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한 곳에서 방문 날짜를 줬는데, 혹시 시간만 되면 같이 가 줄 수 있을까?
베를린에서 알게 된 친한 친구에게는 만 두 살의 아들이 있다. 그리고 베를린 적응 1년 만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 노력을 시작하였다. 3년 전, 아무런 정보 없이 우리 딸을 아기띠에 매고 발품 팔며 유치원 자리를 알아보던 때가 새삼 떠올랐다. 한국 엄마들이 아이의 유치원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몇 년 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 기사로 접한 적이 있다. 독일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특히 베를린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독일 분단 시 서독에 속했던 도시들은 지금도 부를 유지하며 어느 정도 높은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 도시에서는 일반 유치원 한 달 회비가 300유로가 훌쩍 넘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베를린은 또 다른 세상이다. 특이하게도 베를린은 한 도시 안에 서독과 동독이 공존하고 있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통일이 되자마자 서독과 동독의 경계가 어느 날 한 순간 무너져 내리게 되었다. 경제, 문화, 사회 전반적인 부분이 아무런 준비 없이 뒤섞이게 되면서 사실상 독일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를 꼽자면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이 되었다. 그렇기에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공공재와 혜택이 탁월하게 되었고, 나 같은 외국인이 살기에는 가장 적합한 도시가 되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베를린은 유치원 상품권(Kitagutschein, 기타 굿 샤인)을 아동 복지국에서 발행해 준다. 필요한 서류만 작성하여 우편으로 보내면, 집으로 문서화된 유치원 상품권을 보내준다. 이 상품권은 베를린의 가치와 정책을 대변하는 하나의 증거이다. 공립 유치원을 예로 들자면, 이 상품권을 제출한 만 0세부터 만 1세까지 아이는 무료로 유치원을 다닐 수 있다. 그리고 만 2세부터 학교 가기 직전의 만 5세, 6세 아이들은 한 달에 23유로씩만 지불하면 된다. 물론 사립 유치원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 딸이 다니고 있는 유치원은 사립 유치원이라 23유로 보다는 비싼 금액을 다달이 지불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 지역처럼헉 소리 나는 금액은 아니다. 이 정도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공립 유치원을 보내고 싶어 하겠지만, 사실 현실은 그리 만만하 지가 않다. 특히 맞벌이 부부들은 어디든 아이를 맡겨야 하는데 베를린은 몇 년째 유치원 자리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타 지역처럼 비싸지도 않은 금액에, 일하는 맞벌이 부모의 급증, 외국인의 유입 등 그 원인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유치원 홈페이지나 팸플릿 어디에도, 유치원이 공립인지 사립인지, 한 달에 얼마 정도의 회비를 내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 일단 찬 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닌 부모들은 유치원 자리를 찾기 위한 길고도 험난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신입생(?)으로 입학하는 경우는 차라리 쉬운 편에 속한다. 문제는 어중간한 나이의 아이들이 중간에 유치원에 다니고자 하는 경우다. 가끔, 아이의 사정으로 유치원 자리가 공석이 될 경우가 생기는데, 이 때도 성별과 나이가 맞아떨어져야 그 자리에 대신해서 들어갈 수가 있다. 심지어 그 자리를 원하는 학부모들은 줄을 서 있는 상황. 그다음부터는 유치원 측의 선택에 달린다. 처음에는 너무나 까다로운 선발 과정들을 겪으면서, ‘을’의 입장에서의 서러움도 느껴보고 괜히 내가 외국인이라서 더 무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유치원에 들어가고 나니 그런 섭섭한 마음은 온 데 간데없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두 분의 교장 선생님들은 60명이 넘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워 불러주었고, 선생님들은 몸을 던져가며 아이들을 사랑해 주었다. 어찌 보면 길게는 5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꾸려 나갈 아이들이기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겠지 싶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유치원 자리 찾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일단 유치원 근처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게 되었다.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공문이 유치원 입구에 붙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유치원을 찾는 여정을 멈출 수가 없었다. 친구의 남편이 번역기의 힘을 빌린 독일어로 80군데 넘는 유치원에 메일을 썼다고 했다. 처음엔 같은 내용으로 모든 유치원에 뿌리듯이 메일을 보냈다가, 아무런 답 메일이 없자 각 유치원마다 일일이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몇몇 유치원에서 연락이 왔다. ‘대기자 명단’에 올리겠다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메일들을 받았다. 나 또한 3년 전, 우리 딸 이름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간 지 5개월 만에 뜬금없이 메일로 입학 허가 연락을 받았다. 메일 확인을 꾸준히 하지 않았다면 그 기회마저 놓칠 뻔했다. 서툰 육아에 몸도 마음도 지쳤던 내게 5개월이라는 시간은 내 아이가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다는 사실 또한 까맣게 잊고 살아갈 충분한 시간이었다. 3군데 정도 지원을 하고 덜컥 한 번만에 자리가 생겼던 내 경우는, 돌이켜 보면 가히 기적이라고 할만하다.
