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 Eibsee(*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서 가장 유명한 호수로 꼽힘)에서 겨울은 좀처럼 자리를 내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수개월간 텃세를 부리던 눈, 얼음, 차가운 바람은 4월이 되어도 물러서지 않는다. 호수의 두꺼운 얼음장을 깨보겠다고 크기별로 돌을 모아 얇아진 틈을 향해 힘껏 내던져보지만 어림도 없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쉼터를 덮던 지붕에선, 만년 유지될 것만 같던 눈이 안타까운 눈물이 되어 흐른다.
호수를 따라 걷고 또 걷는다. 간간히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타고 흐르며, 푸른 하늘이 눈부시다. 해의 따사로운 은혜를 받지 못한 나무 그늘엔 쌓인 눈이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옆을 봐도 겨울, 뒤를 돌아봐도 아직 겨울인데 우연히 흠뻑 들이쉰 공기에는 봄기운이 만연하다.
하늘에 흩뿌려진 구름이 설산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가벼운 깃털이 되어 이 넓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제 운에 맡기기도 한다.
반대편 호수 쪽에서는 겨울과 봄이 혼란스러운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극과 극이 충돌하더니 어느새 초록색 호수가 나무를 품었다. 초록빛과 푸른빛이 어우러진 물을 거울삼아 호수 전체가 봄단장을 한다.
설산은 주 무대를 내어주고 뒤로 물러선다. 날 선 오만함이 순리대로 한풀 꺾인다. 남부 바이에른의 이 유명인사는 한결같이 자기를 바라봐주던 여행자들의 매너리즘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물러서며 물 위에 자신을 아로새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행여나 자신을 잊을까 노파심이라도 들었나.
- 작가: 익명의 브레인 닥터 / 의사
말보다 글로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13년 차 신경과 의사입니다. 우연히 코로나 시대의 독일을 겪는 중입니다.
- 본 글은 익명의 브레인 닥터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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