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살게 된지 10년 차, 그리고 연년생 두 아이를 둔 아줌마. 밤마다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독일어 수업을 다니고 있다. 작년 9월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8개월이 되어간다. 다음 달이면 B1 인터그라치온 코스가 끝이난다. 시험도 예약을 해두었는데, 통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코로나의 락다운 기간 동안 학원은 한번도 온라인으로 바뀌거나 멈춘 적이 없었다. 위치가 외곽이고 작은 규모여서 그런지 코로나의 규정을 잘 지키면서 매일 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밤에 듣는 수업은 몸은 피곤하지만, 굉장히 재미있다. 수업 친구들은 나처럼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온 엄마들 아니면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나이도 비슷하고 독일어 공부에 대한 절실함도 비슷하게 대단했다. 또 새로운 문법을 오늘 배우면 우리는 뒤돌아서면 까먹기 일쑤다. 엄청 열심히 하는데, 뒤돌아서면 까먹고.. 다들 그렇게 비슷해서 몸짓 발짓으로 대화하는 우리는 언제나 웃음이 넘쳤다.
처음부터 웃음이 나는 것은 아니다. 수업을 들으러 오는 친구들은 다 얼굴이 굳어있고 피곤이 역력하다. 당연하다. 한명은 정육점에서 일하고, 한명은 정비소, 한명은 슈퍼마켓, 한명은 카페 웨이터, 한명은 홈오피스.. 얼마나 피곤할까. 수업을 하다 보면 피곤이 풀리는지 조금 지나면 웃기 시작한다. 터키, 불가리아, 이란..등에서 온 친구들.. 참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멋있다 친구들. 코로나만 아니면 나의 일취월장하고 있는 한국음식을 맛보게 해줄 텐데.. 정말 아쉽다. 어느 친구는 나에게 자기 두 아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기가 열심히 일하고 있고 이제 아내와 아이들을 올해 독일로 데려올 계획이라고 했다. 얼마나 마음이 짠한지. 몸 부서져라 일하면서 독일어 공부도 엄청 열심히 하는 아빠이다. 또 한명은 계속 수업 중에 졸고 있다. 정육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다. 선생님이 도대체 왜 수업을 오냐면서 핀잔을 줘도 웃기만 한다. 그러면서 문제를 풀으라하면 기가막히게 답을 잘 맞춘다. 선생님은 ” 너는 자면서 듣고 있는거냐” 면서 엄청 신기해 한다.
나의 반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라에서 지원받고 인터그라치온 수업을 듣고 있다. 다들 B1 코스가 끝나면 시험을 보고 좀더 나은 직장을 갖길 원한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기들의 나라보다 독일이 더 살기 좋고 자기 나라에 있는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오고 싶어한다. 왜 안그럴까. 나도 그런데. 특히 선행님은 독일 시민권자이지만 자신의 나라 터키에 대해 요즘 근심과 상심이 너무 크다. 또한 아이를 둔 가장들은 독일 교육을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꼭 받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반 친구중에 난민이 한명 있다. 이 친구는 나라의 보조금으로 매일 매일 살아간다.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땅가띵가 노는것 같다. 그 친구에게 선생님은 왜 굳이 밤에 수업을 듣는지물어보니 자신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게 힘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독일에 온지 5년이 된 남자 청년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지내는게 좋다고 한다. 선생님이 그 친구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젊은 그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일을 꼭 하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독일어를 잘 공부하면 좋은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 말해줬다. 무조건 그럴 수 있으니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독일어가 정말 중요하다고 백번도 넘게 말해줬다. 어느날 선생님이 반 학생들에게 나중에 독일어 잘 배워서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미래의 꿈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이해를 한건지 못한건지 한 친구는 ” 나는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버스 기사가 될거야” 또 어느 친구는 ” 응~ 나는 슈퍼마켓에서 선반을 정리하는 사람이 될거야’ 이렇게 대답을 했다. 선생님은 엄청 난감해 하면서 너희들 도대체 왜그러냐고, 왜 꿈이 그렇게 작냐면서 너무 슬픈 눈빛으로 꿈을 말하라고 또다시 정정해서 말하게 시켰었다. 그랬더니 슈퍼마켓에서 선반을 정리하겠다는 친구가 회계사가 될거야 했더니 그제야 만족해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혼자 웃음이 터졌고 친구들은 너 왜 웃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었다.
선생님. 10년 만에 좋은 선생님을 만난 행운을 갖게 되었다. 터키사람인데, 어렸을 때 이민을 왔다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 키도 크고 덩치도 너무 큰 남자 선생님이라 당황했는데, 굉장히 세심하다. 또 문법의 달인이다. 경력을 나타내듯 문법을 기가 막히게 잘 가르친다. 그의 비법 중 하나는 뒤돌아서면 까먹는 우리에게 적어도 5번을 반복해서 가르쳐주는 것이다. 얼마나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책에 부족한 문법은 프린트를 다 해주면서 연습을 시키고 이해하도록 엄청난 반복 수업을 해주신다. 또한 매번 피곤해하고 답을 맞추지 못해도 한숨을 쉰다거나 핀잔을 주지도 않는다. 잘하고 있다고… 시험을 위해서 공부를 하지 말고 독일어 능력을 키운다는 마음으로 공부하면 무조건 시험은 통과한다고 용기를 심어주셨다. 이 선생님 덕분에 나도 문법의 달인이 되고 있다. 왜 뒤에 이 단어가 오는지 왜 이 단어가 이렇게 변하는지.. 심지어 남편에게 가르쳐 줄 정도가 되고 있다.
10년만에 배우는 독일어. 절심함으로 가득 찬 나와 내 반 친구들, 수업이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다음 달이 이제 마지막 과정이고 바로 이어서 시험을 보는데 도대체 누구와 짝이 되어 말하기 시험을 봐야 할지 아주 큰 고민을 하고 있다. 다들 손짓발짓으로 아직도 대화를 하고 있어서 말이다.( 8개월 만의 시간으로는 우리에게 말을 유창하게 할수 있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 내 파트너가 쫙 말을 해주면서 이끌어주면 나는 Ach so…. ah.. gut,,,nein.. 이러면서 넘어 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코로나 락다운으로 힘든 이시간, 억지로 등 떠밀려 배우게 된 독일어지만 어느새 8개월이란 시간이 되었고 시간만 홀로 흐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아이들 학교에서 날아오는 편지들, 코로나 방침들, 숙제 안내서, 심지어 온라인 쇼핑도 가능할 정도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조금 더 알아듣게 된 독일어 대화들, 그리고 조금씩 아이들 학교, 유치원 선생님과 독일어로 대화가 가능해졌다. 독일어 공부는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고 B1 시험에 부디 합격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 독일에서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며 10년째 살아가고 있는 독일맘 입니다. 독일에 사는 것도,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서툴고 처음인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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