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뿔 이야기
엄마가 쓰는 동화 7
삼각뿔이 있었어요.
이쪽을 봐도 삼각형, 저쪽을 봐도 삼각형, 뒤쪽을 봐도 삼각형.
맨 꼭대기에 있는 꼭짓점은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걸 좋아했어요.
아무리 봐도 내가 제일 높아.
|꼭짓점은 점점 아래에 있는 친구들을 깔보기 시작했어요.
내가 반짝이는 해님과 제일 가까워.
꼭짓점은 반짝이는 해님 같은 금색 왕관을 만들어 머리에 눌러썼지요.
내가 너희들의 해님이야.
그리고는 쿵쿵, 발을 구르고 놀았어요.
아야! 너 뭐 하는 거야!
아래에 있는 친구들이 아프다고 소리쳐도 꼭짓점은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내 밑에 있는 녀석들아, 나를 잘 받들어라.
꼭짓점은 아래에 있는 친구들을 깔고 앉아 고약한 방귀를 뿡뿡 뀌었어요.
아우, 냄새!
꼭짓점 바로 아래에 있는 친구들은 고약한 냄새에 코를 쥐면서도
꼭짓점이 방방 뛰는 놀이가 재미있어 보였어요.
나도 뛰어볼래.
꼭짓점을 등에 업고 한 번 뛰어봤어요.
“아야!”
“히히.”
어라? 방방 뛰는 놀이는 무척 재미있었어요.
하늘에 부웅, 뛰어오르면 내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았지요.
이히히, 재미있다.
꼭짓점을 업은 아래층 친구들은 점점 더 신나게 뛰기 시작했어요.
아야 아야 아야!
아래,
더 아래,
그 더 아래,
아래쪽으로 갈수록 친구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맨 아래쪽 친구들은 찌이익 짜부라져서 숨도 못 쉴 지경이었지요.
“캑캑, 살려주세요.”
“아우, 이대로는 살 수가 없어.”
그때 옆을 데굴데굴 굴러가던 돌멩이가 말했어요.
“너도 나처럼 뒤집어 봐. 한 번 뒤집어도 모습은 그대로야. 그치만 저 꼭짓점이 맨 아래로 가게 될 거야.”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 우리 힘을 합쳐서 한 번 한 바퀴 굴러보자.
영차. 영차.
동글동글한 돌멩이와 달리, 삼각뿔은 여간해서는 굴러지지 않았어요.
좋아, 우리 모두 손을 잡고 하나, 둘, 셋을 세면 위로 한 번 껑충 뛰어올라 보는 거야.
하나아, 두울, 세엣!
어어?
꼭짓점과 그 밑의 친구들은 당황했어요.
세상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거든요.
아래쪽 친구들은 용기를 얻었어요.
자 다시 높이, 하나, 둘, 셋!!!
우당탕탕탕탕!
삼각뿔이 굴러 너무나 세게 흔들리는 바람에 모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땅에 세게 부딪히는 바람에 쩌억, 조그만 금이 가고 말았지요.
그리고 어머나!
맨 위에 있던 꼭짓점과 그 부근의 덩어리는 바닥에 깨져 데굴데굴 굴러가 버리고 말았어요!
와아.
이제 좀 살 것 같아.
방방 뛰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친구들이 없어지자 삼각뿔은 기뻤어요.
조심조심, 금 간 곳을 다듬고 부서진 곳을 조금씩 채웠지요.
삼각뿔 주변에는 예전처럼 예쁜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녔어요.
그런데 어라.
새로 맨 위 꼭짓점이 된 친구가 또 금빛 모자를 주문했다는 소문이 들려오네요.
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그렇게 하늘로 방방 뛰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까요?
아닐 거야, 새로 위로 올라간 친구가 그럴 리 없어. 우리들의 친구였는걸.
하지만 아래쪽 친구들의 마음과는 달리, 새로운 꼭짓점과 그 친구들은 또 위에서 우당탕탕 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휴, 또 한 번 굴러야겠네. 구르는 거 너무 아픈데.
