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먹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땐, 온몸으로 밀착하고 눈 맞추며 교감했다면 그림책 읽는 시간은 아이와 나만이 아는 은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애틋함이다. 자녀와 부모가 쌓아 올리는 사랑탑으로 이보다 더 좋은 시간도 없다. 그뿐 아니다. 내가 어릴 적 만나지 못한 그림책을 몽땅 읽을 기회도 얻는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그토록 많은 그림책을 읽어볼 기회가 있을까.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림책을 엄마가 된 이후 지치도록 읽었다. 때로는 의무감으로 읽은 날도 물론 많지만,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그 안에 쏙 들어오는 아이 머리통이 가슴에 닿을 때 느낌이 참 좋다. 점점 묵직해지는 녀석의 무게만큼 다리가 저리고 목이 아프지만, 시간이 훌쩍 지나는 줄도 모른 채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견딜만하다. 책 읽어달라고 쉬지 않고 책을 빼 올 때면 달달한 커피 한잔을 사발로 타서 마음 준비를 해야 덜 지친다. 그래 봤자 기껏해야 10년이다,라고 쓰고 보니 책 읽어주던 숱한 시간이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고를 때가 많다. 이왕이면 내용도 좋고 그림도 예쁜 책을 선호한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우리 엄마 팔아요>, <딸기밭의 꼬마 할머니>, <책 읽기 좋아하는 할머니>, <고함쟁이 엄마>, <우리 언니> 등 예쁜 그림책이 얼마나 많은지. 전래 동화는 백희나 작가 작품으로 새로 만든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신세정이 그린 <방귀쟁이 며느리>를 가장 좋아한다.
홍비, 홍시로 유명한 <구름빵>보다 더 애착이 가는 <달 샤베트>는 작가의 상상력에 더위가 싹 날아간다. 에어컨과 선풍기와 냉장고가 뿜어내는 열기에 달은 녹고 전기를 많이 쓴 통에 온 세상이 정전되는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야기다. 반장 할머니는 녹아내린 달물을 대아에 받아 달샤베트를 만들어 이웃에게 나누어준다. 모두 달빛처럼 환해지고 시원해진다. 달샤베트 만들고 남은 달물은 화분에 부어 보름달처럼 환한 달맞이꽃으로 피어나는 대목에선 매번 감탄한다. 엄마 시름도 달물처럼 똑. 똑. 똑. 녹아내리는 기분이랄까.
감수성도 풍부하고 책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주면 고맙겠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그림책 읽어주는 일도 쉽진 않지만, 그나마 몸으로 놀기보다는 훨씬 쉽다. 그림책 읽어온 세월이 한 아이당 최소 읽기 독립이 끝나는 시기인 4~5년 정도 길게는 7~8세까지로 볼 때 4살 터울인 우리 집은 10년 이상이다. 곧 고지가 눈앞이다. 그림책 읽어 주는 일이 싫증 나기 전에 스스로 읽게 되면 좋겠다. 그림책 읽는 시간으로 쌓은 사랑탑이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아이는 자랄 테고 품 안에서 체온을 느끼며 책 읽어줄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 테니까.
- 작가: 김유진 / 에세이스트, <엄마라서 참 다행이야>저자
한국에선 가족치료 공부 후 부모 교육을 했으며 현재 마더코칭연구소를 운영하며 2016년 여름부터 독일에 삽니다.
- 본 글은 김유진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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