의 낡은 전자제품라는 점을 감안하면 2,000유로(한화 260만원)은 꽤 비싸게 치른 금액이었다. 그러나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베를린에서 집을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려울 때라 일단 그 집을 얻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살면서 가구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자니 내 속은 부글거렸다. 가구들을 볼 때마다 속은 것 같은 마음이 올라오는 것도 속상했지만 생활 패턴에도 맞지 않는 큰 가구들이어서 아무도 사지 않을 것 같은 낡은 냉장고와 세탁기를 제외하고 모두 중고거래 사이트에 내놨다. 9가지 물건의 중고 가격을 정하느라 원래의 가격을 하나하나 찾아내면서 내 속은 또 불이 났었다.
‘누가 중고 매트리스를 사겠어?’ ’이케아는 원래도 싼데 굳이 이케아 중고를 살까?’ 가구가 큰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주 만에 9가지 아이템 모두 내 손을 떠났다. 총 1,120유로.
2,000유로에 산 중고가구들을 내 시간과 노력을 더했는데도 손해를 보았으니 아쉽긴 하지만 경험은 언제나 배움을 남기고, 나머지 880유로는 삶의 레슨비이자 집을 얻을 수 있었던 비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새 것이 언제나 좋은 것 만은 아니야
중고 시장이 활발한 것은 기본적으로 독일인들의 검소한 문화 탓이다. 또, 많은 외국인들이 베를린에서 새 삶에 도전하느라 일단 저렴한 중고물품으로 집을 채우며 중고마켓이 발달했으리라.
독일에서는 어릴 적부터 부모로부터 검소함을 배우고, 학교에 가서도 고장난 물품 수리, 옷 꿰매는 법, 다 쓴 물건을 서로 교환해서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문화라 중고물품에 대한 거리낌이 없다. 나는 더 이상 안 쓰지만 남들한테 필요할 만한 물건이 있으면 건물 입구에 놓고 ‘Zu verscheken(가져가세요)’라고 붙인다. ‘이걸 누가 가져갈까?’싶은데 잠깐 외출한 사이 금새 누가 가져갔다. 나도 누가 내어놓은 칠이 벗겨진 작은 탁자를 가져다가 화분 받침대로 쓰고 있다. 한국에서는 낡으면 버리고 새 것을 사기 바빴는데, 베를린에서는 낡은 것도 멋지게 보이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
평안하지만은 않은,
안 팔릴까 걱정되던 큰 가구들도 금방 예약이 잡혀 좋았지만 가구가 현관문을 나갈 때까지 내 마음은 평안하지 못했다. 구입자가 해체와 픽업을 스스로 하는 조건이었는데 다들 해체에 꽤나 능숙 했지만 몸집 큰 가구들을 얌전히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느날은 벨기에 커플이 이케아 툴박스 하나를 달랑 들고 와서는 뚝딱뚝딱 해체하고 잘 나르길래 이 큰 소파를 해치우는구나 기뻐하는 순간, 커튼이 소파에 낀 채로 움직여서 커튼 봉과 벽의 시멘트까지 뜯겨졌다. 또, 중국인 유학생은 서랍장을 들고 나가다가 놓쳐서 마룻바닥에 상처를 남겼다.
하루는 옷장을 사겠다고 인도인 커플이 방문했다. ‘해체는 안봐도 알아서 잘하겠지’ 하곤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했다. 옷장을 분리하기 시작한 지 20분정도가 지났을까? 여자가 갑자기 나에게 오더니 옷장을 안 사겠단다. 이미 서랍이며 판넬까지 해체했는데 옷장을 안 산다고??
옷장 흠집이 생각보다 크고, 먼지도 많고, 옷장이 너무 커서 본인들이 빌린 차에 들어가지도 않는 댄다.
“그걸 왜 이제 얘기해?”
판넬과 못, 나사들은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게다가 그들이 분리하다가 만들어낸 새로운 흠집도 있었는데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라며 발뺌이었다. 그 황당함이란… 그럼 옷장을 다시 조립 해놓고 가라고 하니
“너 어짜피 팔 거 잖아. 다른 사람이 와도 분리해야해!!” 큰소리 치더니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혼자서 당황스러워 마땅한 대응도 못하고 서있었는데 어찌나 분하던지 그 커플이 가고 혼자 옷장과 바닥을 걸레로 닦으며 눈물이 났다.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니다, 잘 지켜볼 것’. 이것도 880유로치 레슨.
