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각자의 언어에 충실하기로 했다. 영어로 논문을 쓰는 남편은 영어에, 나는 독일어에 시간을 할애하기로 한 것다. 나는 독일어 집중 코스를 들었고, 남편은 영어 회화반을 다녔다. 그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수업을 듣는데 지장은 없었지만 한국인 특유의 발음, 정확히 말하면 악센트가 아킬레스건이었다. 생각보다 악센트는 외국어에 있어서 중요했다. 높낮이의 다름에 따라 상대가 전혀 단어를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었다.
남편의 영어 수업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젊은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지각하기 일쑤였고 중간에 말없이 나갈 때도 많았다. 이런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영어를 썩 잘하지 못했고 건성으로 다니는 날라리 유형이었다.(우리보다 영어 발음이 좋아서 그렇지 가만히 들어보면 틀린 문법을 남발하는 독일인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들에게도 영어는 스트레스입니다.) 어느 반을 가나 꼭 이런 사람이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하필이면(어쩌면 그래서) 그녀와 문제가 발생했다.
F 발음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남편의 F 발음을 교정해 주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가 잘 못 따라 하자, 이 젊은 여자가 비아냥거리며 “뻑큐~” 해봐. 왜 그걸 잘 못해?“라고 펀치를 날린 것이다.
순간 강의실은 얼음이 되었다. 모두가 일시 정지된 채 눈에서만 동공 지진이 일었고 동시다발적으로 남편만 바라봤다. 누구보다 당황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아마 그의 마음에는 지진뿐만 아니라 화산까지 대폭발을 했을 것이다.
당황한 선생님은 여자에게 주의를 줌과 동시에 남편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그는 갈등했다.
‘똑같이 펀치를 날릴 것이냐, 더 센 한 방을 위해 참을 것이냐.’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후자를 선택했다. 몹시 기분이 상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수업에 임했다. 만약 그 자리에서 화를 냈다면 수업은 엉망이 될 것임에 분명했고, 그것은 그녀와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는 것일 뿐이라고 판단했단다. 그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나머지 강의가 끝난 뒤 그녀를 따로 불러냈다.
“네가 한 말은 누가 들어도 모욕적이었어. 나는 오늘 너의 사과를 받아야겠는데.. 나한테 사과할래?”
여자는 머뭇머뭇하더니.. 오해라면서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남편은 단호했다.
“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너한테 사과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야. 지금 너한테 기회를 주는 거라고. 그러니 기회 줄 때 사과해.”
그때서야 그녀는 사과를 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오해했다면 미안해.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경험 상 독일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사과를 요구하면 결국 하기는 한다. 하지만 넘어가 주거나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절대 먼저 사과란 없다. 남편이 구태여 그녀를 불러내 사과를 받은 이유는, 그냥 참고 넘어간다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응당 기분이 나쁜 것도 있었지만, 내 권리조차 제대로 말 못 할 유학 생활은 아니 하는만 못한 것이었다. 결국엔 자존감의 문제였다.
외국 생활에서 그 나라의 언어가 유창하지 않다면 한 번쯤은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애써 울분을 삼키며 집에 와서 이불킥 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그것이 쌓이다 보면 분명 화병이 날 것이다.
남편으로부터 이 얘기를 들은 날, 큰일로 번지는 것이 싫어서 매번 오케이라고 말하며 수그리고 살던 나도 이제는 따질 일이 있으면 한국어로라도 따져야겠다고 으르렁거렸다. 한국말로 해도 사람이 화가 났다는 것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이 전투태세를 갖춘 이후 지금까지 그럴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독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는 자존감이었다. 자신 있는 마음, 자존심이 아닌,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고 사는 ‘자존감’이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나를 믿어야 했다. 나를 믿지 않으면 사람은 두렵고 불안해진다. 그것은 정착에 해만 될 뿐이었다. 이 땅에서 나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다. 타인이 나를 뭐라고 부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답하느냐가 중요했다. 멋진 답으로 응수하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비축해 두는 것이 필요했다. 내 의견을 더 잘 말하기 위해 독일어를 공부했고, 내면의 근육을 쌓아 나갔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가 쌓여 더 괜찮은 미래의 나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사계절처럼 인간에게도 시절이 있다면 지금은
"정신과 싸우다 당당함을 갖추게 되는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내게 뻑큐를 날리는 이에게 똑같이 뻑큐를 날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매끄럽지 못한 처신이다. 나는 덩치만 큰 게르만족에게 선비의 고매함이 무엇인지를 알려줄 그날을 기다리며 매일 칼이 아닌 ‘먹’을 갈았다.
PS.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는 그날 이후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흥칫뽕!이다 이것아!
- 작가: 여행생활자KAI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여행생활자, 주변 살펴보기가 취미인 일상관찰자
- 본 글은 여행생활자KA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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