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봉쇄 속에서도 조금씩 가게도 열리고 사람들도 밖으로 더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에 만 명 안팎이던 확진자가 다시 하루 2만 명이 넘어 버렸기에 부활절이 지나면 또다시 가게들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오랜만에 열린 가게가 기뻐서 그런지, 아니면 나와 같이 곧 다시 닫힐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가게들은 더욱더 세일 광고를 하고 사람들은 줄을 지어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몰려들기만 한다. 아무리 예약을 미리 해야 하고, 같은 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수를 제한한다고 하여도 가게에 들어가기 전까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감자튀김, 아이스크림, 추로스 등을 사 먹으며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마스크까지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 하기에, 거기다 바글바글한 길거리의 사람들 속에서 1.5m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기에 그저 가능한 한 나라도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지만, 점점 봄이 오고 따뜻해질수록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대신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는 길거리를 산책 겸 천천히 걸을 때가 있는데, 걷다 보면 종종 길바닥에 반짝이는 황동판을 발견한다. 이 황동판은 아마 독일 전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 이유는 과거에 그 자리 (그 길에 접해 있는 곳)에 살던,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유대인 혹은 집시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로 세로 10cm 크기의 이 황동판에는 희생자 분들의 이름, 출생연도 등이 새겨져 있는데, 이 황동색의 돌멩이 같은 기념물의 의미를 알고 난 후부터는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고 이름이라도 읽어 본다던지, 아니면 잠시라도 눈길을 주어 가벼운 목례를 하게 된다. 왠지 모르게 그 조그마한 판 안에 그분들의 행복했던 시간과 고난했던 시간 등, 그 모든 나날들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
처음부터 전쟁이라는 것이, 인종차별이라는 것, 혹은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이 세상에 없다면 그것만큼 이상적인 것은 없겠지만, 불행하게도 전쟁으로 인하여, 인종차별로 인하여, 그 외 강압과 폭력으로 인하여 희생되어 버린 그 모든 사람들을 이 황동판처럼 이름과 생년월일을 알아내어 생전에 살았던 곳 근처에라도 이렇게 표시할 수 있는 나라가, 역사가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일본과 비교를 하는 글들이 참 많다. 과연 일본의 침략과 그 많은 만행들로 인하여 희생되신 분들의 이름을 이렇게 새길 수 있을까.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들로 인하여 희생되신 분들의 이름을 이렇게 새길 수 있을까.
물론 며칠 전에 미국에서 일어난 아시아계 혐오로 인한 총격 사건과 같이 이 황동판이 곳곳에 새겨진 독일에서도 아직까지 인종차별과 다양한 형태의 강한 자에 의한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늦게라도 잘 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런 곳곳에 새겨진 황동판이 희생자분들을 추모함과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조금은 제시해주는 것 같다.
더 이상 이 황동판에 들어 간 희생자 분들과 같이 희생되는 삶이, 그들의 이름이 늘어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 작가: 몽글맹글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걸 좋아합니다. 쓰면서 정리합니다. 주로 독일에서의 일상 및 매일의 삶 속에서 언젠가 기억하고 다시 꺼내보고 싶을 작고 소중한 일들을 기록합니다.
- 본 글은 몽글맹글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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