벽 시멘트가 뜯겨져 나간 자리엔 석고를 발랐고, 바닥이 긁힌 자리도 부드럽게 갈아 메웠다. 옷장은 결국 못 팔고 대신 오빠가 와서 다시 조립해줬다. 예전보다 더 튼튼하게.
여기서 Good luck
평안하지만은 않았지만 인도인 커플을 제외하곤 다행히 좋은 사람들만 거쳐갔다.
문의했다가 마음이 바뀌면 미리 메시지를 남겼고, 모두 약속한 시간을 칼같이 지켰다. 깨끗한 물건을 좋은 가격에 가져간다며 고맙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그리고 오는 사람마다 다들 내가 어디로 이사가는지 궁금해했다.
“그래서 어디로 이사가??”
한꺼번에 많은 가구를 파는 건 이사를 준비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묻는 것이었다.
“아, 베를린 온 지 얼마 안되는데, 같이 사는 친구 가구가 너무 커서…”라고 얼버무렸다.
베를린에 온지 두 달되었다는 소리에 엄지 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구나 베를린 진짜 좋아!! 굳 럭!”
베를린의 중고거래 Tip
중고거래 사이트
- 페이스북 Sell your stuff Berlin: 큰 커뮤니티를 찾다가 알게 된 것이 셀유어스터프 베를린(Sell your stuff Berlin). 베를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나 젊은 독일인들이 많아 영어로 운영되고, 중고 물품도 매시간마다 꾸준히 올라온다.
- 이베이 Kleinanzeige: 만약 Sell your stuff에 올렸는데 계속 안 팔린다면 이베이 클라인안짜이게(ebay Kleinanzeige)를 이용하면 좋다. 액세서리부터 자동차까지 카테고리가 잘 나누어져 있고, 동네로 상세 검색도 가능하다. 다만 온통 독일어인 점, 그리고 설명이 다소 짧고 무뚝뚝하다. 사진도 다들 대충 찍었는지… 꾸밈을 모르는 독일답다.
- 페이스북 독일유학생 벼룩시장: 한국인 대상 벼룩시장이라 밥솥, 전기장판 등 한국인이 사고 싶을만한 물건이 많이 올라온다.
중고물품 잘 사고 팔기
- 가격 설정: 같은 혹은 비슷한 물건의 시세를 확인하고 올리면 된다. 포장을 뜯은 그 순간부터 중고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포장만 뜯는 새거.. 그런게 어디있나요?) 기본은 원래 구입가격의 50%로 설정한다. 만약 구입한 곳에서 지금 세일을 한다면 그 세일 가격을 반영해주는 것도 센스(매장이나 온라인에서 40% 세일하면 반 값의 중고 사느니 새 것을 살 테니… 세일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정확한 정상 소비자 가격을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적어줬다. 하나하나 귀찮긴 한데 중고라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게 신뢰와 상품가치를 더 올려준다고 생각했다. 물품을 올리며 많은 연락이 오면 내가 가격을 너무 싸게 내놓은 것은 아닐까? 아까운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어짜피 시세라는 것이 있기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자.
- 사진: 중요하다!!! 중고시장에는 같은 물건이 꽤 많다. 같은 값이라면 환하고 깨끗해보이는 것을 고를테니 당연히 밝은 빛 아래, 각도를 잘 잡아 찍으면 좋겠다. 여기저기 상세사진도 미리 찍어둬서 요청하면 보내준다.
- 흠집 확인: 중고 물품에 사용감이 있는게 당연하지만 눈에 띄는 특별한 사용 흔적은 서로 꼭 미리 얘기해야 한다. 내가 팔 때에도 흠집은 꼭 확인시켜주고, 살 때에도 상세사진 요청과 흠집 여부를 묻자.
- 지불방법 확인: 독일 중고거래는 무조건 현금이다! 한국은 만나서 물건 건네 받고 보는 앞에서 모바일 뱅킹으로 송금하면 1초 만에 확인 문자가 오지만 독일은 1일 이상 걸린다. 그러니 현금 거래가 당연한데 현금을 안 뽑아왔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친절하게 집 근처 ATM기를 알려줬다.
작가: 클레어/ 에세이스트
잘 다니던 마케팅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에 와서 사부작사부작 기획하고 글을 씁니다. 취미는 슈퍼마켓 신상구경, 특기는 생동감 있는 리액션 입니다.
본 글은 클레어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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