어느 날, 내 친구는 한 유치원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직접 만날 것을 제안하면서 정확한 날짜와 시각도 알려주었다. 아직 독일어로 소통할 수 없던 그 부부는 조심스럽게 내게 함께 가 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했다. 친구의 남편은 IT 분야의 회사를 다니고 있으며, 오직 영어로만 소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독일어가 서툴렀다. – 이 또한 베를린이라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보통 독일에서는 영어로 절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다. 영어로 일을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 – 나름 7년을 살면서 터득한 생활 독일어를 장착한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떨리긴 했지만 함께 가 보기로 했다.
동 베를린에 위치한 기독교 유치원이었다. 우리 집에서 멀기도 했고, 지하철과 지상철(U-bahn, S-bahn 우반, 에스반)을 번갈아 타고 한참을 걸어 건물 앞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온 동양인 어른 3명과 아이 1명 이렇게 덩그러니 교장선생님과 마주 앉아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나는 많이 긴장되긴 했지만, 나름 수월하게 통역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유치원 분위기도 좋았고, 선생님도 친절했으며 심지어 공립 유치원이었다! 한 달에 23유로와 아이들의 간식비로 10유로를 더 지불하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교장선생님께 조심스레 혹시 언제쯤 입학 여부를 알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실 지금 당장 자리는 있구요. 오늘 다른 지원자들도 오기로 했는데 다 취소하시고 여러분만 왔네요.(웃음)
만일 저희 유치원에 보내고 싶으시다면 당장이라도 계약하시면 됩니다.
네? 네에? 살짝 당황한 나는 교장선생님이 말한 그대로 친구 부부에게 전달해 주었다. 친구의 표정은 기쁨과 행복함보다는 당혹감과 어리둥절함이 가득했다. 나 역시 그랬다. 일말의 기대감 없이 깜짝 선물을 받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아이처럼, 그 순간 우리의 표정은 무척 이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2, 3주 뒤에 바로 유치원 적응기간이 시작될 것이라는 통보와 함께 유치원을 나섰다. 친절한 교장선생님은 끝까지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친구의 아들도 그 선생님의 부드러운 표정과 목소리가 맘에 들었는지 귀여운 독일어로 인사말을 건넸고, 훈훈한 분위기로 유치원 자리 찾기의 여정이 막을 내렸다. 그 뒤로 한번 더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을 가지고 – 나의 독일어 실력이 바닥이 날 뻔했던 순간들을 무사히 지나고- 지금 그들은 유치원 적응 시기를 잘 지내고 있다. 엄마와 떨어지는데 거부감이 적은 아이는 적응기간을 쉽고 짧게 보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사실 부모들의 속앓이가 시작되는 기간이다. 사실 내 친구는 조금은 힘든 적응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첫 번째 여정을 잘 마무리했으니 그다음도, 또 그다음도 누구보다 씩씩하게 잘 해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베를린에서의 첫 사회생활에 뛰어든 내 친구와 그녀의 아들에게,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을 보내본다.
- 작가: KIRIMI/KiRiMi 일러스트레이터
베를린에서 살아가는 삶 –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득 영감을 받아 무작정 기록해보는 진솔한 이야기.
- 본 글은 KIRIM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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