하나, 둘, 셋!
우당탕탕탕탕.
또 한 번 구르니 온 세상이 다시 한번 뒤집히는 것 같았어요.
아우, 너무 어지러워.
온몸이 흔들리는 아픔과 어지러움.
간신히 예쁘게 다듬어 놓은 몸에는 또 여기저기 금이 가 버렸지요.
간신히 제정신을 차린 삼각뿔 안의 친구들은 의논하기 시작했어요.
“이대로는 우리가 점점 부서지고 금 갈 뿐, 전혀 나아지지 않겠어.”
“그래. 무슨 다른 방법이 없을까?”
“몸이 흔들리지 않고 맨 위 꼭짓점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긴 의논 끝에, 친구들은 돌아가며 위 꼭짓점으로 가 보기로 했어요.
“맨 위에 있는 친구가 스스로 내려오는 수밖에 없어.
우리 모두가 작은 블록이 되어 서로 돌아가면서 위로 가 보는 게 어떨까?”
“좋은 생각이야. 매년 봄에 새로 민들레가 피면 맨 위로 올라갈 친구를 뽑아서 그리로 보내자.”
그렇게 서로 사이좋게 돌아가며 맨 위로 살짝 올라가 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맨 위로 올라가는 꼭짓점이 될 친구는 왕관이나 금빛 모자 대신 예쁜 꽃을 가슴에 꽂기로 했답니다.
어떤 꽃이냐고요?
해님처럼 보이지만, 때가 되면 보송보송하게 익어 자유롭게 꽃씨를 날리고 홀가분해지는 꽃.
아기 다람쥐에게 밟히고 아빠 당나귀가 잎을 질겅질겅 씹어도 해마다 해님 같은 꽃을 찬란하게 피워내는 꽃.
바람을 타고 세상으로 은은하게 퍼져가는 꽃.
민들레 말이에요.
오랜만에 동화 한 편 올립니다. 2년 전쯤 써 둔 이야긴데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가지고만 있었거든요.
겨울에는 작동이 잘 안 되는 사지육신 때문에 글 쓰는 속도도 현저히 느려져서, 이번 주에 올릴 글이 늦어지는 바람에 세상에 내놓게 되었네요.
눈치채셨겠지만 왕정에서 혁명, 그리고 선거제로 옮겨 가는 이야기를 써 보았습니다.
민들레는 이곳 독일에서 사자의 이빨이라고 불려요. Löwenzahn.
영어 단어도 마찬가지죠. dandelion.
dent of lion, 즉 tooth of lion이라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요 복슬복슬 달콤하게 보이는 노란 꽃이 사자의 이를 닮았다기보다는(사자야 이 좀 잘 닦자), 약간 거칠고 삐죽한 잎 모양이 더 사자의 이빨이나 갈기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흔하게 퍼져 사람에게도 동물들에게도 짓밟히기 쉽지만 그 안에 사자의 이를 가지고 있는 용감한 녀석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이야기 안에 가져왔습니다.
사자의 뾰족한 이보다는 달콤한 해님같다고 생각합니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이 잘 부는 쾌청한 날에는 둥실둥실 몇 킬로미터까지 날아간다고 해요. 공기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는 갓털 덕분에 쉽게 낙하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다고 하네요. 영국의 유체역학 연구진이 이 비밀을 밝혀서 네이처 지에 발표했다고 합니다. 바람을 타고, 게다가 공기에 소용돌이를 일으켜 날아간다니 왠지 이 조그만 녀석들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내 주변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나의 알맹이가 널리 퍼져갈 수 있다면.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제 마음속 삼각뿔은 이겁니다. 후후후.
그리운 나의 최애 삼각뿔
작가: 이진민 /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
미국서 두 아이를 낳아 현재 독일에서 거주 중.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풀어내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본 글은 이진민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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