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처음 왔을 때, 무채색과 원색의 옷만 입고 다니는 독일사람들의 패션을 보면 정말 멋이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과 장소에 맞도록 패션에 꽤 신경을 쓰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밤늦은 시간 기차역에 내려 역 앞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누가봐도 잠옷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수면잠옷 원피스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여자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며 서 있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길을 건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 여자에게 향하고 있었고, 신호가 바뀌어 가까이 지나치며 전화통화 소리가 들려왔는데 한국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아는 사람도 아닌데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독일 사람들은 아무리 밤 늦은 시간, 집 앞에 잠깐이라 할지라도 잠옷을 입은 채 밖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한 여름 샌달 형식의 슬리퍼는 신고 다니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플라스틱 슬리퍼는 수영장에서 신는 Badeschuhe라고 일컬으며 밖에서는 신고 다니지 않는다.
한국에서 생각할 때 해외 직장은 휴가도 많고 출퇴근 시간도 자유로우며 조금 자유로운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한다. 자유롭다는 말에는 당연히 복장의 자유도 포함되며 무더운 한여름이면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출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도 캐주얼한 느낌의 단정한 반바지라면 괜찮지만 아주 편한 운동복 느낌의 반바지를 입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 나는 병원에 출근하면 근무시간 내에는 유니폼을 입는다. 유니폼이 있다면 출근 복장에 신경쓰지 않을 것 같지만 동료 누구도 운동복이나 편한 차림으로 출근하는 동료는 거의 없다. 아마도 직업상 편한 운동복스타일의 유니폼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근무해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되게 옷도 차려입고 구두도 신고 출근하는 것 같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업무모드로 변화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면 다시 업무모드가 해제되는 것 같다.
나의 지인은 은행원인데 모든 셔츠는 무늬없는 흰색에 양말과 속옷은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하여 매일 교복을 입듯이 똑같은 옷만 입고 출근한다. 그의 세탁실과 옷장에는 강박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모두 똑같은 옷들만 수십벌씩 걸려있다. 은행원과 같이 고객을 맞이하는 업무를 하는 직업은 더 복장에 신경쓴다. 그리고 직원뿐만 아니라 은행이나 시청과 같은 관공서에서 직원과 상담이 예약되어 있거나 볼일이 있어 방문할 때에는 최대한 깔끔하게 차려입고 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비자청을 방문하거나 행정업무를 볼때는 셔츠라도 챙겨입고 갔다.
그리고 입사 인터뷰를 보거나, 직장에서ppt발표, 중요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등의 특별한 일이 있는 날은 부담스럽지 않지만 셔츠에 면바지라도 입는다. 아주 멋있게 차려입지 않더라도 너무 신경쓰지 않은 느낌이라면 상대방에서 좋은 인상을 줄 수 없기때문에 복장은 참 중요한것 같다.
심지어 대학생들도 발표하는 날이 되면 여학생들은 꼭 스카프(Schal)를 두르고 왔던 기억이 있다. 스카프가 없으면 자신감이 사라지는 느낌이였고 멋진 스카프를 두를수록 당당히 자신감있게 발표를 해내는 것 같았다. 대부분 다양한 꽃무늬, 여러가지 색깔들로 다양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여학생들에게 스카프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또한 발표자로서 복장을 갖추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녁 파티라도 열리면 단정했던 모범생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나곤 했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학생 때부터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복장을 달리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예의라고 생각하고 꼭 지키는 것 같다.
요즘 어린 학생들을 보면 꽉 붙는 레깅스를 입기도 하고 유행하는 트레이닝복을 일상에서입고 다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지금 직장에서도 20대의 젊은 직원들은 좀 더 복장에 자유롭고 편한 모습을 보기도 한다. 30~40대라면 청바지에 편한 티셔츠를 입고 출근한다. 하지만 50대 이상의 나이와 직급이 있는 직원들은 적어도 셔츠를 입고 캐쥬얼정장스타일로 출근한다. 이처럼 시간과 장소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이나 직급에 따라서도 복장이 다르다.
독일에서의 삶이 오래될 수록 나도 모르게 독일 스타일에 따르게 된다. 가끔 한국을 방문하면 너무 독일스러운 나의 모습에 한국 가족, 친구들의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 구입해 온 옷들을 독일에서는 입지 못하고 옷장 속에 넣어 두는 경우도 생긴다. 참 한국과 다른 독일! 자유로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보수적인 독일문화가 신선하다.
여러분들의 출근 복장은 어떠신가요? 자유로운 편인가요 보수적인 편인가요?^^
작성: 모젤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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