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어느 날
“엄마, 왜 이렇게 천천히 가?” 오늘 아침 등굣길, 운전 중인 나에게 아들이 물었다. 시간이 많아서 천천히 가는 거라고 둘러댔지만, 실은 아들 말이 맞다. 오늘 아침은 규정속도를 ‘심하게’ 지키며 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평소 등하굣길에서 나도 모르게 질주 본능을 뿜었단 말인가.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코스 운전에서 유독 오늘 아침이 달랐던 데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서울보다 독일에서 운전하는 게 백 배는 쉽다”라고 연재 중인 한 매체에 칼럼을 쓴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일이 터졌다. 늘 그렇듯 우체통에서 ‘핀 메일’ 한 통을 발견한 순간, 불안한 기운을 감지했다. ‘핀 메일’은 보통 돈 내라는 고지서가 많은데, 발신인이 심지어 ‘경찰’로 돼 있는 것 아닌가. 경찰서에서 우편이 오니 심장이 쪼그라드는 건 한국이나 독일이나 매한가지. 보통 우편으로 날아오는 고지서는 뭔가를 위반한 범칙금일 텐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경찰 단속에 걸린 기억은커녕, 속도위반이나 주정차 위반 시 ‘번쩍’ 하는, 해서 ‘카메라에 찍혔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는 섬광도 본 적이 없었다.
우편의 내용은 이랬다. “속도 80km 구간에서 너는 106km로 달렸어. 26km를 과속한 거야. 우리는 사진 등 증거를 갖고 있어. 운전자가 누군지 같이 보낸 종이에 정보를 기입해서 보내.” 순간, 아찔했다. 해당 날짜와 시간을 보니 얼마 전 방문한 부모님을 모시고 폴란드로 나들이 가던 아우토반 어딘가에서 찍힌 모양이다. 진짜 무슨 범죄자처럼 찍힌 사진은 확인할 것도 없이 당연히 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단순 과속 범칙금이면 얼마를 내라고 고지서가 온 것으로 끝났을 텐데, 과속의 ‘정도’가 일반 범칙금으로 끝날 수준이 아니란 얘기니까.
그간 들었던 이런저런 경험담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누구네 아빠가 20km 이상 과속해서 면허 정지됐다고 했던 것도 같고, 또 누구는 몇 백 유로 벌금을 냈다고 했던 것도 같았다. 사색이 된 나를 보고 이유를 묻는 아들에게 나는 배경 설명 없이 이렇게만 말했다. “어쩌면 당분간 버스 타고 학교 다녀야 할 것 같아.” 싫다고, 안 된다고 징징대는 아들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경험자들로 추측되는 이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한인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사례를 폭풍 검색했다. 정보를 보내면 경찰의 ‘처분’ 통지가 따로 온다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지만, 경험자 사례로 예측컨대 다행히 면허정지까지는 안 가고 100유로대의 벌금과 벌점으로 끝날 듯했다. 다만, 또 한 번 20km 이상 과속 시 한 달 면허 정지를 받을 수도 있다니, 아이가 느낄 정도로 평소와 다르게 운전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
독일에서 일 년 넘게 살았다고, 이제는 다 적응했다고 자만하며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와 같은 다소 거친(?) 운전습관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독일은 간단치 않은 나라였는데 말이다. 새로이 독일 교통 범칙금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간 몰랐던 사실이 많았음을 깨닫고 얼마나 놀라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1년 여 진짜 운이 좋았던 것에 감사해야 할 판. 속도위반, 신호위반 같은 만국 공통 기본 사항은 물론이고, 가로 주차 시 간격이 너무 넓게 주차해도 위반, 우회전 시 한번 멈추지 않고 바로 가도 위반, 도심이나 고속에서 우측 추월 시 위반, 뒤차가 추월하려고 할 때 가속해도 위반…. 경우의 수만 많은 게 아니라 범칙금도 몇십에서 몇 백 유로까지 상황별 사례별로 다르게 적용되고, 도심에서 위반할 때는 고속도로 위반보다 더 센 처벌을 받으며, 두 가지 이상 위반 시에서는 가중금이 붙어 금액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기까지 한다.
이러다 보니 같은 위반이라도 각자 받는 ‘처분’은 달라서 아예 각자의 상황에 따라 범칙금 및 면허 정지와 같은 페널티 여부를 알아보는 사이트까지 있다. 그나마 독일이 유럽 내에서는 교통 범칙금이 약한 편이라, 더 세게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노르웨이였다면 나는 최소 50만 원이 넘는 벌금을 냈어야 했을 수도 있다니(그것도 2014년 기준이라 더 올랐을 수도) 독일에서 사는 게 감사할 지경이다.
이번 일을 통해 자책과 반성을 하며 다시 모범운전자로 돌아가는 계기가 됐으니 범칙금은 수업료로 생각해야 하나. 남들은 독일 살이 하면서 온갖 벌금을 다 내봤다는데, 심지어 같은 동네 사는 한국인 친구는 임시 주차금지 표지판을 못 보고 주차했다가 자기 집 앞에서 차를 견인당하고 무려 450유로를 벌금으로 냈다고도 하는데, 그간 나는 15유로짜리 주차 위반 한두 번과 25유로짜리 속도위반 딱지 한 번이 전부였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그래도 속이 쓰린다. 아 100유로!
<오늘의 깨달음>
어느 나라에 살든 경찰과는 거리 두고 사는 게 맘 편하다. 서면이든 대면이든!
- 작가: 어나더씽킹 in Berlin/공중파 방송작가,종합매거진 피처 에디터, 경제매거진 기자, PR에이전시 콘텐츠 디렉터,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유럽통신원 활동 중, ‘운동화에 담긴 뉴발란스 이야기’ 저자
현재 베를린에 거주. 독일의 교육 방식을 접목해 초등생 남아를 키우며 아이의 행복한 미래에 대해 고민합니다.
- 본 글은 어나더씽킹 in Berlin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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